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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게츠 Feb 06. 2018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14, 55년의 기록

1987

지난 1월, 박종철 열사 사건과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을 봤다. 현대사를 다룬 다른 화들과 느낌이 달랐다. 특정 인물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박종철 열사  사건부터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의 전개 과정이 중심이 되어 영화가 진행된다. 어느 한 인 물이 영화 전체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 설경구,  하정우, 강동원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영화가 끝난 뒤엔 배우들의 연기보다는 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저 얻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역사책에 글자로 적혀있던 사람들이 살던 역사가 아니라 나와 같은 또래였던 학생들, 부모님과 같은  나이의 사람들의 억울함과 분노, 열망이 뒤섞여 만들어진 역사였다. 민주항쟁 당시 사람들이 꼈을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왔다. 지금까지 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이과였다고 핑계를 대기엔 너무 무지했다. 공부 까지는 아니어도 현대사에 관한 책이라 도 한 권 읽어보고 싶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사건과 6월 민주항쟁을 그려낸 영화, 1987


나의 한국 현대사

알쓸신잡을 즐겨봤다. 출연한 박사들의 지식과 입담도 인상 깊었지만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유시민이 문화재나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옛 위인들에게 인간적으로 감정 이입하는 모습이었다. 수천 년 전의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가지고 그 사람이 얼마나 슬펐을까 기뻤을까 하며 야기하던 유시민의 모습은 참 신기했다. 1987을 보고 나서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이겠거니 하며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게 되었다.


'1959-2014, 55년의 기록' 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의 출생 연도 1959년 부터 책의 집필 시기인 2014년까지 저자가 살아오며 겪었던 현대사의 기록이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선택하고 선택된 사실들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사실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자의 주관이 담긴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어떤 사실들을 선택했을까?

이 책은 지난 55년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빠짐없는 기록이 아니라 내가 그 시대에서 주목할 가치 가 있다고 판단한 사실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55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실 중에서 어떤 것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는가? 2014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고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실이다. 이것이 내가 역사의 사실을 선택한 기준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과거의 순간과 현재의 순간을 단편적으로 비교 해 변화한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변화한 것들의 이유를 알아가다 보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 어쩌면 가까운 미래까지도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은 1959년 대한민국과 2014년의 대한민국의 단편적인 비교로 시작된다.




어떤 게 바뀌었나

가장 첫 번째로 경제가 성장했다. 전쟁 직후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은 최빈민국이었다. 숯과 나무로 집을 데웠고 밥을 했으며 국민의 몸엔 기생충이 들끓었다고 한다.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지원받았으며 국민들은 꿀꿀이 죽을 배급받았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부터 경제 발전을 시작해 서 2015년 국내 총생산량 세계 11위에 올랐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 생활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세계적 문제인 경제의 양극화는 피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민주주의가 도입되었고 성숙했다. 1959년 당시 이승만 정권은 UN이 인정한 합법정부였지만 갈 길이 멀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민주화운동과 역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2017년 3월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 만큼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성숙했다.


세 번째로는 다양한 변화들이다. 복지, 위생상태가 개선되었고 민둥산들이 복귀되었으며 교육,  문화적 제도가 다양하게 발전했다. 당연 북한과의 관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책은 크게 위의 세 가지를 기저로 대한민국이 변화한 과정을 서술했다.



한강의 기적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저자는 첫 번째 이유로 대중의 '욕망'을 꼽았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로 알려진 욕구들은 첫 번째 '생리적 욕망', 두 번째 '안전에 대한 욕망', 세 번째 '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망', 넷째 '자기 존중의 욕망', 다섯째로 '자아실현의 욕망'이다. 인간의 욕구에 엄격한 위계를 나눌 순 없지만 이 욕구 위계를 느슨하게 적용한다면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욕구의 다섯 단계대로 국민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생리적, 안전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켰으며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 민주화 운동을 통해 자기 존중의 욕망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유전자를 꼽았는데, 역사적으로 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민족의 통일성을 지켰던 것, 전통적으로 지식을 중시하고 지식인을 우대하는 문화와 인종적, 종교적으로 균질며 중앙집권에 익숙한 민족이라는 점이 이유다.


