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십리터 Sep 20. 2017

누구랑 여행가지?

여행 가기 전에 생각할 일 세번째

여행은 '어디'가 아닌 '누구'가 중요하단 그 말. 공감한다. 누구랑 가는지에 따라 어딜 갈지도 결정된다. 함께 가는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모든 상황은 변한다.



#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

원빈도 옆집 살면 아저씨란 말이 있다.

하물며 우리 엄빠는 진짜 아저씨 아줌마다.

우리 엄빠는 아닐거야 라는 그 생각이 부모 자식 관계를 망친다.

여행 중 한번씩 오는 그런 순간이 있다.

순간적으로 아빠의 잊고 지내던 아저씨다운 모습들이 보일 수 있다.

아빠가 아저씨같아 보이면 그냥 두자.

왜냐면 그건 사실이니까.

우리가 막아야 하는 건 아빠가 아저씨에서 개저씨로 진화하려는 순간이다.


당신의 어머니는 보통 당신보다 일찍 일어난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서 늦잠은 엄마 입장에서 별로 마땅한 처사가 아니다.

엄마는 이미 새벽부터 일어나 아무것도 없는 먼 땅에서 지루한 몇시간을 보냈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부모님의 지루한 하루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지루함을 잊을 완벽한 하루를 부모님께 드려야한다.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당신의 포지션은 기본적으로 꽃할배의 이서진이다.

하지만 주의하자.

우리 대부분은 역할이 이서진이지 능력이 이서진은 아니다.

똑같은 능력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 그정도의 네비게이션 능력, 특수상황에서 빛나는 잔머리 등등이 보통은 없다.

꽃할배를 본 부모님은 내새끼가 이서진이 될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죄송하게도 착각이다.

우리의 현실은 꽃누나의 이승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다 그보다 못하다.

이승기는 노력 끝에 진화했다. 

하지만 우린 발전없는 짐꾼일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부모님과 첫 자유여행을 간다면 꽃누나 초반의 이승기처럼 길을 잃고, 누나들을 잃고,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부모님도 보고싶은 것을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걸 부모님과 나 모두가 자각해야 부모자식 관계를 망치지 않는 안전한 여행이 가능하다.


아주 가끔은 부모님과 나를 떨어뜨리는 시간이 있어도 좋다.

아침에 내가 늦잠을 자거나 긴 준비가 필요한 순간이 올 때 잠시 호텔 앞에 부모님만 산책을 가시거나 하는 식으로 별거 아니지만 부모님만 자유여행을 하는 느낌이 드는 정도의 시간이 있어서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그 시간에 맘놓고 자유를 누려도 된다는건 아니다.

잠시 숨돌리는 시간일 뿐이다.

'부모님과 여행한다'라는 문장에서 주체는 부모님이다.

나는 여행을 주최하고 안내할 뿐이지 행위자는 아니다.

부모님께 여행을 차려드릴 뿐 겸상 할 생각은 하지 말자.


부모님은 "잘 모르니까 니가 알아서해"라고 말하시겠지만 그 말을 정말 내가 알아서 즉흥적으로 결정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 말의 진짜 뜻은 '알아서 내 취향에 맞는 계획을 짜서 나를 안내해'라는 무시무시한 의미다.

숙박도 음식도 상관없다던 부모님은 한인민박의 형편없는 시설에 실망하고, 피렌체에서 제일 유명한 스테이크보다 내가 몰래 챙겨간 인스턴트 된장국을 꺼낼 때 기뻐한다.

부모님이 나쁜 게 아니라 부모님의 여행의 질을 나한테 맞추려한 내가 나쁜거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자식은 보통 등짝 스매싱 당할 일이나 하는 잔소리 들어 마땅한 놈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부모님의 소중한 여행을 맡겨야하는 심정을 헤아려 당신이 뭔가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안내인의 자격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보여드려야한다.

호텔도 미리 사진을 보여 주고 뭔가 맘에 안들어 하는 눈치를 보이면 바꾸고, 몇시에 나가서 일정을 시작할지 모든 상황을 부모님께 보고하자.

 

# 친구랑 함께 하는 여행

친한 사이일수록 조심하자.

