실수의 미학

Mistake

by 양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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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를 배우다 보면 금세 알게 된다. 실수는 이 춤의 손님이 아니라, 늘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주인 같은 존재라는 것을. 수업에서도, 밀롱가에서도 우리는 때로 박자를 놓치고, 프레임이 무너지고, 발이 엉킨다. 실수는 어느 때나 있고, 어디에나 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다. 실수는 과정의 일부지 전부가 아니다. 실수를 모든 것으로 여기는 순간, 춤도 마음도 멈춘다. 반대로 그것을 하나의 에피소드, 한 줄의 쉼표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다시 호흡을 찾고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처음 밀롱가에 갔을 때였다. 첫 곡에서 긴장이 몰려와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겨우 용기 내어 까베세오를 보냈고 운 좋게 응답을 받았지만, 론다에 나서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아… 망했네”라는 말이 흘렀다. 그 한마디에 몸이 단단히 얼어붙었다. 애써 표정을 지우고 아주 조심스레 첫 걸음을 내디뎠지만, 그녀의 프레임은 굳어 있었고 내 리드도 자꾸 미끄러졌다. 나는 즉시 프레임을 조금 풀고, 짧은 고개 끄덕임과 입모양으로 “미안해요”를 건넸다. 그녀는 말없이 춤을 이어갔고, 그렇게 길고도 길게 느껴진 12분이 지나갔다. 론다에서 빠져나오며 ‘그렇다면 왜 내 까베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아마도 타이밍이 어긋났거나, 서로의 신호를 다르게 읽은 것이겠지. 어찌 되었든 그날 이후 한동안 밀롱가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습만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다. 누군가와 춤을 추는 일 자체가 민폐처럼 여겨졌고, 잠시 내 탱고가 거기서 끝난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언젠가 거울을 보며 연습 중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배우려 한 탱고는 한 번의 서툼으로 종결되는 춤이던가? 그때부터 실수를 ‘멈춤’이 아니라 ‘통과’로 보기로 했다. 춤이 엉키면 먼저 네 박 들이쉬고 네 박 내쉬며 어깨와 턱의 힘을 내린다. 발바닥으로 바닥의 온도를 확인하고, 파트너의 등에서 오르내리는 미세한 호흡을 듣는다. 필요하면 한 박자 파라다(멈춤)를 허락하고, 음악이 “이제 가자”라고 말할 때만 움직인다. 실수의 주파수를 낮추는 건 기술 이전에 호흡이라는 것도 배웠다.


우리가 실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대부분 ‘평가’ 때문이다. 누군가 보고 있을까, 방금 표정이 굳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탱고의 무대는 바깥의 시선이 아니라 아브라소 안의 심장이다. 발은 잠시 흔들려도, 마음이 보내는 리듬과 진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존재감은 화려한 피겨의 누적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나를 온전히 수락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 태도가 서면 실수도 얌전해진다.

실수 이후의 춤에는 작은 의식이 필요하다. 같은 곡 안에서라도 미세한 리셋을 만든다. 한 걸음 뒤로 호흡을 맞추고, 손바닥으로 “괜찮아요”를 아주 가볍게 눌러 전한다. 시선은 멀리가 아니라 서로의 어깨선 근처에 두고, 과한 만회 대신 박자를 다시 크게 그린다. 빠른 보상 동작은 또 다른 실수를 부른다. 오히려 단순한 걷기—무게를 천천히, 크게—가 흐름을 되살린다. 실수는 덮는 게 아니라, 정리해서 다음 박자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Soft pastel colors illuminate a deeply intimate tango embrace on a dimly lit wooden floor.  Two dancers, eyes closed, foreheads touching, share a silent connection. Warm lighting casts soft shadows, faint starlight.jpg

파트너가 실수했을 때의 품위도 있다. 그 순간을 확대하지 않는 것. 발끝이 얽혔다면 먼저 내 프레임을 낮추고 여백을 넓힌다. 손은 안내, 팔은 그늘, 등은 약속으로 이어진다. 이 문장을 다시 한번 몸에 띄운다. 꼬르티나가 오면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한 마디로 마무리한다. 해명은 짧을수록 좋고, 감사는 길수록 좋다. 우리는 서로의 서툼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실수는 둘 사이를 깎지 않고 다듬는다.


혼자 남는 순간을 위한 루틴도 만들어 둔다. 론다를 나서기 전, 벽을 등지고 30초 동안 천천히 숨을 고른다. 오늘의 실수 하나를 떠올리고, 그 옆에 배운 것 하나를 반드시 붙여 쓴다. “사까다 타이밍 늦음 → 네 박 전에 체중 확인.” 실수만 기록하면 마음이 움츠러들고, 배움까지 묶어두면 다음 만남이 가벼워진다. 집에 가는 길에는 발바닥 감각을 끝까지 살려 한 블록만 ‘탱고 걷기’로 걸어본다. 춤은 홀에서 끝나지 않고, 걸음으로 이어질 때 오래 남는다.


무대가 클수록 실수는 더 잘 보인다. 하지만 탱고의 무대는 바깥이 아니라 아브라소 안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체면이 아니라 연결이다. 연결만 잃지 않으면, 모든 실수는 변주가 된다. 박이 밀리면 멈춤으로 번역하고, 공간이 좁으면 더 작은 원으로 바꾼다. 음악이 흔들릴 때는 심장을 믿고, 심장이 흔들릴 때는 음악을 믿는다. 둘 중 하나만 살아 있으면 춤은 다시 선다.


결국 실수의 미학은 ‘계속’의 미학이다. 실수를 지우려 애쓰기보다, 그 자리에서 조금 더 예쁘게 정돈해 계속 걷는 일. 우리가 미소를 잃지 않고, 서로를 탓하지 않고, 다음 박자를 향해 어깨를 조금 열어주는 한—실수는 끝이 아니라 다리다. 오늘의 다리가 내일의 나를 건너게 한다.


그러니 오늘 밤도 안심하고 첫걸음을 내딛자. 얽히면 멈추고, 멈췄다면 듣고, 들었으면 다시 걷자. 실수도 탱고다. 음악은 이미 다음 박자를 준비해 두었고, 우리는 그 박자 위에서 또 만나게 될 테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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