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대로 찾고, 보는 뉴욕의 공연들
내가 참 싫어하는 질문 중 하나는 "지금까지 가봤던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다.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이기 때문에 싫어한다. 그냥 다 좋았다는 답변을 해도 집요하게 "그래도 제일 좋았던 곳은 있잖아요?"라고 묻는다. 여행지의 개성을 무시하는 이 질문이 참 무례하게 느껴진다. 최악의 여행지에도 추억 하나쯤은 두고 오는 나에게 그렇게까지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 몇 년을 들어도 아직 제대로 된 답변을 못 찾은 이 질문의 답은 뉴욕을 다녀와서 찾았다. 사실 좋은 답변은 아니고 50점 정도 되는 답이다. "저는 혼자 다녀오기에는 뉴욕이 제일 좋았어요."라는 대답이다.
뉴욕은 순수한 도시다.
맨해튼이라는 작은 섬 위에 한 층씩 퇴적된 빌딩이 모여 뉴욕이 형성되었다.
어디에 눈을 돌려도 초고층 빌딩이 보이는 뉴욕은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한 모습의 도시다.
때문에 경치 구경을 여행의 미덕으로 아는 사람에게는 머물고 싶은 여행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뉴욕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다.
'감히', 최고라는 말까지 쓰면서 뉴욕의 여행지로서의 면모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이 여행을 혼자 했기 때문 같다.
여행조차 시간에 쫓겨 떠나는 한국인에게 뉴욕은 덤보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 경찰에 쫓기듯 센트럴파크 산책을 하고 스테이크와 피자 한쪽을 먹고 박물관과 미술관 서너 군데를 날아다니다 야경을 감상한 뒤에 여유가 있으면 뮤지컬 하나 보면 끝나는 곳이기 쉽다.
사실 며칠 짜리 휴가도 간신히 내는 사람에게는 이정도 일정도 빠듯하다.
하지만 진짜 뉴욕을 느끼고 싶다면 제발 근교 도시나 나이아가라 방문 없이 최소 일주일 정도는 혼자서 맨해튼 안에서 머무르기를 바란다.
미서부의 그랜드캐년과 같은 직관적인 아름다움은 없지만 뉴욕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과 전시, 먹거리가 있다.
전 세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은 문화가 퇴적된 빌딩 곳곳에 화석처럼 박혀있다.
전시와 공연이란 내 취향과 맞아야 하는데 아마 내게 일행이 있었다면 어떤 공연을 볼 것인가를 놓고 고단하고 험난한 이견 조율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내가 보기로 한 미술관, 박물관, 공연은 하나였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내가 보고 싶은 것 전부.'
뉴욕의 참맛을 보기 위해서는 동행 없이 오직 나의 취향대로, 공연장과 박물관을 뛰어다녀야 한다.
나는 낮이면 낮마다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밤이면 밤마다 공연장으로 다녔다.
특히 보고싶은 공연을 혼자 고르면서 뉴욕의 참맛을 알았다.
몇시간씩 앉아 있어야 하는 좌석의 위치, 가격을 내 사정에 맞춰 고르고 흥미 있는 제목만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부유한 도시답게 도처에 널린 좋은 공연장에서 밤낮으로 펼쳐지는 뉴욕이 아니면 보지 못할 구경을 했다.
부유한 도시답게 뉴욕에는 크고 좋은 공연장이 많다.
공연을 보기 전에 일단 무대 규모에 압도되어 두리번거리게 된다.
들어서기 전부터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 줄 선 사람의 숫자에 놀라고, 화려하고 드넓은 공연장 규모에 놀라고, 그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무대의 넓이에 놀란다.
특히 겨울이면 칼바람 속에서도 줄을 서게 만드는 매력적인 공연이 많다.
보고 싶은 공연을 모두 일정 속에 넣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아파하는 일은 퍽 즐거운 고민이었다.
나는 뉴욕 곳곳에서 뉴욕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났다.
다양한 공연 중에서도 뉴욕을 대표하는 장르는 역시 뮤지컬이다.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
그곳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극장이 줄지어 있고 각 극장을 대표하는 공연이 있다.
아직 오픈런이라는 개념조차 드문 한국의 뮤지컬 문화와 비교하면, 수십 년 동안 같은 공연만 하는 극장은 극장 자체가 볼거리다.
관건은 한정된 여행기간 안에 어느 뮤지컬을 선택하느냐다.
영어 실력만 따지면 라이온킹 직행이지만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고집했다.
유령이 숨어서 여주인공과 오페라 극장을 지켜보고 이끌었듯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타임스퀘어 뮤지컬의 역사와 함께 한 상징적인 존재다.
