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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Feb 18.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1

Media Luna


0. ◐


사랑이 뭔지 내게 묻는다면 사실 난 사랑이 뭔지 아직 모르겠다. 사랑을 말하기에 너무나 미숙하고 비루했던 삶의 경험들로 인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이란 담론이 내게는 너무 거대해서 남들이 쉽게 한다는 사랑이란 걸 아직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사랑을 못하고 있다는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말일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고 미쳐있었기에 인생의 경로를 탈선하여 지금에 와있고 이 순간에 이 스텝을 밟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섯 발자국이 떨어지기도 전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스탭에는 출구가 없다는 걸.



1. 살리다(Salida)



"우노, 도스, 뜨레스, 좋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노, 도스, 뜨레스, 잘 보셨죠? 어렵지 않습니다. 이게 탱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스이에요. 식스 살리다라고 합니다."

밀러가 가볍게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그의 장발은 언제나 춤을 추고 나면 그의 눈을 가리곤 했기에 스탭을 설명할 때면 항상 머리를 뒤로 넘기곤 했다. 오늘도 그는 스탭이 끝난 후 머리를 넘기고 있었다.


이십 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그와 반대로 나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밀러의 몸짓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춤이란 것에 도전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은 정말 우연이었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집으로 가는 길에 전봇대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보게 됐고, 그 전단지 안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네 개의 다리 하나의 심장,  당신과 하나의 심장으로 춤춥니다." 그 말은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그 즉시 탱고를 배우겠다며 클래스를 찾아가 수업을 등록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어렵지 않죠? 남자분들 제 뒤로 오시고, 여자분들은 조이 선생님 뒤로 서세요."


간단하게 스을 알려준 밀러는 수강생들을 각자의 선생님 뒤로 자리하게 한 후 디테일 한 설명을 이어갔다. 여섯 개의 발자국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형태는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마치 어린 송아지가 처음으로 걷는 법을 배우듯 그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나가아가면 뒤따라 한 걸음 나아가고, 그가 옆으로 걸음을 옮기면 마찬가지로 걸음을 옮겼다. 걷는 게 뭐가 어렵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탱고의 이름이 붙고 나면 걸음 하나가 힘들고 어색했다. 밀러는 계속해서 여섯 걸음을 반복해서 걸었고, 비슷하게 그 흉내를 내며 그를 따랐다.


"어렵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제 둥글게 원을 만들고 한 번 남, 녀 잡아볼게요."

그가 다시 한번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생글거리는 미소로 말하는 모습에 몇 사람의 볼이 붉어지는 게 눈에 띄었다.


"가만히 있지 마시고, 남자분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게요. 돌아가면서 할 거니까. 빨리 여성분들 찾아가세요."

밀러의 말이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남성들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조이가 큰 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제야 남성들은 각자의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성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 보는 사람과 춤을 춘다는 생각에 조금은 긴장됐지만, 첫인상을 잘 남겨야 될 것 같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었기에 최대한 할 수 있는 미소를 띠고 인사했다. 그녀도 조금은 수줍은 듯 내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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