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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Apr 08. 2020

미국여행자의 고통, 대중교통

미국의 자동차 문화와 대중교통

미국여행을 위해서는 우버와 리프트 앱이 필수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생필품이다. 시리얼 하나를 사기 위해서 운전을 배워야 한다. 고등학생도 운전을 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대중교통은 쓰레기다.


언덕과 언덕으로 이어진 도시 샌프란시스코에는 ‘롬바드가(Lombard Street)’라는 일명 '세계에서 가장 꼬불꼬불한 길'이 있다.

‘street’지만 도로라는 느낌은 없다.

이곳은 경사가 너무 심해서 통행자의 안전을 위해 8개의 커브를 만들어 자동차가 주행하는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거의 지역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롬바드스트리트는 겨우 작은 언덕, 아니 언덕도 아닌 경사 한쪽 면을 의미하는 말이니 실체에 비해 거창한 이름이다.

하지만 자동차용 계단과도 같은 이곳이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월스트리트 이상의 관광지다.

주민이라면 돌아갈 이 길에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렌터카와 택시가 지나가고 차도 양옆에 낸 인도에는 관광객들이 부지런히 내려가고 있으며, 롬바드스트리트가 끝나는 차도에는 차 대신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구경거리가 될 만한 경사를 만든 결과 이곳의 제한속도는 5마일, 한국식으로 10km/h도 안되는 속도다.

아마 위에서 물병을 굴려도 차보다 빨리 내려가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나 또한 지구 반대편에서 온 관광객이었고,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던 롬바드를 알고 있었기에 케이블카에서 내려 이 길을 걸었다.

현실보다는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도로

이 길을 내려가면 여러 생각이 든다.

일단 수국이 없으니 예쁘진 않다.

직각으로 느껴지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사를 하나 내려가는 것이라 힘들다.

여길 내려가는 운전자들 대단하다.

그리고 ‘이런 길을 만들어서까지 차가 지나가야 하는구나!’.

그렇다.

이상한 길을 만들면서까지 차가 다녀야 하는 곳이 미국이다.

물론 롬바드 스트리트는 미국 내에서도 별난 장난감에 가까운 도로지만 나는 그곳에서 미국에서 자동차가 갖는 상징성을 느꼈다.

사실 이 도로의 핵심은 수국이기 때문에 꽃이 없을 때 가면 실망할 수 있다

미국에서 자동차 소유는 하나의 문화이며 통과의례다.

미국의 자동차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스마트폰 정도의 개념 같다.

많은 한국인이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을 전자기기를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고령자이거나 공부 때문에 부모가 강제로 스마트폰을 빼앗은 미성년자, 개인적 신념이 있어서 일부러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서 자동차가 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과격하다.

신체적 장애 때문에 운전할 수 없는 경우, 라이센스가 없는 미성년자, 차량 구매와 유지가 불가능한 노숙자 정도가 미국에서 차가 없는 사람이다.

식료품을 사러 마트까지 한참 운전을 하는, 차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버스를 타면 한 시간 이상 돌아가는 미국에서 운전은 생존수단이고 차는 생필품이다. 

차는 미국인에게 집 이상의 의미

자동차 문화가 발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중교통 발달은 미비하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정도를 제외하면 LA 같은 대도시에서도 대중교통만으로 관광하는 일이 어렵다.

뉴욕의 지하철은 더럽기로 유명하지만, 미국의 다른 지역을 생각하면 최첨단 시설쯤 된다.

그런 뉴욕에서도 지하철에 타면 다양한 상황을 마주친다.

대중교통 예절을 배워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은 기본이고 이유 없이 화내고 시비 거는 사람, 약에 취해 보이는 사람, 발작하는 사람 등등 특히 한국인에게는 낯선 광경이 보인다.

미국에서 뉴욕을 제외한 지역에서 하루만 100%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관광한다면 우버와 리프트가 왜 탄생했는지를 몸으로 깨닫게된다.

구글맵에 10분 뒤 도착으로 나오는 버스가 한 시간 동안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거나, 밤중에 인적없는 굴다리 아래 버스 정류장 표시판 하나 없는 곳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우버나 리프트 앱을 켜게 된다.

대중교통 이용이 위험하다는 인식까지 있을 정도이며 실제로 위험하다.

