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돌아보며
내 여행의 마무리는 여행을 돌아보는 글 한편을 쓰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호주 여행은 글이 써지지 않았다.
즐거웠고 기억에 많이 남아서 단숨에 써낼 줄 알았지만 몇 달 동안 글을 한페이지도 완성할 수 없었다.
많은 순간이 떠올라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이내 속도가 느려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간신히 쓴 문장을 살피면 평소 내 문장이 아니라 낯설기까지 했다.
표현력에 한계가 온 것이다.
내 세계에서 받은 적 없는 느낌을 어떤 말로 꺼냈어야 적당했는지는 마지막 페이지를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자연의 나라. 이민.”
호주를 생각하면 그런 말들이 떠올랐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좋다고 말할까?
궁금했다.
하지만 생각만 하면 떠났던 다른 여행과 달리 호주여행은 계획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방해가 많았다.
각종 이유로 여행이 취소될 때마다 나랑 인연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다녀오고 나서 왜 하루빨리 그곳에 갈 수 없었는지를 알았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호주를 알았다면 성급하게 이민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지상낙원에 파라다이스라서가 아니다.
호주는 참 살기에, 살아가기에, 삶을 보내기에 좋아 보였다.
고작 며칠로 거대한 나라를 전체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이민은 꿈꾸지 않지만 조금 더 치기어린 시절에 호주를 찾았다면 단박에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이민은 무리겠지만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을 고르라면 호주를 고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여행이 좋았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호주가 여행으로 오기엔 적당한 나라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패키지여행에는 최악이다.
호주는 그다지 관광객을 위한 곳은 아니다.
호주의 관광이란 시설을 갖추고 여행자를 맞이하는 방식이 아닌 그냥 있는 자연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월미도 바이킹 수준의 루나파크가 유럽대륙보다 큰 이 나라에서 제일 큰 놀이공원이다.
최소한으로 마리네이드 하고 장식도 없이 식탁에 내놓지만 육질이 좋아서 맛은 최고인 스테이크의 맛과 같은 나라였다.
에버랜드, 디즈니랜드, 유니버셜스튜디오 같은 자극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해졌다.
매운맛, 짠맛, 단맛 따위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이들에게 관광이란, 놀이란 헤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에게도 도시는 있지만 서울처럼 어지러운 곳은 아니다.
혼자 걷지 않으면 이 나라의 적막함을 깨야 한다.
다른 관광지에서 하듯 정신없이 다니기엔 도시에 초점이 없다.
단체여행은 이 밋밋함과 나른함을 즐기기에 부적합하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한가로움과 여유에 취해 인생을 만끽하는데 나만 바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시 아무도 모르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 대륙 호주는 내가 털어 낸 먼지 하나 정도는 받아준다.
그리고 대륙이지만 섬인 그곳에 뿌린 나의 작은 응어리들은 내가 그곳을 떠나는 순간 나를 따라오지 못하고 사라진다.
사실 호주의 특색이 뭔지는 모르겠다.
시드니나 멜버른이 뉴욕이나 홍콩 수준의 눈 돌아가는 마천루의 도시도 아니고, 유럽 본토처럼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이 늘어선 곳도 아니고, 문화유산이 들어서거나 도시의 역사가 유구한 것도 아니며, 광활한 자연이라면 다른 나라에도 있다.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 중 가장 한 프레임에 가장 다양한 장면이 들어오는 건 조금 특이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갔을 때는 내가 어려서 아직 편견 없는 눈으로 봐서 사람들의 다름을 잘 몰랐고, 동서양이 섞인 느낌이라면 이스탄불이 가장 강렬했지만 터키에서는 모든 것이 나뉘어 보였던 것과 달리 시드니는 그 모든 것이 섞여 하나로 보였다.
낯선 도시인 주제에 나를 밀어낸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 나라에 만연한 백호주의 역사를 알고 있어서 편견이 있었는데도 여행자에겐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실상은 다르겠지만 잠깐 스쳐가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포장하는 매너는 있었다.
유럽과 미국을 섞은 듯한 풍경에 각국의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들어서 있고 횡단보도 앞에는 항상 신호등 색보다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서 있다.
전체적으로 특징은 없고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인데 어이없게도 그게 좋았다.
낮에는 새가, 밤에는 박쥐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여기가 사람뿐 아니라 자연 전체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알았다.
바쁘게 움직이고 싶은 곳이 아니라 어딘가 공원이나 항구 근처에 앉아서 진득하게 사색에 빠지고픈 곳이다.
살기 좋다더니 정말 관광이 아닌 생활을 꿈꾸게 된다.
마냥 앉아 있고 싶은 곳, 나에게 호주는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