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가 낭만적인 세 가지 이유

인간을 사랑한 꽃 같은 도시

by 사십리터
Florence. 꽃의 도시 피렌체. 꽃같이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인간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었던 천재들이 살았던 도시. 어쩌면 단테가 사랑했던 건 베아트리체가 아닌 피렌체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화가, 조각가, 작가, 대부호 모두가 꽃 한 송이를 사랑해 르네상스란 결실을 보았다.


# 피렌체 감상문

누군가 인스타에 '#유럽여행 #감성사진 #좋다' 요따위로 태그를 걸어두면 우리는 묻는다.

'그래서 거기 어딘데?'

우리는 유럽의 모든 나라를 사진 한 장으로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건물 하나만 봐도 알 정도의 개성을 갖춘 도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 주변엔 유럽 10개국의 모습을 건물 하나만 보고 구분하는 능력자가 없어서 그냥 보통 다 그런 거로 생각하겠다.

그래서 랜드마크와 도시의 분위기는 중요하다.

부루마블에 들어갈 랜드마크가 있는 도시는 꽤 성공한 도시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엔 관광지로 성공한 도시가 많고,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는 피렌체가 아닌가 싶다.

물론 베네치아 같은 도시들이 외관은 더 뚜렷하지만 피렌체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는 결코 흔하지 않다.

피렌체의 붉은지붕 건물들

물론 이런 환상은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 혹은 영화를 본 사람에게만 해당할지도 모른다.

바로 나처럼.

물론 난 두 주인공이 하는 짓의 답답함에 혀를 내둘렀으나 그와는 별개로 피렌체에 사랑과 낭만이란 이미지를 주입하는데 참 큰 역할을 한 영화다.

실제로 영화를 본 일본인들의 피렌체 관광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피렌체는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유난히 낭만적인 도시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영원히 전설로 남을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러브스토리인 단테와 베아트리체 때문이겠지?



# 피렌체가 낭만적인 이유1

'두오모'는 돔(Dome)을 말하는 것이라 많은 것을 지칭하지만 이탈리아에선 보통 하나의 건축물을 말한다.

꽃의 성모 마리아,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그냥 성당이 아닌 대성당.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다.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이 얕은 마을 가운데 우뚝 선 두오모 하나.

랜드마크 겸 전망대 겸 관광지 겸 나침반 겸...

아주 여러 가지를 겸업하는 건물이다.

물론 진짜 역할은 성당이니 그걸 잊어선 안 된다.

나는 잠시 잊고 짧은 바지를 입어서 엄마의 얇은 남방으로 위태위태하게 무릎을 가려야 했다.

조토의 종탑, 이 도시의 사연많은 건축예술품 중 하나

아오이와 쥰세이로 대표되는 많은 사람들이 두오모에 올라 피렌체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그 옆의 종탑에서 두오모를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피렌체가 아름다운 건 역시 두오모 때문인데 거길 올라가버리면 제일 중요한 걸 빼먹는 기분일 것 같아서!

종탑이 오르기 더 쉽다는 이유는 절대 아니다.


제일 한가한 오픈 시간을 선택해 종탑을 예약해두었기에 늦잠은 포기하고 길을 나섰다.

청동문이 굳게 닫힌 산조바니 세례당을 지나니 일반렌즈로는 사진 한 장에 담지 못할 정도로 큰 성당이 보인다.

지금까지 본 성당 중 외관만으론 단연 가장 화려하다.

아주 화려한 색상이 들어갔지만 촌스러움따위 느껴지지 않는 고아한 성전은 피렌체를 찾는 모든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이는 곳이다.

성당 옆으로 돌면 바짝 붙어 있는 긴 건물이 보인다.

조금만 늦은 시간에 가면 탑의 그림자가 2개가 되어있다.

하나는 진짜 그림자, 하나는 그림자처럼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다.

탑만큼 긴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는 조토의 종탑이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직 한가했다.

물론 사람이 없는건 아니고 비교적 적었다는 말이다.

기다림은 어쩔 수 없이 필요했다.

바로 보이는 성당의 옆모습을 보다 입장이 시작되었다.

종탑 오르기는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다.

중간에 쉴만한 장소들이 있지만 쉬다보니 오히려 길게 느껴진다.

혼자 치고 올라가는 어린 동생의 체력을 부러워하며 엄마와 나는 물 한병을 나눠 먹으며 힘들어했다.

정상에 오르니 동생은 이미 올라가서 경치 구경까지 마친 상태였다.

