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미스 사이공

처음 보는 편안함, 호치민

by 사십리터

호치민에 도착한 첫날.

6천원짜리 호스텔 문 앞에서 비 내리는 컴컴한 골목을 바라봤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저녁이 햇빛을 거둔 덕분에 38도의 더위는 살짝 꺾였다.

바로 앞에서 울리는 소음은 이 촘촘한 골목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오토바이 한 대 움직이기도 복잡한 여행자거리 뒷골목의 조용함이 신기하다.

너무 그리웠던 반미와 오백원짜리 맥주 한 캔을 들고 밖을 내다봤다.

반미를 배달하는 자전거가 들어와 어느 집에 다음 날 아침빵을 주던 중 오토바이 한 대가 연이어 들어온다.

골목은 너무나 좁아서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벽으로 붙어 나갈 방법을 고민한다.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

6천원짜리 호스텔 문 앞에서 바라본 비 내리는 컴컴한 골목은 내가 이번 여행을 기억하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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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골목이라 지나칠 뻔한 첫날의 숙소Joy Hostel. 신투어 사무실 맞은편 골목이었다. 최고 번화가 1미터 뒤의 한적함은 기묘하다.

5월 연휴는 그냥 넘어가기엔 유혹적이었던지라 나는 연휴 한정 미스 사이공이 되기로 했다.

그래 봐야 시간은 고작 4박 6일.

호지민과 무이네로 만족해야 하는 일정이다.

어디를 중심으로 할지 고민하다 무이네에서 1박만 하고 나머지 일정은 모두 호치민에 올인했다.

사구와 요정의 샘이 있는 무이네가 더 특별한 장소지만 혼자서도 잘 놀기 위해서는 도시가 더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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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무이네 일정을 1박으로 줄였다. 관광만 생각하면 무이네가 더 좋겠지만 내 취향은 역시 호치민! 도시! 호치민이 먹을게 더 많다.

예상대로 호치민은 혼자 놀기 괜찮은 장소였다.

외국인들이 많이 다녀서 적당히 편하고 취향에 맞는 식당과 가게가 많고, 베트남 경제를 이끄는 도시답게 화려했다.

외곽으로 나가면 고층 건물과 고급주거지가 있고 도로는 최근에 닦아서 서울 이상으로 정비되어있다.

호치민은 1,000원짜리 밥과 10,000원짜리 녹차가 함께 있는 도시였다.

IMG_1786.JPG 이번 여행 중 먹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팃느엉'. 분짜가 찍먹이라면 이건 부먹이라 할 수 있다. 모든 토핑을 다 올리면 우리돈으로 1300원 정도인데 맛있었다.
IMG_1804.JPG 천원짜리 밥도 있지만 프렌치 레스토랑에선 한국 이상 가격의 브런치도 먹을 수 있다. 다카시마야 백화점 안 TWG에서는 만원 가까운 녹차도 마셨다. 호치민의 물가는 좀 뒤숭숭하다.

새로 지은 고층 빌딩 속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오분만 걸으면 옛날 건물이 겹치면서 생긴 좁디좁은 골목에서 부채질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스타벅스엔 커피 종류보다 다양한 머리색의 사람들이 앉아 있고, 부이비엔 거리엔 밤보다 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먼저 달려온다.

미국 대통령이 먹고 갔다는 사천원짜리 쌀국수보다 사천 배쯤 맛있는 천원짜리 비빔국수 집에는 가게 안까지 오토바이가 들어온다.

IMG_1446.JPG 베트남에서 먹은 쌀국수 중 제일 별로였던 PHO2000. 단체 관광객이 버스로 드나들어서 일반 손님에겐 서비스 최악. 맛도 별로인데 가격은 너무 높다. 다시가라면 절대 안갈래...

익숙한 간판 뒤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을 구경하느라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호치민의 하루는 선택에 따라 어느 날은 만원, 어느 날은 수십만원이 든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만족스러웠다.

성장하는 도시 속을 거닐다 보면 나도 함께 빨라진다.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의 공식 명칭은 사이공이란 이름만큼 과거 속에 있다.

IMG_1483.JPG 도로가 복잡한 만큼 해결하려는 의지도 보인다. 길을 꽤 넓게 만들고 남은 대기 시간을 표시하는 신호등도 눈에 띈다.

마지막에는 호치민에선 “일 년쯤은 여기서 살아도 큰 불편함 못 느끼겠는데?”라는 생각도 했다.

호치민이 좋은 이유는 편안함 때문이었고 그 편안함은 익숙함에서 나왔다.

베트남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호치민은 낯설다고 말하기엔 친숙하다.

IMG_1465.JPG 편의점엔 나도 안먹어본 소주가 있다. 여기 베트남 편의점 맞다!

중심가엔 롯데리아가 있고,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뚜레쥬르가 2층 건물로 자리한 것은 물론이고 동네 구멍가게에선 초코파이와 아침햇살을 사 먹은 뒤 CGV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코리아타운이 아닌 보통의 길거리가 이 정도다.

그 외에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외국계 기업이나 하일랜드커피, 콩카페 같이 베트남에 가본 외국인들이라면 익숙한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즐비하다.

이천원짜리 쌀국수와 떡볶이, 스타벅스가 함께 있으니 1년 정도는 향수병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IMG_1454.JPG 저번 베트남 여행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로컬 브랜드가 콩카페였다면 이번엔 푹롱티하우스다.

여행하는 중에 여행에 질릴 때가 있다.

여름도 아닐 때 6일짜리 휴가를 내는 건 약간의 눈치, 시기적 운이 따라야 한다.

모든 조건에 맞는 이번 연휴를 포기하긴 힘들어서 어디라도 가고 싶었고 그곳이 호치민이었다.

물론 베트남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어서 결정했지만 나침반이 호치민을 향한 가장 큰 이유는 연휴 기간에 남은 유일한 비행기표가 호치민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향 없이 떠난 잔잔한 여행은 질리기 쉽다.

하지만 호치민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때 익숙함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곳이었다.

익숙함이 여행의 시간을 빠르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바쁜 여행만 시간 지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도 얼마든지 시간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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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2박을 보낸 C-central 호텔. 깔끔하지만 여행자거리 한복판에 있어서 새벽엔 방이 울릴 정도로 시끄럽다. 하지만 그런 것도 호치민스러워서 재미있었다.

호치민은 이른 저녁 좁은 골목길에서 반미와 맥주를 들고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낯설지만 편안한 시간이었다.

호치민 개도국 특유의 어수선함에 정신을 잃을 듯하다가도 고개만 돌리면 호치민이 도시가 되기 예전의 이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실수로 들어 간 골목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고 넘쳤다.

호치민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때도 실수로 들어 간 골목에서 두런두런 울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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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제일 좋았던 공간은 우체국이었다. 내부는 생각 보단 작았는데 여행 마지막 날 여기서 나에게 쓴 엽서를 한국에서 받을 때 호치민에 다시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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