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롬쇠, 지금껏 가장 특별한 유럽

오로라에서 개썰매까지

by 사십리터
북극의 파리라 불리는 오로라의 도시 '트롬쇠'를 여행한 이야기


# 그러니까 트롬쇠로 말할 것 같으면

가성비는 이제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단어지만 딱 하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여행'. 여행만큼은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를 따져야 한다. 트롬쇠 여행은 특히 그랬다. 오직 오로라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떠났고, 8일을 투자했다. 제대로 된 오로라를 본 건 한 시간도 안 되는 잠시 잠깐 찰나의 짧은 순간이었으니 가성비, 효율 그런 건 무시하는 여행이다. 하지만 트롬쇠를 만난 가심비를 주판으로 따지면 8일의 시간 투자는 나심비(나+심리+가심비=나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 따위) 갑이었다.

IMG_0629.JPG 시내 한복판에 쌓인 눈. 트롬쇠가 어떤지를 보여준다.

# Tromsø

트롬쇠 또는 트롬소. 둘 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겠지만 트롬쇠 쪽에 더 가깝게 들렸다. 북극권답게 멀다. 한국에서는 트롬쇠는 물론 노르웨이까지 가는 직항도 없다. 최소 두 번, 세 번의 환승을 거쳐야 도착한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환승을 해서 오슬로에 도착했고, 공항 근처에서 1박을 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서 트롬쇠에 도착했다. 내가 이 피오나의 겁나먼왕국만큼 먼 도시를 알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오로라 때문이다. 이렇게 멀리 있는 오로라인데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 없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인정한다. 그걸 보겠다고 거기까지 간 내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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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에 밤에 도착, 공항 앞 Park Inn By Raddisson 호텔에서 1박을 했다. 호텔비는 노르웨이 1차물가쇼크를 줬다. 내 평소 여행에선 말도 안되는 가격...


# 고도비만 캐리어

트롬쇠는 북극권이다. 겨울이다. 춥다. 당연하다. 추위에 겁먹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대비를 했다. 나는 평소에 혼자 여행할 때 짐을 적게 들고 다니는 편이다. 일본, 중국 정도의 단거리 여행은 수하물 없이 다닌다. 하지만 이번엔 온갖 두꺼운 옷과 방한용품, 핫팩, 심지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던 날 이후 처음으로 컵라면까지 챙겼다. 캐리어는 뱃살보다 빠르게 무럭무럭 자라서 30kg을 훌쩍 넘겼고 두 개로 나눠야 했다(물론 핫팩같이 무거운 일회용품은 다 쓰고 와서 돌아오는 길에는 짐이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두 개의 짐 덩어리와 걸어가던 나는 눈보라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짐이 되었다.

IMG_0672.JPG 비행기만 세번 타고 도착한 트롬쇠 공항은 아주 작다. 일반 구역에는 편의점 하나와 ATM, 탑승구역에는 편의점과 카페 몇개 정도가 전부다.

# 트롬쇠의 호텔...이라기 보다는 숙소

노르웨이에서 문장을 시작하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비싸!”. 500밀리짜리 생수 한 병이 오천원 이상 하는 나라다. 당연히 호텔도 비싸다. 호스텔은 드물고 에어비앤비도 마땅치 않다. 시내를 벗어난 숙소도 아주 싼 건 아니고 교통만 불편하다. 오로라투어가 끝나면 새벽이기 때문에 그냥 중심가 끝의 가장 싼 호텔을 잡았다. 그랬더니 정말... 방만 있는 수준의 호텔이었다. 침대 하나, 의자 하나(테이블 없음) 있는 구석 방엔 드라이기도 없었다. 문이 잘 열리지 않아서 문을 열 때마다 낑낑거려야 했고 외출할 때 방문에 청소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겨야 청소와 수건교체를 해줬다. 조식은 포함인데 단순하게 나온다. 그냥...돈을 생각하며 참...으려고 했는데 여기도 하루 8만원 짜리 방이다. 동남아에서 8만원으로 갈 수 있는 리조트가 아른거렸다.

IMG_0525.JPG Skansen Hotel에서 제일 저렴한 방. 이게 전부다. 1층같은 2층이라 길가는 사람이랑 눈도 마주친다. 화장실 샤워커튼이 제일 충격이었는데 너무 충격이라 사진도 안찍었다.

# 오로라투어

트롬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방법은 Visit Tromso(트롬쇠 관광안내소)에서 예약하는 방법이다. 원래는 잘 보이는 하얀 건물이었는데 이전해서 위치가 바뀌었다. 항상 여행자들이 많고 붐빈다. 영어를 잘하고 궁금한 게 많다면 여기서 예약하면 되겠지만 그냥 관광안내소 앱이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직접 해도 된다. 인터넷이 더 편하고 빠르다. 나는 첫날은 안내소에서 예약했고 그다음부터는 그냥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했다. 한국에서 예약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갔던 시기가 성수기였던 것인지 가장 원하는 투어에 자리가 없었다.

DSC02183.JPG 트롬쇠 시내 풍경이다. 대낮이다. 진짜다. 극야가 이렇다. 극야 경험은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오로라 만큼이나.