아이폰에 밀어서잠금해제 대신 이 말을 넣어도 좋을 것 같다.

알고는 있지만 막상 여행 중엔 잊게 되는 말이다.

제발 잊지 말자.

친구와의 싸움은 여행을 전제로 한다.

여행은 나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친구도 자아를 새로 찾고 있다.

우리의 또 다른 자아들은 서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일상에선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일들과 상황이 여행 중엔 양보 못 할 상황이 된다.

당연하다.

내가 먹고 싶은 치킨 대신 친구가 먹고 싶은 부대찌개를 먹어도 다음 주에 만나서 치킨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언제 또 올지 알 수 없는 베트남에서 마지막 식사시간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같은 쌀국수라도 나는 길거리 노점에서, 친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고 싶을 수 있다.

이 쌀국수를 먹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소한 일도 전쟁으로 만든다.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도 돈만 아끼면 되는 사람과, 특급호텔이 여행의 목적인 사람이 별 3개짜리 호텔로 합의를 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여전히 한 명은 방값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른거리고, 한 명은 특급호텔의 깨끗한 욕조가 그립다.

불만이 줄어들 뿐 사라진 건 아니다.

너무 친해서 이 모든 불만을 전부 말하다 싸움이 나거나 싸울까 봐 아무 말도 못하다 폭발해서 크게 싸우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친한 만큼 상처받는다.

친한 친구가 모르는 사람보다 위험한 여행파트너인 이유다.


친한 친구만큼 위험한 인물은 여행을 기대하는 친구다.

정확하게는 특정 나라에 애정이 크거나 일명 덕후같은 친구.

일본이란 나라 자체에 애정이 있어서 언젠가 여행 갈 일을 생각해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익히고 일본어를 공부한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보자.

기 : 일본어도 할 줄 아는 친구니까 편할 거야.

승 : 이 친구는 이미 몇 년 전에 여행 준비를 마쳤다. 가고 싶은 곳이 명확하고 어느 식당에서 무얼 먹을지까지 정했다.

전 : 반면 나는 사실 여행이 가고 싶지만 친구만큼 일본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사실 역사문제, 방사능 문제가 조금은 걸린다. 나도 가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는데 친구는 본인만 생각하고 들어줄 생각이 없다. 내가 더 많이 아니까 나만 따라오라고 한다.

결 : 싸운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애정하는 장소로 여행을 간다면 질질 끌려다니는 형상이 되기 쉽다.

포기하고 끌려다니는 행복을 느끼거나 딱 잘라 의견을 제대로 말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애매하게 친한 친구도 위험하다.

많이 싸워봐서 싸워도 화해할 수 있거나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고 서로를 잘 아는 사이 말고.

연락 자주 하고 영화 취향 정도는 맞지만, 부탁을 거절하는 게 조금은 힘든 애매한 친밀도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기 : 여행이 가고 싶다. 시간과 비용을 계산해서 주변에 의견을 물어보니 나도 가고 싶다는 친구가 있다. 같이 갈 친구가 생겨 기쁘다. 

승 : 신나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이런 식의 계획은 어떤지 묻는다. 친구는 바쁜지 카톡을 읽지 않는다. 한참 후에 온 답장은 '그 호텔은 위치가 좀 별로 아냐? 나 휴가 전이라 업무가 좀 많아서 그러니까 호텔 몇 개만 더 알아봐주라. 니가 그 나라는 잘 알잖아' 

전 : 나도 바쁘다. 나 여기 처음 가는데 알긴 뭘 잘 알겠나. 저번에 말한 호텔은 비싸서 싫다고 해서 새로 알아본 건데 어쩌란 말인가. 왜 나 혼자 알아보는 기분이지? 얘 진짜 가고 싶은 거 맞나? 난 먹기 싫은 맛집도 가주기로 했는데 호텔은 내가 말한 대로 해줘도 되는 거 아닌가? 혹시 날 가이드나 짐꾼으로 생각하고 같이 가자고 한 건가???

결 : 싸운다

미운 정까지 각오할 사이가 아니라면 여행 가기도 전에 관계가 끊어지기 쉽다.


