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역사] 춤, 국민의 오락이 되다

거대한 산업이 된 춤, 1920년대 대중문화의 폭발

by 양희범

[탱고의 역사] 거대한 산업이 된 춤, 국민의 오락이 되다


1920년대 아르헨티나 탱고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가르디아 누에바(신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두 개의 거대한 물줄기가 동시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줄리오 데 카로가 이끄는 '예술적 심화'의 흐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늘 이야기할 '대중적 확산'의 흐름입니다.
1916년 급진시민연합(UCR)의 집권 이후 아르헨티나에는 도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극장과 카바레로 몰려들었고, 집집마다 라디오가 켜졌습니다. 이 거대한 소비의 파도 속에서 탱고는 더 이상 변두리의 민속 음악이 아니라,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국민적 오락 산업으로 변모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탱고를 시스템으로 만든 설계자 프란시스코 카나로와, 무대 위에서 금기를 깨부순 여걸 아수세나 마이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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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탱고 산업의 설계자: 프란시스코 카나로

프란시스코 카나로(Francisco Canaro, 1888–1964)는 우루과이 출신의 이민자로, 탱고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이 데 카로에 비해 단순하고 보수적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자들은 그를 '탱고 산업의 위대한 설계자'로 재평가합니다.
그는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춤추기 좋은 리듬: 복잡한 화성 대신, 누구나 스텝을 밟을 수 있는 명확한 박자(마르카토)와 기억하기 쉬운 선율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음악도 비즈니스다: 그는 탱고를 극장 쇼(Review)와 결합해 화려한 볼거리로 만들었고, 수많은 악단을 조직해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을 내보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음악도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선구자였습니다. 당시 작곡가들이 인세 한 푼 없이 곡을 넘기던 시절, 그는 작곡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단체(SADAIC*) 설립을 주도하며 탱고를 체계적인 직업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 금기를 깬 여성의 목소리: 아수세나 마이사니

카나로가 산업의 틀을 짰다면, 그 무대 위에서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아수세나 마이사니(Azucena Maizani, 1902–1970)였습니다.
1920년대 초반까지 탱고 노래의 화자는 대부분 남성이었습니다. 여성을 노래하더라도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대상일 뿐이었죠. 하지만 마이사니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목소리로 직접 욕망과 후회, 결단을 노래한 최초의 세대였습니다.
그녀의 파격은 노래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성복인 정장 바지를 입거나 가우초 복장을 하고 무대에 서며 당대의 젠더 규범을 보란 듯이 뒤흔들었습니다.
그녀의 예명은 '라 냐타 가우차(La Ñata Gaucha)'였습니다. '냐타'*는 속어로 '코가 낮은 여자'를 뜻합니다. 엘리트적인 미의 기준이 아닌, 거리의 언어를 스스로의 이름으로 삼은 그녀는 도시 근대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깨어나는 새로운 여성상을 상징했습니다.


3. 골목에서 저작권의 시대로

1920년대 중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탱고 공연이 열렸습니다. 음반사는 예술적 혁신보다는 당장 팔릴 수 있는 스타를 원했습니다. 이 치열한 시장 속에서 카나로와 마이사니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카나로는 탱고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만들어 음악가들의 생계를 보장했고, 마이사니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탱고의 서사를 여성의 것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탱고는 단순한 춤곡을 넘어, 아르헨티나 국민 모두가 소비하고 즐기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Writer’s Note] 요약 및 핵심 정리

이번 회차는 예술적 진화와 동시에 진행된 1920년대 탱고의 '산업화'를 다루었습니다.
대중문화로서의 탱고: 도시 중산층의 확대와 미디어(라디오, 레코드)의 발달로 탱고가 거대 산업으로 편입됨.
프란시스코 카나로: 명확한 리듬과 대중적 선율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저작권 개념을 도입한 탱고 산업의 설계자.
아수세나 마이사니: 남장 퍼포먼스와 주체적인 목소리로 여성 탱고 가수의 영역을 확장한 시대의 아이콘.


[단어] 더 깊이 알기

사다익(SADAIC): 아르헨티나 작곡가 및 작사가 협회. 프란시스코 카나로가 주도하여 설립되었으며, 음악가들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인세를 징수하는 체계를 마련해 탱고가 직업 예술로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냐타(Ñata): '코가 낮고 납작한'이라는 뜻의 속어(Lunfardo). 당시 서민적이고 친근한 외모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였으며, 마이사니는 이를 예명으로 사용하여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레비스타(Revista): 춤, 노래, 코미디, 연기 등이 결합된 버라이어티 쇼 형식의 연극(Review). 1920년대 카나로 등은 이 레비스타 무대에 탱고를 적극적으로 결합해 '극장 탱고'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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