엄마랑 나는 우울한 체력을 티내며 구석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을 쉬고 형식적으로 맞은편 두오모를 바라보고 땀을 흘리며 내려왔다.

그렇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판타지 영화다.

힐을 신고 두오모를 오른 아오이가, 이 모든 계단을 오르고도 정상호흡을 한 쥰세이가 인간일리가 없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두오모를 가장 가까이서 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부여잡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오를 때 보다 더 높아진 기분이다.

종탑을 나왔더니 그새 성당내부 관람객 줄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난 예상했던 풍경이지만 엄마와 동생은 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바티칸에 가면 이보다 더해

라는 말을 할지말지 고민하며 슬쩍 사람들 뒤로 붙었다.

종탑을 나오며 산 물이 미지근해지는걸 느낄 쯤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외관에 비해 평범한 성당 내부를 보고 나오니 조금 애매한 시간이되었다.

시간이 많다면 카페에서 쉬면 좋은데 오후에 예약한 우피치 미술관 시간에 맞추기가 좀 애매하다.

카페 대신 점심도 먹을 겸 중앙시장으로 갔다.

중앙시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1층은 진짜 시장같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와 인테리어였고 2층만 새로 리모델링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몇가지 음식을 골라 먹기 시작하니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된 시장이 시끌벅적해진다.

우피치로 가는 길에 페르케노에서 묘한 중독성의 참깨맛 젤라또를 해치우고 우피치로 향했다.

피렌체에서 제일 유명한 젤라또집 중 하나인 페르케노


# 피렌체가 낭만적인 이유2

바로 우피치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온갖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가득한 곳이 아름답지 못할 이유가 없다.

피렌체 첫 방문 때 너무나 긴 줄을 기다릴 수 없어서 포기해야했던 우피치 미술관.

미술관을 예약한다는 개념을 몰랐던 때라 우피치 미술관을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줄이 짧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진짜 다비드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때의 설욕을 잊지 않고 이번엔 비싼 예약비에 특별전 추가비용까지 지불하면서 예약을 했다.

우피치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

하지만 예약을 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했다.

오늘 눈뜨고 한일은 계단오르기와 줄서기.

너무 지친 상태라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미술사 수업 시간에 배운 주옥같은 명작들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바로 앞에 두고도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이여, 당신들의 사무실은 지나치게 넓습니다...

그래도 제일 보고싶었던 보티첼리와 카라바조,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봤다.

강행군에 지쳐서 저녁 전이지만 말없이 호텔로 돌아갔다.



# 피렌체가 낭만적인 이유3

몸을 식히고 저녁을 먹은 뒤 정신을 좀 챙겨서 야경을 보러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광장까지 가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산길이고 운전은 거칠었다.

자리가 없어서 나는 일어서있고 엄마와 동생만 앉아 갔는데 버스에서 깊게 잠들어버린 둘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의 난 가이드로서 실격이었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미켈란젤로 광장은 기대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다비드상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펼쳐진줄 알았던 광장의 실상은 뭔가 부산 달맞이길 느낌이 나는 언덕 위에 전망대가 있고 중앙에 다비드상의 복제품이 덜렁 있는 기분이었다.

신과 인간을 모두 사랑한 도시 피렌체

다만 아르노강과 그 주변의 불빛, 포인트로 밤에도 붉게 빛나는 두오모가 보이는 풍경은 좋았다.

불빛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번쩍이는 야경은 없었으나 피렌체다운 조곤조곤한 야경이었다.

문득 다비드가 바라보는 저곳이 아름다운 세 번째 이유가 느껴진다.

인간중심의 예술이 다시 꽃핀 도시 피렌체.

르네상스의 3대 천재가 한꺼번에 태어난 말도 안되는 기적의 도시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다.

설명없이는 이해 불가능한 현대미술이나 그 설명조차 확실하지 않은 고대의 동굴벽화가 아닌 진짜 인간을 그리기 시작한 시대다.

내가 인간인데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시대라니 가깝게 다가온다.

신보다 나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도시.

가장 중심에 성당이 있었지만 거기서 몇걸음 떨어진 레부플리카 광장에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퍼져나갔던 곳.

이 도시엔 인간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보려했던 흔적이 가득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도시에 애정이 느껴지나보다.

다비드상은 그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런 다윗과 함께 피렌체의 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새롭다.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꽃으로 피어난 인간 중 하나가 되는 꽃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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