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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Apr 03. 2020

미국은 크고, 나는 작다

미국 영토의 거대함에 대하여

미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뱉은 말 “미국 크다.”. 가장 많이 생각한 말 “미국 크네.”. 여행에서 돌아와 첫 번째로 떠올린 말 “미국 컸지.”. 그렇다. 미국은 정말 큰 땅덩어리였다.


미국 여행은 사계절 중 하나도 온전하게 느끼지 못한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체감한 날씨는 비발디의 사계 악보 속 음표 개수보다 다양하고 버라이어티 했다.

미국 날씨에 고정관념은 통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는 1년 내내 햇빛이 쏟아지고, 뉴욕은 겨울에 미친 듯이 추울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물론 한국 겨울과 미국 겨울을 비교한다면 미서부는 따듯하고 미동부는 춥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부가 동남아처럼 고온다습할 리 없고, 동부가 북극처럼 극단적으로 춥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조금 덜 춥고 더울 뿐이다.

무엇보다 날씨 변화가 크다.

미국의 어떤 지역에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옷의 두께를 한 가지만 챙긴다면 낭패이기 쉽다.

나는 LA에서 돌풍과 싸우다 지치고 추워서 산타모니카 비치 가까이에 갈 생각도 못했고, 뉴욕에서는 얇은 코트도 거추장스러운 빛이 좋은 날 센트럴파크를 걸었다.

5대 캐년 투어 첫날에는 그랜드캐년에서는 롱패딩을 입고도 추워서 이빨을 딱딱거렸지만, 다음 날 홀슈밴드에서는 더워서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땀 흘렸다.     

같은 날 록펠러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예약 시간을 무료로 바꿔 줄 정도로 눈폭풍이 심한 날이었는데 금세  야경을 볼 수 있는 날씨로 변했다.

미국 날씨가 중구난방으로 여겨졌던 것에는 날씨 이상으로 중구난방인 미국인들의 옷차림 탓도 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그들의 옷차림은 내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선택하는 일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반바지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고 가벼운 티셔츠만 입고 나가서 열 걸음 걷고 다시 들어와서 옷을 바꿔 입기도 했다.

미국인은 날씨와 관계없이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여름에 모피를 두르고 싶다면 두를 것이며, 겨울에 샌들이 신고 싶다면 신을 것이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창문을 열고 팔을 내밀어 온도를 느끼기 전에는 보는 것만으로는 옷을 고를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날씨를 다양하게 느낀 근본적인 이유는 진짜 다 다르기 때문이다.

대륙이라 불리는 땅의 날씨를 어떻게 한, 두 가지로 정해놓겠는가.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사막과 들판, 강, 바다, 산맥이 모두 있고 그것들은 매시간마다 무궁무진한 날씨를 만든다.

이렇게 다른 날씨가 이어질 정도로 미국은 크고, 넓다.

하와이도 미국이고 알래스카도 미국이다.

차에 눈이 쌓인 뉴욕도, 선인장이 자라는 샌디에고도 모두 12월 미국의 풍경이다

이따금 미국의 영토 크기에 진저리 쳤다.

세계 국토 면적 순위 109위인 대한민국에서 살다 보니 넓은 나라를 볼 때마다 놀랜다.

미국이 넓다는 사실은 시시때때로 다가온다.

헬기를 타고 그랜드캐년을 내려다볼 때, 차를 타고 아까부터 몇 시간을 달린 땅이 모두 한 사람 소유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올 때, 건물이 높이 지을 필요가 없어서 호텔이 한 층으로 지어졌을 때 등등.

무엇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순간은 국내선 비행기를 탈 때다.

뉴욕에서 라스베가스까지 가려면 비행기를 다섯 시간 하고도 30분이 더 걸리고, 덤으로 3시간의 시차가 발생한다.

한국에서 미국령인 사이판에 가는 데 소요되는 비행시간 4시간 30분 보다 미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동남아에 갈 때는 기내식을 안먹어도 괜찮았는데 미국에서는 국내선을 타도 배가 고팠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메이저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을 타도 국내선이기 때문에 기내식은 없다.

서울에서 부산 갈 때 휴게소에 열 번은 갈 수 있지만, 뉴욕에서 라스베가스에 갈 때는 굶어야 한다. 

기차보다 비행기가 익숙한 그들의 땅 크기

그렇다.

미국은 그렇게 크고, 넓고, 다시 한번 크고 넓은 땅이었다.

도시를 벗어나 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면 농경지가 보인다.

이모작, 삼모작, 이앙법을 연구한 한반도의 조상님들의 노력을 부정당하는 듯 한 면적이다.

옆집까지의 거리가 차로 한 시간쯤 될법한 곳을 보고 있으면 여기서 경찰을 부르느니 내가 총을 가지고 다니고, 소방관을 부르느니 그냥 집이 불타는 걸 보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중심의 개인주의 문화도 이해된다.

이렇게 땅이 많은데 왜 인간은 땅에 가치를 부여하고 땅을 갖기 위해 싸울까.

답을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의문이 들었다.

그 광활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에 무엇을 채우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그러다 유럽에서 건너와서 이 땅을 정복했던 그들을 생각하자 몸서리가 쳐졌다.

이토록 거대한 땅에 인디언이 빈틈없이 살았을 리가 없는데 꼭 대륙 전체를 빼앗아야 했을까?

무엇이든 있을 법한 이 넓은 대륙에도 공존의 방법은 없었구나.

그렇다면 모두가 사이좋게 함께 살아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겠구나.

국토 면적의 신비함 보다는 사람 사는 세상의 졸렬함이 더 대단했다.

결국 미국의 광활함은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그곳에서 나의 이런 생각은 너무나 보잘것없었고, 나는 때때로 너무 작았다.

이토록 넓고 큰 땅에서도 공존과 평화는 어렵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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