여행 중에도 싸울 일은 많다.

기 : 신난다. 꿈에 그리던 유럽이다. 내가 에펠탑 아래 있다. 

승 : 친구가 세느강변에 앉아 있는 모습이 꽤 느낌 있다. 친구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사진을 찍어줬다. 친구가 좋아하면서 카톡 프사를 바꾼다.

전 : 그런데 이상하다. 친구는 하루 한 번씩 내가 찍어 준 사진으로 카톡 프사를 바꾸는데 내 프사가 아직도 공항 사진인 건 기분 탓인가? 왜 내 사진은 대충 찍어주지? 좀 예쁜 포즈로 각도 조절해서 찍어야지 왜 초점도 안 맞는 사진만 찍어주는거야? 나 유럽까지 와서 인생샷 하나 못 건지는 거야?

결 : 싸운다

아무리 신나는 여행 중이라도 감정이 상하는 일은 많다.

정말 별걸 다 가지고 싸운다.


그렇다고 싸울까 봐 평생 친구랑 여행 한번 안 가볼 수는 없다.  

그러다 혼자 여행 가는 걸 무서워한다면 평생 여행 한번 못 가보고 죽을지도 모른다.

사실 친구랑 싸운다고 하면서도 다들 잘 다닌다.

조금씩 배려하면 못 갈 건 뭔가.

친구랑 여행 중엔 좀 오버인 것 같아도 몇 가지 지키면서 다니자.

우선 제일 중요한 돈 문제.

평소엔 내가 비싼 밥 사고 다음에 친구가 그냥 밥 사도 되는 사이일지라도 여행중엔 정확하게 하자.

항공, 호텔, 식비 모두 똑같이 나눠야 한다.

아무리 서로 믿는 사이라도 사용한 돈이 얼마인지 그때그때 정리하고 공유하자.

몇백원씩으로 시작한 오차가 여행 끝엔 얼마가 될지 모른다.

항공권이나 호텔이야 정확히 반씩 나뉘지만 식비 같은 건 좀 애매할 수 있다.

아메리카노를 먹은 나와 라떼를 먹은 친구의 간식비가 100원이라도 다르다면 공동경비로 할지 각자 용돈으로 지불할지같은 사소한 일까지 미리 정해두자.

100원까지 따지는 게 치사한게 아니고 여행 끝나고 물고 늘어질만한 감정을 만드는게 찌질한거다.


각자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여행 전에 물어보자.

다른 비용을 줄여도 잠은 호텔에서 자야하는지,

저가항공은 절대 못 타고 프리미엄 국적기 밖에 못 타는지,

한식을 챙겨 먹어야 하는지,

아침부터 밤까지 꽉 채워서 다녀야 하는지,

쇼핑시간이 길게 필요한지 전부다.

미리 물어보자.

아무거나 잘 먹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식만 아무거나 잘 먹는 친구였다는걸 여행 중에 알게 될 수 있다.

부지런한 줄 알았던 친구가 여행 가면 늦잠자는 사람일지 모른다.

친구가 예전에 어떤 여행을 다녔는지 최대한 물어보고 떠나자.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혼자 가는 여행도 주의점 정도는 있다.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아닌 나와 함께 간다고 생각해버리면 편하다.

제3자의 입장에서 나를 좀 더 객관화시키자.

친구나 부모님의 눈치를 보듯 내 눈치를 보고, 그들의 컨디션과 취향을 살피듯 나를 살피자.

밤에 내가 왜그랬지라고 허망해하거나 이불킥을 날리는 일이 좀 줄어들거다.

피곤해 죽겠는데 '아니야. 오늘 여기까지 꼭 보고 가야 해.' 이러면서 미련 떨고 돌아다니지 말자.

친구가 '오늘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못 다니겠어. 우리 그만 호텔에서 쉬자.'라고 말했으면 쉬는 시간을 가졌을 거다.

친구 눈치도 보는데 내 눈치는 왜 못 보나.

나를 살피지 않는 여행을 하다 여행이 재미없는 일이라고 결론 내리지 말고 나를 배려하는 여행을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일정을 짜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