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탱고 칸시온의 시대)
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도시는 이민자들과 노동자들의 활기로 가득 찼고, 유럽의 문물과 흑인, 크리올의 문화가 뒤섞이며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죠.
이 시기 탱고는 단순히 ‘춤추기 위한 음악’에서 벗어나, ‘듣고 느끼는 음악’으로 성숙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황금기를 ‘라 가르디아 누에바(La Guardia Nueva, 신파)’*라고 부릅니다. 오늘 이야기는 악기의 선율 위에 ‘목소리’를 얹어 탱고에 영혼을 불어넣은 전설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1920년대는 탱고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인 현상으로 발돋움한 시기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탱고의 위상을 높인 것은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파리의 상류층 사이에서 탱고가 유행하자, 이 열풍이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면서 탱고는 더욱 세련되고 클래식한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기술의 발전이었습니다. 라디오와 축음기, 그리고 영화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춤을 추지 않을 때도 탱고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매체들은 탱고가 ‘몸의 대화’에서 ‘감정의 공유’로 나아가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1890?–1935)이 서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탱고는 악기 연주가 중심이었지만, 가르델은 거기에 인간의 목소리와 가사를 더해 ‘탱고 칸시온(Tango Canció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확립했습니다.
그의 등장은 혁명이었습니다. 그는 1920년에서 1922년 사이 엄청난 양의 녹음을 쏟아내며 탱고를 노래 중심의 장르로 바꿔놓았습니다. 가르델의 목소리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민자의 애환과 사랑, 도시의 고독을 담아낸 한 편의 드라마였죠. 그의 노래가 라디오를 타고 흐를 때, 전 세계의 청중들은 비로소 탱고가 가진 슬픔의 정서에 공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르델이 탱고의 황제였다면, 그 반대편에는 로시타 키로가(Rosita Quiroga, 1901–1984)라는 걸출한 여제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는 여성이 대중음악의 전면에 나서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키로가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1923년부터 1931년 사이 왕성한 녹음 활동을 펼치며,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탱고 판에 여성의 목소리를 당당히 새겨넣었습니다.
그녀의 탱고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담백함과, 아르헨티나 토착민(크리올) 특유의 거친 매력이 공존했습니다. 그녀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음반을 통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의 발자취는 훗날 메르세데스 시모네나 리베르타드 라마르케 같은 전설적인 여성 가수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1920년대의 탱고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변화는 ‘춤추지 않는 사람들’의 등장이었습니다.
이전까지 탱고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춤을 췄습니다. 하지만 가르델과 키로가의 시대가 오자, 사람들은 축음기 옆에 둘러앉거나 라디오 앞에 모여 숨을 죽였습니다. 가수의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로시타 키로가의 성공은 탱고가 가진 ‘성별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거친 항구의 남성성으로 대변되던 탱고에 섬세한 여성성을 불어넣었고, 탱고를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진정한 ‘대중가요’로 확장시켰습니다.
1920년대, 탱고는 ‘몸’을 넘어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라 가르디아 누에바: 기술(라디오, 녹음)의 발전과 함께 탱고가 ‘듣는 음악’으로 진화한 시기.
카를로스 가르델: 기악 중심의 탱고에 목소리를 더해 **‘탱고 칸시온’**을 확립한 전설적인 인물.
로시타 키로가: 1920년대 음반 시장을 주도하며 여성 탱고 가수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
라 가르디아 누에바 (La Guardia Nueva)*: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이어진 탱고의 중흥기. 음악적으로 세련되어지고 연주와 감상 중심의 문화가 정착된 시기를 말한다.
탱고 칸시온 (Tango Canción)*: ‘노래하는 탱고’. 가사가 있는 노래 형식의 탱고로, 춤보다 가사의 전달과 감정 표현을 중시한다. 가르델의 「미 노체 트리스테(Mi Noche Triste)」가 그 효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