로스토는 어떤 나라든 적절한 정책을 쓰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산업화는 비행기를 하늘에 띄우는 것과 비슷한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사회는 변화가 느리고 성장률이 낮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갑자기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한다. 이것이 '이륙'이다. 일단 이륙에 성공한 국민경제는 성숙 단계를 거쳐 높은 수준의 대중소비 단계로 나아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최초의 자본을 형성하는 것을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로 산업화에 성공하기 위해선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첫 번째 과제였다. 우리는 유럽처럼 봉건적 특권을 자본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가 해외에서 자본을 차입하고 기업이 국민에게 폭리를 취하는 방식으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이뤘다.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 외교 정상화를 감행했으며,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 중동에선 건설업을 통해 그리고 한국 내에선 기생관광을 허용해 외화를 벌었다. 정부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푸는 방식으로 물가를 상승시키고 은행과 기업이 폭리를 취했다. 국민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었으며 '외제 물건을 쓰는 건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주력산업이 빠르게 교체되었다. 식품, 섬유, 봉제 등 단순 소비재 생산에서 전기, 가전 그리고 철강, 금속, 정유, 반도체, 컴퓨터 등 부가가치가 큰 산업으로 교체되었다. 단순 소비재와 달리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은 수익이 나기까지 긴 연구기간이 필요하며 대규모 시설과 기술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 투자를 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와 재벌밖에 없었다. 따라서 재벌은 사업의 다각화 (aka. 문어발 경영)를 다. 그 일례로 삼성의 산업 발전과정이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과 동일하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산업은 오늘날의 재벌 중심의 구조가 되었다.


현재의 경제 양극화를 설명하기에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1990년대 중반 외환위기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기체결함과 조종미숙 둘다였다. 김영삼 정부는 국내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와 민간기업의 자본수입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 한국은행의 통화관리 능력이 크게 위축된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IMF의 경제 신탁 통치가 시작되고 대한민국에 미국식 신 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금리를 높이고,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위한 정리해고를 가능하게 했다. 그 부작용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했고 고용불안은 높아졌다. 민간소비와 기업 투자가 크게 줄어 경기가 곤두박질쳤다. 죽기에는 너무 큰 기업들은 살아남았으며 이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1960년에서 2007년까지 한국의 GDP 성장


한국형 민주화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의 총합이 아니다. 제도와 행태와 의식의 복합물이다. 합리적인 제도가 있어도 행태가 비뚤어지면 그 제도는 힘을 잃는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되었다. 한창 탄핵이 진행될 때 평소엔 잘 보지 않던 인터넷 뉴스 정치면을 읽고 썰전을 꼬박꼬박 챙겨봤던 것이 기억난다. 국민의 열기는 대단했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나또한 시위를 지지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과연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로 정권이 바뀔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정권이 교체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가 있었지만 내가 아직 어릴 때 일이라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그래서 나에겐 이번 촛불 시위가 대한민국 국민의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집회를 보게 된 첫 경험이었다.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민주주의 정치혁명의 유일한 방법은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나의 한국사」에서 저자는 대한민국의 환경과 특성에 따라 저항권을 행사하는 적합한 방법이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 봉기라고 했다. 3.1 운동,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일어났으며 작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도 이와 같다. 이번 촛불시위와 달리 나머지 '도시 봉기'들은 국민들이 피를 튀기며 직접 계엄군들과 싸웠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에 나는 민주주의가 당연하다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국민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예전 국정원 댓글 사건에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넘어가면 안 될 것이란 것을 알았다.

6월 민주항쟁


공감

저자는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동시대 국민들의 감정을 그리고 우리나라를 발전시켰던 다른 시대 국민들의 감정을 공감하길 원했다. 충무로에서 1987, 택시 운전사 등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역사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군함도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등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원숭이의 뇌에는 거울 뉴런이 있다고 한다. 다른 원숭이의 행동을 흉내 낼 때 거울 뉴런이 활성화된다. 새끼 원숭이가 거울 뉴런을 통해 다른 원숭이의 행동을 따라 함으로써 다른 개체와 공감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렇듯 공감, 공명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며 나 자신을 개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집단으로 인식하게 한다. 우리들도 수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써 내려간 대한민국 역사에 공감함으로써 그 가치를 알고 사회적 유대감을 더하길 바란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우리가 만든 대한민국 현대사의 갈피마다 누군가의 땀과 눈물, 야망과 좌절, 희망과 성공, 번민과 헌신, 어리석은 악행과 억울한 죽음이 묻어있다. 그 55년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 그 모든 것에 공명하고 싶어 하는 동시대의 벗들에게 말하고 싶다. 벗이여, 미래는 우리 안에 이미 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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