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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Mar 17.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3

수업이 끝나자마자 엘리아나에게 다가갔다. 엘리아나와 함께 오늘 배운 걸 연습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다가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엘리아나는 짐을 챙겨서 문을 나섰다. 엘리아나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쉽지만 다음 수업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새 사람들은 각자 짝을 지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배우지 않은 동작들도 다수로 하는 걸 보니 대부분이 경험이 있는 사람들 같았다. 나만 초보라고 생각하니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조용히 거울 앞으로 가서 오늘 배운 동작들을 따라 해 봤다. 자꾸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이 눈에 밟혔지만 다음에 엘리아나와 춤을 췄을 때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탱고는 처음이신가 봐요?"

조금은 느끼한 목소리에 미간이 찡그려졌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말을 건 상대를 바라봤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조금은 통통한 체형을 가진 남자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아, 네, 뭐, 춤 자체가 처음이어서요."


"오, 춤이 처음이신데 탱고를 배우세요? 굉장하신 분이시네요. 어쩌다가 탱고를 배우시게 된 거예요?"


"아, sns를 찾아보다가 알게 됐어요. 굉장히 로맨틱해 보이더라고요."


"아주 좋습니다. 로맨틱하면 탱고죠.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 보셨어요? 보통은 그 영화를 보시고 많이 입문하시는데."


"아니요, 탱고가 어떤 춤인지, 문화가 어떤지,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그게 중요한가요. 탱고 재밌는 춤이에요. 거기에 남자가 춤을 잘 추면 여자가 줄을 서요 줄을."

그는 여태껏 봤던 표정 중 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혹시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데이빗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루크예요. 잘 부탁드려요. 아니, 이것도 인연인데 이따가 같이 맥주나 한 잔 하실래요?"


"아, 오늘은 일정이 있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일정은 없었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맥주를 마신다는 게 부담스러워 루크의 제안을 거절했다. 


루크는 개의치 않는 듯이 다음 주에 시간을 가지자 했다. 두 번은 거절하기가 그래서 다음 주에 시간을 갖기로 약속을 한 뒤에 루크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루크는 사라지면서도 탱고가 어려워서 도망가면 안 된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능청스러움이 싫지만은 않았다. 


루크가 떠나고 나자 무언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혼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남의 연습을 훔쳐보거나, 남들이 춤추는 걸 보고 있자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존재감은 그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빈자리가 느껴질수록 외면해야 견디는 게 사람이다. 생각이 이어지기 전에 짐을 챙겼다. 나만 혼자인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흥미로웠지만 쓸쓸했다. 

탱고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채 문을 나서려 하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밀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밀러는 잠시 내게 커피 어떻냐고 물었다. 밀러의 권유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가 준비되는 동안 아무런 변화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꼭 누군가의 연락이 올 것 같은 기분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연락이 올 사람이 없음에도 습관처럼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화면을 껐다 켰다 하며 커피를 기다렸다. 잠시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고 커피 향이 났다. 밀러가 커피를 들고 다가와 자리에 앉으며 내게도 커피를 건넸다. 그때까지도 밀러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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