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G THE DOGS
2017년 나는 한국에 없었다. 이번 연휴에 한국을 다녀왔는데 일 년 만에 한국에 오니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바뀐 것이 많았다. 바뀐 것을 나누자면 일 년 전에 있던 것이 없어진 것, 없던 것이 생긴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제일 처음으로 눈에 띄었던 없어진 것은 대용량 커피, 음료 가게들이다. 또 우후죽순 생겨나던 카스텔라 전문점도 없어졌다. 새로 생긴 건 대용량 음료 가게가 없어진 대신 조금 비싸더라도 특별한 음료를 파는 카페가 많이 생겼고 코인 노래방이나 1인 식당이 많아졌다. 전에도 유행이었던 인형 뽑기 방은 여전히 많았고 비트코인에 대한 열풍도 뜨거웠다.
내가 인터넷으로 접한 2017년 한국에서 핫했던 것들로는 힐링 예능, 경리단, 황리 단길 처럼 핫플레이스 골목길, 카카오 뱅크 등이었다.
일 년간 한국의 어떤 것이 바뀐 지 찾아가다 보니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바로 지금 리뷰하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 2018]이다. 2017년 대한민국 트렌드도 돌아볼 수 있고 2018년 트렌드까지 예측한다고 하니 끌려 집어 들게 되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연말쯤 나와 그해 대한민국 트렌드를 분석하고 내년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으로 출간되면 항상 베스트셀러에 올라간다. 부제는 당해 연도의 간지에 해당하는 동물이 들어가는 문구이며 이번 트렌드 코리아 2018은 무술년에 맞게 Wag the dogs다. 그리고 그해에 해당하는 색깔을 선정해 책을 디자인하는 등 재밌는 요소가 많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은 크게 세 부분으로 메가트렌드, 2017 소비 트렌드 회고, 2018 소비 트렌드 전망으로 나눠져 있다.
트렌드는 유지되는 기간을 기준으로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수시로 바뀌는 마이크로 트렌드, 1년 이내의 패드, 3-5년 정도의 트렌드, 10년이면 메가트렌드, 30년 이상은 문화라고 부른다. 이번 트렌드 코리아 2018은 10주년 특별판으로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던 메가 트렌드를 알아보고 작년 트렌드를 회고, 내년 트렌드를 예측한다.
책에 나온 총 20가지의 트렌드 중 4가지만 추려 소개한다.
언제가부터 인테리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엔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DIY 가구가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그 인기가 인테리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조명으로 넘어가고, 예전엔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을 것 같던 도배나 타일링도 직접 시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테리어에 관한 정보는 유튜브나 블로그 어딜 가든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인테리어에 관한 TV 프로그램도 나왔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건 인테리어라고 다 같은 인테리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인테리어에 관한 관심은 방이 4개 딸린 커다란 집들 보단 원룸이나 투룸 같은 작은 공간에 어떻게 하면 싸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꾸밀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럼 그럼 내가 비록 좁은 곳에 살더라도, 내 집이 아닌 전셋집이라도 이쁘게 꾸며야지, 우리 인생은 한번뿐이니까!
무한도전에서 YOLO 특집을 본 적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한도를 모르는 신용카드를 들고 다니며 불안해하면서도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에라 모르겠다!'하고 지르는 내용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욜로가 이런 거구나'하고 각인됐다.
하지만 현재를 위해 내 모든 것을 탕진해버리는 것 만이 욜로가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현실감을 더해보면 평소에 절약하며 살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 내일에 기대를 하기보단 현재에 집중하고 투자하는 것 또한 욜로다. 소소하게 일을 마치고 편의점에 들러 일반 맥주보다 조금 더 비싼 수제 맥주를 마시는 것, 밥 값은 아끼더라도 고급스러운 디저트 전문점에 가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4년이 넘은 휴대폰을 바꾸기보단 가지고 싶었던 닌텐도 스위치를 사는 것 등이 해당한다.