브로드웨이를 지킨 터줏대감을 꼭 보고 싶어서 가장 비싼 티켓을 손에 쥐고 마제스틱 극장에 입성했다.
무대 위 샹들리에를 보는 순간 여기 어딘가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이 시작된다.
오페라의 유령 넘버가 울려 퍼지고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서 뮤지컬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사실 배우의 연기와 감정 전달, 노래 실력까지 한국 뮤지컬 배우들이 더 잘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가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제스틱 극장을 나오며 바라본 하얀 가면은 유령을 만나듯 희미하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뉴욕에서 본 공연 중 가장 강력한 기억은 슬립노모어다.
뮤지컬이 뉴욕에서 꼭 봐야 할 꺼리라면 슬립노모어는 뉴욕이 아니면 못 보는 꺼리다.
보고 맘 후에도 그것의 장르가 무엇인지 모르겠는 그 공연은 뼈에 각인되어 있다.
이 특이한 공연의 무대는 첼시의 오래된 호텔 건물 전체를 개조해서 쓴다.
이 공연은 무대만 크고 없는 것이 많다.
배우들은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며 연기한다.
계단마저 무대로 쓰는 이 공연에 관객은 있지만, 객석은 없다.
입장할 때 받는 하얀 가면을 쓰고 계단을 뛰어올라 다른 무대로 움직이며 연기하는 배우를 따라다녀야만 공연이 진행된다.
관객이 포착하는 배우가 주인공이고 목격한 연기가 줄거리다.
전속력을 다해 뛰는 배우를 따라잡으려면 숨을 헐떡거리며 쫓아야 하기에 배우의 움직임을 놓치기 쉽다.
그럴 땐 다른 배우를 찾아 다른 연기를 봐야 한다.
주인공도 없는 공연이기 때문에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볼지도 각자의 선택이다.
대사도 없는 무언극이라 백퍼센트 눈으로 본 것만 가지고 평가하게 된다.
관객이 배우와 눈을 마주치고 앉아 있어도 되고 배우가 관객을 손을 잡고 끌어들여 연기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이 이 공연의 핵심이다.
직접 보는 것만 스토리가 되는데 그 스토리는 관객의 선택과 체력이 허락하는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날고 기며 봐야 하는 공연이기에 기억이 몸과 뼈에 남아 있다.
노키즈존을 넘어 19세 이상만 관람 가능한 연극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적이다.
무대와 관객과의 거리가 없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마당극 같기도 하다.
주인공이 없으니 스토리도 이어지지 않아서 보고 나서도 내용 파악이 불가능하고 의도 자체가 불분명하다.
파격적인 것은 맞지만 이 극을 완성된 이야기로, 작품성 있는 공연으로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무대와 배우, 관객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대가 좀 특이한 공연일 뿐, 펼쳐진 무대를 한곳에 모으고 무대 앞에 의자를 깔았을 때도 이 공연이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뉴욕에서만 가능한 공연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세시간 동안 뛰어다녀도 기둥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보길 바란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의식주도 아닌 문화와 예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상당히 비싼 돈을 들여야 한다.
이런저런 티켓을 사기 위해 수십만원을 탕진하던 중 발견한 뉴욕필하모닉은 잠시 돈을 아낄 숨 쉴 구멍이었다.
물론 세계 최고 타이틀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케스트라답게 정규 공연 티켓은 비싸다.
하지만 내가 구한 티켓은 리허설 티켓이다.
새로운 연주에 들어가기 전에 열리는 오픈 리허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관람이 가능하다.
리허설도 돈을 주고 보여주는 미국다운 발상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단원들의 실력이 만든 특별한 연주다.
오히려 본 공연에서는 보지 못하는 진귀한 모습도 많다.
청바지 입은 클래식 연주자와 관객에게 농담을 건네는 지휘자는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더욱 신기했다.
수십명의 단원이 가장 좋은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엔 본 연주 이상의 감동이 있다.
리허설이라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모든 단원이 제대로 오케스트라에 걸맞은 규모와 실력을 갖추고 더 조화로운 소리를 찾아간다.
나는 클래식도 베토벤도 잘 모르지만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렸던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 “발레 전공했어요.”라고 말할 때 보이는 반응으로는 “오~”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세상에 참 다양한 춤이 있는데 그중 발레는 고급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스피드 퀴즈에 발레리나가 나온다면 누구나 같은 포즈를 취하고 같은 옷 입은 사람을 그릴 것이다.
발레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공연을 본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 있지만 나는 그랬다.
뉴욕시티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나서야 발레리나들이 쫄쫄이 타이즈 이외 다른 옷을 입고 무대에 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발레도 호두까기인형도 익숙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발레가 어떤 느낌일지는 상상도 못 해서 공연장에 들어가서 한 생각이라고는 ‘와 애들 많다. 드레스 입고도 오는구나. 건물 화려하네.’ 정도가 다였다.
