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십리터 Sep 14. 2017

To. 첫 여행을 떠날 당신에게

여행공포증이 있는 당신에게


'어디로 여행가려면 이런 방법으로 하면 된다!'가 아니라
여행 자체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보길 바라는 내용

1. 프롤로그 : 그녀의 이야기


7월의 어느 날.

그녀는 후쿠오카에 가기로 결심한다(물론 그녀는 나다).

이유는 단지 가깝고 비행기 표가 싸서.

여행을 위한 여행이었을 뿐 후쿠오카란 장소에 큰 흥미는 없다.

때문에 여행 준비도 없다.

떠나기 1주일쯤 전 충동구매한 비행기 표와 작은 백팩 하나만을 챙긴다.

일본은 한국인 여행자에겐 꽤 쉬운 도시란 근자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제일 유명한 것이 뭔지는 알아야겠지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훑는다.

문득, 후쿠오카를 첫 해외여행으로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는 알게 된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 처음가는 혼자여행, 처음가는 모녀여행 등등.

후쿠오카에 관련된 블로그엔 '처음'이란 타이틀이 많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첫 여행이 생각난다.


2. 나의 첫 여행 이야기


# 내 첫 여행이 어디였냐면...

처음 간 자유여행은 일본이었다.

아빠와 함께 간 도쿄를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 부모님 없이 처음 떠난 친구들과의 도쿄, 혼자 떠난 첫 여행 오사카, 엄마랑 함께한 훗카이도.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수능이 끝나고 혼자 달려갔던 오사카다. 


#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첫 자유여행에선 예약한 호텔의 위치를 몰라서 두 시간을 헤매다 간신히 찾았다.

그날의 오사카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위험한 도시였다.

그렇게 찾아간 호텔에선 내 이름이 숙박자 명단에 없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날짜를 잘못 예약해서 한 달 후 날짜로 예약했던 것.

지금이라면 “아 그래? 남는 방 있으면 주시고 아니면 취소해야겠네요.”하고 말았을 일이지만 당시로선 하늘이 무너져야 했다.

상상력이 쓸데없이 열일해서 이 실수가 내 인생에 뭔가 영향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프린트한 바우처를 본 직원이 무슨 일인지 보고 알아서 날짜를 바꿔줘서 아무 문제 없이 체크인 했다.

그러던 내가 비행기 연착, 기차 파업 정도의 난관 없는 여행은 여행 같지 않게 느끼고 있다.

걱정이란게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지 여행이 알려줬다.          



3. 망설이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첫 여행은 특권이다

혹시 당신이 아직 첫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특권층이다.

비행기 표를 사면서 짜증 낼 권리,

인천공항의 거대함에 놀랄 권리,

기내식을 평가할 권리,

영어를 더듬거릴 권리,

한국인을 보고 반가움을 느낄 권리,

아는 음식에서 모르는 맛을 볼 권리,

라면과 치킨을 그리워할 권리,

구글맵의 정확성에 놀랄 권리,

한국 인터넷의 위대함을 찬양할 권리,

뭘 봐도 감탄할 권리.     

당신은 이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처음이니까!

당신이 떠난다면 첫 여행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모든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여행을 방해하는 당신의 쓸모없는 핑계거리들


-같이 가는 사람한테 좀 미안해

비행기를 처음 타는 친구와 제주도에 같이 간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처음이란 감각에 나까지 전염되어 열 번쯤 가본 제주 여행에서 나까지 처음의 설렘을 훔쳐 누렸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친구와 중국에 간 적이 있다.

해외에 나간다는 사실 자체를 거부하던 친구가 새로움을 느끼는 순간을 함께했다.

당신의 처음은 당신뿐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사람도 즐겁게 만들어 준다.

여행가지 않는 이유 중에 '내가 처음이라 동행한테 민폐일까 봐'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그 이유는 지우자.     


-혼자는 좀 그렇잖아

일행 없이 혼자 여행을 계획한다면 즐거움을 모두 당신 거다.

기쁨은 나눠야 두 배가 된다는 거 틀리다.

로또 1등 당첨자가 여러 명이면 기쁨은 쪼개진다.

가기 싫으면 안 가고, 먹기 싫으면 안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는 모든 게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인간은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그 증거는 나다.

혼자 여행 가기 무섭다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딱히 둘이 가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더라.

그중 제일 그럴 듯 한 핑계는 혼자 가면 심심하다였다.

지나가는 차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속도, 공기 중에 섞인 습기까지 모든 것이 내가 사는 곳과 다른 곳에서 그것들을 눈에 담기도 바쁜데 심심하다니!

무료함은 영화 시작 전 광고시간에나 느끼고 여행 중엔 당신의 호흡까지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비행기를 처음 타서,

여권을 처음 만들어서,

너무 먼 곳은 무서워서,

외국인에게 거부감이 있어서,

힘들고 지치는 일정은 싫어서,

한식밖에 못 먹어서,

집 밖에서 못 자서,

영어 못해서.

참 많은 핑계가 여행을 가로막는다.

막상 떠나면 그런 것들은 문제 축에도 못 낄 텐데.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그냥 떠나보자.

일단 떠나면 그 많은 이유보다 다시 떠나고 싶은 이유가 더 많아진다.    

                

# 그러니까 결론은

혹시 온갖 이유를 대면서 여행을 미루고 있는 당신이 이 글을 본다면 나는 당신이 떠났으면 좋겠다.

건강 문제 이외 어떤 이유도 당신이 망설일 이유가 되지 않는다.

여행을 가본 사람들만이 가는 이유?

가본 사람만 좋은 걸 아니까!

나는 아직 해외여행 두번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당신이 무슨 이유로 여행을 망설이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을 뒤로하고 비행기 표를 사보길 바란다.     

솔직히 여행이 싫다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건 현재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워서 어떤 변화도 원치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얼마나 완벽한 삶을 살아야 이 세상 좋은 것들이 궁금하지 않은지 감도 안 온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여행을 안 해봐서 주저하는 거라면 떠나보자.

잠시 내 세상을 떠나면 내가 현실에서 처한 상황을 더 잘 보게 된다.

내가 내 삶에 얼마나 충실했고, 만족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여행은 궁극적으로 현실을 위한 선택이다.   

            


# 추신

영화 '싱글라이더'를 본 사람들은 극 중에서 이병헌이 비행기 표를 사고 떠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물론 그가 단순히 여행을 위해 미국에 가려는 건 아니었지만).

스포가 될 수 있어 긴말은 하지 않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들은 이 장면이 얼마나 무의미한 장면인지 알고 있겠지?

떠나지 못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