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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Feb 20.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2

살리다

"시작 전에 자기소개를 깜빡했네요. 돌아가면서 자신의 닉네임 하고 인사 부탁드립니다."

막 서로의 거리를 좁히려 할 때 밀러가 잠시 진행을 멈추고 말했다.


서로의 커넥션이 생기기 전에 통성명을 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밀러는 마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듯 진중한 표정으로 인사를 진행시켰다. 사람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물론 그 이름이 자신의 실제 이름은 아니었지만, 탱고에서는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가명을 썼다. 나 또한 그들에 맞춰 가명을 지었다.


"반갑습니다. 데이입니다."

수업을 듣는 사람의 숫자가 제법 됐기에 멀리 있는 사람도 들을 수 있게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인사했다. 긴장한 나머지 스스로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고개를 숙였다. 아차 싶어 귀가 빨개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기에 표정을 숨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엘리아나예요. 잘 부탁드려요."

이어서 인사를 주고받았던 그녀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작은 목소리에서 잊고 싶었던 누군가가 잠깐 스치듯 머릿속을 지나갔다. 마치 아무것도 떠오른 적 없던 것처럼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에 묻혀 기억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박수를 치고 있으니 어느새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끝나있었다.


밀러와 조이는 곧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앞에 있는 상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연습 아브라소(Abrazo)를 해보라고 말했다. 강습생들은 그들을 따라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서로 간의 간격을 만들었다.


"탱고를 출 때 이 간격이 굉장히 중요해요. 적정한 간격은 춤을 아름답게 만들 뿐 아니라 상대를 힘들지 않게 해 줍니다. 그 간격을 침범해서 상대의 축을 건들게 되면 상대의 춤은 무너지게 돼요. 그러니 적정한 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자, 이제 이 간격을 유념하시고 서로 연습 아브라소를 유지해 보세요."

조이가 수강생들을 훑으며 이야기했다.


사람들을 훑는 조이를 바라보다 조이와 눈이 마주쳤다. 조이는 알아듣겠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잘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알아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이는 고개를 돌리며 이어 말했다.


"자 이제부터는 상대방의 무게중심을 확인하는 연습을 할 거예요. 탱고에서 가장 기본은 바로 이 무게중심이에요. 무조건 한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실을 거예요. 이 무게중심을 바꿔가면서 춤을 출 겁니다. 스탭이 바뀌면 중심이 바뀌겠죠. 상대방도 마찬가지예요. 탱고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에요. 그러니, 상대방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해요. 지금은 그 연습을 해볼 거예요."


어색함에 눈치를 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밀러와 조이를 따라 하자 나도 그들을 따라 엘리아나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무게 중심을 옮길 때마다 그녀가 나를 따라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게 느껴졌다. 크게 맞닿아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중심의 이동이 나를 더 몰입하게 했다. 단순히 스탭을 따라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만족감이 있었다. 함께 움직이는 걸음이 점점 부드러워졌고, 나는 그제야 숨을 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 이제는 본격적으로 살리다 스텝을 배워보겠습니다. 이쪽을 보시겠어요."

밀러가 주의를 환기시키며 수강생들에게 말했다.


홀을 울리는 밀러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스스로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있었다는 사실을 밀러의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밀러는 사람들이 집중하는지 가만히 살피더니 이어서 말했다.


"오늘 배울 스탭은 앞서 보여드렸던 식스 살리다 스탭이에요. 발도사(la baldosa)라고도 하는데 여섯 개의 스탭이 마치 타일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보통은 식스 살리다 스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여섯 개의 스탭이 탱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스탭이에요. 많이 쓰게 될 스탭이니, 자세히 보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밀러와 조이는 서로를 안았다. 그와 동시에 마치 노래가 틀어져 있는 것처럼 여섯 발자국의 걸음을 걸었다. 백, 사이드, 프런트, 프런트, 사이드, 하나의 동선을 따라 춤이 완성됐고, 밀러는 또다시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굉장히 쉽죠. 자 따라 해보겠습니다. 파트너 체인지 해주시고요, 남자분들이 반 시계방향으로 움직여주세요."


이제 막 적응이 된 상대를 두고 자리를 옮기라니 내키지 않았지만 밀러의 말에 따라 자리를 옮길 준비를 했다. 양손 손바닥을 서로 부딪치며 '그라시아스'라고 인사했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남겨두고 자리를 옮겼다. 반가운 듯 인사하며 또 다른 상대와 아브라쏘를 잡았지만 아까의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밀려오는 잡념을 뒤로한 채 밀러와 조이의 말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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