대부분의 트렌드가 10대~30대가 만들고 특히 욜로라는 생활 방식은 젊은 층만 해당될 거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중, 장년 층에서도 변화가 보였다. 중장년층의 장기 해외 여행자 수가 늘고 있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으로 여행을 즐기는 중장년층이 늘어나고 있다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가진 돈을 다 써버리는 것만큼 극단적이지 않다면, 나는 욜로라는 생활방식이 보편화되는 것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일단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거의 없다시피 하는 이자율과 평생 모아도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현재 상황, 미래를 낙관할 수만 없는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은 전혀 나쁠 것 없다.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구성원 각자가 다른 것을 즐기기에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한국사회에서 부족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다. 또한 앞에서 본 것처럼 욜로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세대 간의 소통을 돕고 세대 갈등을 줄여줄 수 있는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미래는 불투명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사는 것 만이 목표가 아닌 개인에 맞게 행복을 찾아가는 방식인 트렌드 욜로를 응원한다.
내가 재화의 서비스화라는 트렌드를 가장 가깝게 느낀 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365와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서비스다. 일을 할 때 사용하는, 기본적인 엑셀과 워드 그리고 디자인을 위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나 라이트룸, 이 모든 프로그램이 원래는 한 번에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이젠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내고 구독하는 서비스 형식으로 바뀌었다.
항상 최신 버전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고 한 번에 큰돈이 들지 않아 좋다. 이런 현상이 다양한 소비 분야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버, 음원의 스트리밍 서비스, 옷도 소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즐기는 패션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서비스를 해주는 온디멘드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가전제품들 중 위생이 중요하지만 청소하기 힘든 에어컨이나 매트리스를 관리해주는 홈케어 서비스가 인기다. 그리고 안마의자나 정수기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동침대, 친환경 자동차, 비싼 여행용 가방까지 렌털 서비스가 나온 것 또한 서비스화의 한 부분이다.
이렇듯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는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일반적으로 5가지의 서비스 핵심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서비스는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한다.
1. 편리함
2. 절약, 경제적 이득
3. 새로움
4. 틈새시장
5. 개인화
만물의 서비스화는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큰 지출 없이 다양한 것을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가성비 좋은' 경험을 찾는 현대인의 특성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기술 경영에서 디자인 경영으로 변화 후 디자인 경영이 일반화된 지금 기업의 입장에선 서비스 경영이 다음을 이을 혁신일 것이다.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고 생활의 개선과 함께 볼 수 없었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서비스 개발에 대한 연구와 기획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워라밸은 Work - Life -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워라밸은 젊은 직장인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다니던 직장에 평생 충성을 바쳐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일에 희생했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워라밸 세대는 일이 중요한 만큼 나 자신, 취미, 나의 성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과 나 자신의 균형을 위해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힐링할 수 있는 패스트 힐링이 유행이다. 또 점심시간 직장 동료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가기 보단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혼자 밥을 먹는 사람도 많아졌다.
일과 내 취미의 균형도 중요하다. 아무리 일이 늦게 끝날지라도 밤을 새워가며 자신의 취미를 즐기는 '호모 나이트쿠스족'과 늦은 시간에 운동을 하는 '나포츠족'이 그 예다. 또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예능 학원의 수강자도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개개인의 재능을 연결해주는 '탈잉', '취알못(취미를 알지 못하는)'을 위한 취미 추천 서비스 '하비 인더 박스'도 성장 중이다.
일과 성장의 균형도 워라밸 세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퇴근 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구몬 학습의 성인 회원수가 가파르게 성장하는 것, 중. 고등학교 참고서 구매 중 20대 ~ 30대의 비율이 29.4%나 된다는 것은 사회인이 된 후 공부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 공부는 오롯이 자기만족을 위한 공부뿐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금 사람들은 평생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살 것이다. 그리고 직장 이동의 바탕이 되어줄 공부, 이를 통해 다른 분야를 넘어 볼 수 있는, 바로 퇴사 준비를 위한 공부가 될 수 있다.
과연 워라밸 세대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본작에서는 두 가지의 이유를 꼽는다.
