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와 친퀘떼레의 여름
이탈리아의 상징 중 하나인 피사의 사탑. 아직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친퀘떼레. 이 두 곳을 하루 만에 둘러보게 되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뜨거운 햇볕이 모두 거기 있었다.
첫 이탈리아 여행 땐 피사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가려다 말았다.
귀찮아서...
이번에도 처음 계획엔 피사가 없었지만 친퀘떼레를 목표로 하면서 환승을 위해 잠시 들렸다.
피렌체에서 친퀘떼레로 가는 직통 열차가 적어서 중간에 피사에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서둘러 출발해야겠지만 그러기에 난 너무 게으르고 피곤했다.
전날 조토의 종탑에 오른 후유증에 아직 시달렸기에 8시가 넘어서야 호텔에서 나왔다.
피사까지는 특급열차가 아닌 레지오날레를 타야 하는데 기차 시설이 안 좋다고 해서 걱정을 좀 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봤던 낡은 기차가 아니고 생각보다 기차가 괜찮다.
오히려 한국에서 거의 탈 일이 없는 이층 기차라 엄마랑 동생 모두 신기해하는 눈치다.
확실히 고작 몇십 센티 높은 자리일 뿐인데도 풍경이 더 잘 보인다.
해바라기가 핀 이탈리아의 여름 사이를 달려 피사 중앙역에 도착했다.
피사역을 나와 두오모 광장에 가는 버스를 찾으려 했으나 무의미했다.
모든 사람이 단 하나의 버스 앞에 몰려 있다.
누가 봐도 두오모 광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광장에 도착했다.
피사밖에 볼 게 없다더니 두오모 광장은 기대 이상으로 예쁘다.
초록 잔디 위에 하얀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서 굉장히 신선하다.
깨끗하고 청량한 이미지가 있다.
하루 전에 본 붉은 피렌체 두오모와 참 다르다.
그 광장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열중하는 일은 단연 사진 찍기.
피사의 사탑 기울어진 거야 모르는 바 아니고 사진에서 매일 보던 모습 그대로다.
두오모 광장의 진짜 볼거리는 탑이 아닌 사람들의 포즈다.
곳곳에 탑을 일으키고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탑을 미는 사람, 무너뜨리는 사람, 등에 진 사람, 집어던지는 사람 등등 기발한 발상이 여기선 평범하다.
이렇게 피사의 사탑을 바로 세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기울어진 게 신기할 정도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착시가 일어나는 사진은 못 찍었지만 나도 남들 다있는 랜드마크 인증샷을 한장 갖게 되었다.
사실 피사는 베네치아처럼 십자군전쟁을 지원했던 해안가의 강대국이었다.
피사의 사탑의 정체도 가장 높은 종탑을 만들고자 했던 욕망의 결과물이다.
다만 해안가의 지반은 높은 탑을 결딜 정도로 강하지 못했고 탑은 기울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망은 무너진다는 가르침을 주려던 신의 뜻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피사는 크루즈 여행객들이 잠시 정박하는 고급 관광지다.
무엇보다 재밌는 사실은 지금 피사의 사탑은 점점 똑바로 서고 있단 사실이다.
혼자 무너지고 혼자 일어서고.
참 인간다운 탑이다.
언젠가 피사의 사탑이 직탑이 되는 날이 온다면 옛날의 기울어진 사진이나 모형을 옆에 두고 관광도시의 명맥을 이어나가겠지?
강한 햇빛이 힘들었던 우린 패키지여행보다 빠르게 피사 관광을 마치고 역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타려는 기차는 어김없이 지연되었고 라 스페치아 역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어렵게 도착한 만큼 친퀘떼레에 대한 기대감은 더 부풀었다.
절벽에 자리 잡은 다섯 마을을 가리키는 친퀘떼레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다.
절벽이라면 한국인들은 아말피 같은 남부를 생각하지만 이번 여행에선 북부 해안을 택했다.
차도 다니지 못하는 가파른 절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친퀘떼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지는 않아서 2~3개 정도의 마을만 돌아볼 생각으로 첫 마을을 지나쳐 곧장 마나롤라로 갔다.
마나롤라엔 한쪽은 바다 한쪽은 절벽마을 한쪽은 절벽밭이 있는 절묘한 풍경이 있다.
어찌 보면 기괴한 풍경이 한 장의 사진에 말려 들어왔다.
언덕 위의 성당, 절벽의 레몬밭, 마을 곳곳에서 나는 해산물 튀김 냄새, 모여 있는 동네 아이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곳에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두 번째 선택은 몬테로쏘.
친퀘떼레 다섯 마을 중 마지막 마을인 이곳은 해변 덕에 가장 활기차다.
줄 맞춘 파라솔이 가득하고 해수욕이 한창이다.
몬테로쏘역은 사람이 너무 많아 번잡하다.
역을 벗어나 해변을 따라 걸으니 참좋다.
절벽마을의 특성상 해변은 작은데 사람은 많아서 와글와글한 느낌이 한가득이다.
여기선 수영복을 입지 않은 우리가 제일 튄다.
다들 수영부터 맥주까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더운 여름날의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잔을 곁들인 식사로 이탈리아의 여름을 만끽했다.
옅은 색의 맥주 속에서 탄산이 한 방울씩 튀어나와 친퀘떼레의 7월에 뛰어들었다.
뜨거워서 더 시원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