세 번의 오로라투어를 했고 모두 다른 업체에서 했다. 첫 번째는 대형버스 투어. 만약 방문한 날에 오로라지수가 높고 구름이 없다면 어떤 투어를 선택해도 상관없다. 내가 버스투어를 했던 날은 오로라가 희미했지만 다음날 같은 투어업체의 사진을 보니 제법 선명한 오로라가 있었다. 역시 업체보다는 날씨가 문제다. 두번째 투어는 9인승 차 두 대가 함께 움직이는 투어였다. 이날 오로라지수는 좋았으나 너무 트롬쇠 주변으로만 다녀서인지 오로라는 잠깐밖에 보지 못했다. 마지막 스팟에서 시내까지 30분도 안 걸렸던걸 보면 그냥 트롬쇠 주변만 알짱거린 정도다. 세 번째는 트롬쇠 여행 계획 중인 한국인들은 다 아는 Flexi Tour. (대체 어쩌다 유명해졌단 말임? 이제 네이버에 트롬쇠 연관검색어로 뜬다...) 일단 결론만 말하면 소문대로 좋았다. 너무 한국인만 모이는 게 싫어서 고민하다 예약해봤는데 이날 가장 좋은 오로라를 봤다. 다니엘은 정말 열심히 오로라를 찾아 주었고 더 좋은 사진이 나오도록 많이 도와주었다. 휴일까지 반납하면서 오로라가 더 잘 보이는 날로 투어를 옮겨서 진행해 준 나의 오로라요정이다.

DSC02340.JPG #오로라 #로맨틱 #성공적

# 트롬쇠의 시간은 반대로 간다

트롬쇠의 5박을 결정하면서 할 일이 없을까봐 걱정했다. 헛걱정이었다. 첫날은 심심할 수 있다. 날씨는 안 좋지 할 일은 없지 북유럽이라 6시면 다 문 닫고 심지어 마트에서 냉장고에 자물쇠 채우고 술도 안판다(제일 기절할 부분). 오로라 투어 한번 다녀오면 고민 끝이다. 피곤해서 다음 날 오후가 돼야 눈이 떠진다. 어찌하다 보면 또 투어 갈 시간이다. 트롬쇠는 밤낮의 구분이 없는 곳이며, 낮과 밤을 바꿔야 하는 곳이다. 다른 투어들도 해볼 생각이었으나 오로라투어+개썰매를 타던 날 체력 고갈이 오면서 그냥 포기했다. 고래와칭이나 피오르드 투어 등 투어가 많으니 찾아서 하면 된다. 아, 물론 비싸다.

DSC02128.JPG 트롬쇠는 이렇다. 자고 일어나서 오로라투어하고. 딱 봐도 할일은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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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트롬쇠의 관광지 1번 '북극대성당'. 정면에 십자가, 전체적인 조형미가 독특한 건물이다. 백야기간에는 백야콘서트를 한다고 한다.
DSC02239.JPG 그나마 트롬쇠의 관광지 2번 '도서관'. 문 열기 전이라 어둡다. 시내에서 제일 기억 나는 곳. 도서관 모든 층이 연결된 느낌이다.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꾸게 한 건물.

# 흰 눈 사이로, 개썰매 타고

오로라를 보던 순간만큼 즐거웠던 건 바로 개썰매였다. 오로라가 트롬쇠의 밤의 기억이었다면 개썰매는 낮의 기억이다. 북극의 낮은 스치듯 안녕이라 기억하기 힘들다. 끝없는 설원에서 다섯 마리 개들과 함께한 시간은 해가 떠 있는 동안 했던 유일한 활동이자 기억이다. 물론 밤에도 탈 수 있는데 나는 오로라투어와 겹치지 않는 시간으로 선택했고 그나마 트롬쇠에 해가 뜨는 시간이라 앞이 보였다. 무슨 말이냐면 밤에는 보이지 않았을 하얀 설원이 보였다. 넓은 눈밭을 채우는 것은 개소리 뿐이다. 동물 위에 탄다는 일에 반감이 있어서 엄청 고민했는데 투어가 끝날 때 개들이 이걸 산책으로 생각한다는 걸 인정해야했다. 달리지 못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애들이다. 다 좋은데 한시간 이상 썰매를 타려니 체력이 들었다.

DSC02010.JPG 허스키나 사모예드 같은 썰매견이 아니다. 생각보다 작은 개들 다섯 마리가 2명이 타는 썰매를 끈다. 장거리는 일곱 마리가 끈다고 한다. 모든 개들에게 이름이 있다.
DSC02012.JPG 이렇게 눈 속을 달린다. 썰매 조작법은 단순하지만 일어서서 꽉 잡아야하기 때문에 균형감각이 좀 필요하다.
DSC02024.JPG 개들이 멈추거나 천천히 가는 걸 못한다. 달리는 중에 응가도 하고 눈도 퍼먹는다. 달리다 멈추면 저렇게 바닥에서 낑낑거린다. 훈련 때문인지 진짜 달리고 싶어서인지 구분이 안된다.

# 내가 사랑한 유럽, 트롬쇠

이번 트롬쇠 여행은 나에겐 유럽의 재발견이었다. 최고인 줄 알았던 유럽여행이 어느 순간부터 평범하게 느껴졌다. 고작 몇 번의 여행으로 유럽은 작은 대륙이고 명성에 익숙해서 대단하게 느꼈을 뿐 사실 별것 아니라는 건방진 생각이 생겼다. 그럴 때 트롬쇠를 만났다. 트롬쇠는 지금까지 유럽을 여행하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그동안 유럽여행에서는 물가와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항상 시간이 아까웠다. 하지만 트롬쇠에서는 오로라 투어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 그곳은 로마처럼 눈 닿는 곳마다 유적지가 있지 않고, 파리처럼 유명한 건축물과 예술품이 그득한 곳이 아니며, 런던처럼 전 세계에 알려진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곳이 아니다. 겨울 트롬쇠에 가득한 건 오직 눈과 밤이다. 눈 오는 밤에 눈 그친 밤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곳이 트롬쇠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유럽의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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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트롬쇠 전망대에서 본 풍경. 너무 예쁜데...너무 좋은데...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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