1. 업그레이 된 자기애
2. 불안한 시대를 견디는 셀프 처방
워라밸 세대는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고 진보적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도전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준비한다. 따라서 스스로가 행복하기 위한 직장, 일과 자신에 대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직장을 찾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 유난히 눈에 띈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균형이 심각한 수준으로 무너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워라밸 세대는 적절한 임금 수준과 복리 후생, 문화적 욕구와 즐거움을 모두 누리고 싶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충족하는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앞서 말한 욜로 처럼 워라밸 또한 자신의 삶에 열정적이지만, 불투명해진 미래와 살기 힘들어진 현실에 처한 젊은 세대들의 현실 적응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일만 하다 죽으면 그게 뭐가 좋은데?'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큰 흐름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시도는 목적을 잃고 진행되는 수단의 극대화를 멈추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번 트렌드는 최근 읽은 글 중 나에게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사람 간의 관계라 하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애인, 친구, 가족, 직장 동료 등이 끝이 아니다. 다양한 관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젊은 세대라면 익숙할 수 있는 '랜선 이모' (관계의 네트워크화), 내가 필요할 때만 만나고 소통하는 일회성 인간관계인 '티슈 인맥'과 '번개 모임'(관계의 프로젝트화),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을 일컫는 '집사' (관계의 비 휴머니즘화)가 그 예이다.
어째서 네트워크를 통한 인간관계, 깊게 이어지지 않는 단발적인 관계, 사람 사이의 관계 보단 동물 간의 관계를 사람들은 찾게 되는 것일까?
본저에서 말해주는 신박한 답변은 바로 '관계의 가성비'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드는 노력과 그 관계를 통해 내가 얻는 만족을 따져보고 노력을 적게 투자해서 얻는 행복이 많은 관계를 택한다는 말이다. 관계의 네트워크와, 프로젝트화, 비 휴머니즘화의 공통점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노력이 적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문화를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저맥락 문화와 고맥락 문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저맥락 문화는 직설적이고 명료한 커뮤니케이션을 구사하고 자기 의사를 말과 문자로 분명히 밝힌다.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는 우회적이고 애매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사하며 언어에 담긴 함축적인 뜻을 알아차려야 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한 종합적인 이해가 미덕인 사회인 셈이다. 이와 같은 기준에서 볼 때 보통 개인주의 문화는 저맥락 문화로, 집단주의 문화는 고맥락 문화로 분류된다.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는 고맥락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고맥락 문화에선 상대방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와 함축적인 뜻을 빨리 파악해야 하는데 (aka. 눈치가 빨라야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당연히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이 들지 않는 관계, 명료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저맥락 관계 만들어 가고 있다. 필요할 때만 만나며 (관계의 프로젝트화), 인터넷 댓글 다는 것 이상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네트워크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비 휴머니즘화) 이런 관계가 가성비가 좋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은 너무 당연한 이유이다. 다른 이유로는 다른 트렌드인 '미니멀리즘화'가 관계에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현대인의 자기중심적 가치관 그리고 SNS, 기술의 발달로 같은 목적의 관계를 원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성비가 좋은 관계는 투자되는 비용이 적게 들지만 그만큼 깊은 관계를 만들기 어렵다. 자기중심적 가치관이 반영된 이런 관계들이 커질수록 서로를 깊게 신뢰하는 관계는 줄어들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면 언제나 불안해질 것이다. 자기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흔들리게 된다. 그럴 때 의지하고 위로가 될 수 있는 깊은 관계가 없다면 다시 자신을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관계의 가성비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 만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 다루는 건 소비의 트렌드지만 트렌드의 배경을 파악하다 보면 사회의 분위기를 볼 수 있다.
저성장 시대, 개인화를 넘어선 원자화, SNS와 기술 발달 등의 큰 키워드가 많은 트렌드를 발생시켰다. 이 같은 키워드는 비단 2017년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 2018, 2019년도에도 계속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중요한 키워드들이 만들었던 트렌드가 2018년에는 어떻게 이어지고 변형될지, 어떤 새로운 트렌드가 키워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