공연이 시작할 때까지 내가 링컨센터에서 발레 공연을 보며 20대 마지막 동심을 불태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뉴욕에서 자란 이들에게 호두까기인형은 연말이벤트 계의 스테디셀러 정도 같아 보였다.
뉴욕의 현역 어린이와 아직 동심을 간직한 어른이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발레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다르게 공연은 전혀 지루함 없이 흘러갔고 쉽게 읽어지는 극의 흐름과 화려한 무대와 의상, 서커스에 가까운 동작까지 모두 좋았다.
어릴 때부터 매년 이런 공연을 기다리는 뉴요커들에게 질투가 났다.
'오페라'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페라 공연이 가능한 공연장 자체가 드물고, 꽤 오랜 역사를 갖는 문화지만 대중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이건 뉴욕이 아니면 못본다’라는 생각으로 봤다.
고급문화의 대명사답게 공연장부터 화려했다.
링컨센터 가운데에서 빛나는 보석함 같은 건물 안에는 화려함을 더하는 샹들리에와 붉은 계단이 있어서 입장부터 남다른 기분을 느끼게한다.
티켓 가격은 너무나 엘레강스해서 건물 구조 때문에 소리는 높은 좌석이 더 잘 들린다는 말을 핑계로 가격이 싼 꼭대기 층 티켓을 샀다.
덕분에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앉지 못할 것 같은 높이의 좌석에서 아찔함을 느꼈을 정도로 무대와 객석 규모가 크다.
발붙이고 앉은 자리에서 고소공포증을 느낄 때쯤 객석에서 별처럼 빛나던 샹들리에가 위로 올라가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막이 올랐다.
압도적 규모의 공연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였지만 언어의 한계에서 발생하는 지루함은 방법이 없다.
모르는 말로 부르는 몇백년 전 감성의 노래를 세시간씩 듣는 것은 꽤 힘들었다.
오페라는 가장 특별한 공연이었지만 객석의 높이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였다.
신기하고 지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 웃었으니 재미있게 보았다고 결론 내리겠다.
입장할 때 나눠주는 산타모자를 쓰고 관람하는 이 공연을 가장 뉴욕다운 공연으로 꼽겠다.
5933개의 좌석이 있다는 라디오시티는 공연 시작 전후에 사람들이 출입하는 장면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되는 대형 공연장이다.
이름답게 매년 겨울에 오픈하는 이 공연은 로켓츠라는 칼군무로 유명하다.
주인공도 있고 스토리도 있지만 사실 다 필요 없다.
뉴욕과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많은 무용수가 춤추고 노래하는 아주 단순 명쾌한 직관적인 공연이다.
서커스에 가까운 무용을 보고 캐롤 몇 편을 들으면 되기 때문에 객석의 반응은 웃음과 놀라움뿐이다.
산타모자와 일회용 쓰리디 안경을 소품으로 갖추고 객석에 앉으면 때론 신기하고 때론 즐거운 시간이 지나간다.
특징이라면 엄청난 규모다.
칼군무 정도야 한국 아이돌의 특기겠지만 축구 경기도 가능해 보이는 라디오시티의 무대를 가득 채우는 다양한 소품과 인력은 남다른 스케일을 만든다.
크리스마스를 내세워서 자본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대규모 자본을 투자한 이 공연은 참 뉴욕답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티켓 가격, 계속 보여주는 뉴욕의 모습, 크리스마스의 유쾌함과 특별함, 진지할 필요 없어서 남녀노소는 물론 전 세계인 누가 봐도 쉬운 내용, 많은 인구를 수용하는 대규모 홀,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관객.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뉴욕이고 미국이었다.
이미 겨울 뉴욕을 대표하는 공연이 되었으니 미국에 역사가 생긴다면 이 공연은 전통이 될 것이다.
나는 뉴욕에서 '도시여행'과 '혼자여행'을 완전히 새로 배웠다.
빌딩밖에 없어 보이는 곳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인간이 빌딩 속에 숨겨 둔 문화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탐험해야 하는 도시여행은 혼자 해야 즐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연은 앉은 자리에서 옆사람이 아닌 객석에 집중할 때 가장 즐겁다.
이 공연이 친구, 애인, 가족의 취향에 맞는지 눈치 볼 것 없이 나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다.
뉴욕은 그런 일을 하기 참 좋은 곳이었다.
머무른 시간에 비해 더없이 짧게 느껴진 뉴욕여행.
혼자라는 사실이 즐겁고 행복했던 그 도시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