라스베가스공항의 버스정류장. 공항에서 중심가까지 10분 거리인데 공항버스가 1시간에 1대 수준 배차다. 버스도 없고 타는 사람도 없다.

대중교통의 공백을 차량공유서비스로 대체해야 할 만큼 발달이 더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중교통의 발달과 관련된 국가와 여러 기업 간의 이권 문제도 있고, 다들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떨어지고, 국토가 크기 때문에 대중교통 진입이 불가능한 지역도 있을 것이다.

치안도 문제다.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목적지까지 걷는 짧은 순간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정도로 치안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대중교통 그 자체를 기피하기도 한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한국인들은 미국에 가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미국의 대중교통은 인프라 구축이 전혀 되지 않은 쓰레기라 불러도 변론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이용 못 할 수준은 아니다.

한 달 정도 미국을 혼자 다닌 나는 우버나 리프트만 이용할 돈이 없었다.

뉴욕에서는 메트로카드를 사서 지하철과 버스만으로 모든 관광을 끝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지하철, 공항철도, 케이블카까지 다양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대중교통 이동이 가장 힘든 곳은 LA였는데 첫날 멋모르고 리프트만 이용하다 하루 만에 10만 원이 나간 이후로는, 손이 리프트앱을 켜는 속도보다 발이 버스정류장으로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공항철도, 그레이하운드, 플렉스 버스도 모두 타며, 90%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미국을 여행했지만 살아 돌아왔다.

물론 메가버스 터미널 화장실 앞에서 토사곽란하는 노숙자를 만나거나, LA 지하철에서 앞자리에서 혼자 중얼거리던 남자가 갑자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일은 목격했지만 현지인들도 나도 그냥 흠칫 놀라고 끝이었다.

사람들은 거품 물고 쓰러진 노숙자 옆에 줄을 서서 화장실에 갔고, 의자 위로 올라가 욕하고 소리 지르는 남자를 피해 자리를 옮겼지만 다음 역에서 탄 사람들은 다시 진정한 그 남자 앞뒤 의자를 채워 앉았다.

미국에서 노숙자와 정신이상자의 존재는 너무나 흔해서 대중교통이 아닌 곳에도 넘쳐나기 때문에 총을 든 것만 아니라면 그냥 지나친다.

혼자서 대중교통 이용하는 일을 권할 정도로 안전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최소한 택시가 버스보다 돈과 시간이 더 드는 상황에서까지 대중교통을 외면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한국의 고속버스 개념인 플릭스버스. 미국에는 이런 버스조차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애들도 운전을 한다.

자동차면허를 따는 나이가 되면 학생들도 차를 산다.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국토가 넓고 경제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녀노소가 언제나 어디서나 차를 포켓몬처럼 데리고 다닌다. 

운전자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자동차 관련 법도 강하고 규제도 여러 가지다.

모두가 차를 갖기 위한 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운전자는 법을 잘 지켜야 하고 주차도 함부로 할 수 없다.

한국보다 미국 도로가 넓어서 운전이 편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미국 땅에서 한국 땅에서처럼 운전하면 시속 200km 속도로 벌금을 받기 좋다.

반대로 사람은 무단횡단을 해도 상관없다.

차가 알아서 사람을 보고 멈추기 때문이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앞에 스쿨버스가 지나간다면 뒤에 있는 차는 추월하지 않고 따라간다.

학생이 한 명씩 내릴 때마다 함께 멈춰서 기다리고 다시 뒤를 쫓는다.

나는 내가 운전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무서워해서 횡단보도에서도 차가 오면 멈추는 버릇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내가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신호가 없는 곳에서도 차들은 시간이 흘러도 지나가지 않았다.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 무단횡단이 일상인 이유는 사람이 아무리 막 다녀도 차가 알아서 피하고 멈추는 일이 옳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차가 사람을 보면 멈추는 상황에 익숙해진 채로 한국에 들어왔더니 차들이 더 무서웠다.

횡단보도인데, 신호등이 있는데 그냥 지나가는 차에 다시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한동안은 모든 운전자가 잠재적 살인자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차를 소유해야 하므로 모두가 교통법과 질서를 지킨다.

법은 힘이 있고 기계가 아닌 사람의 편이다.

모든 사람이 운전하는 만큼 강제적 힘이 동원되는 모양이다.

차에서, 버스에서 바라본 미국은 소유와 자유에 책임이 따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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