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쌀국수부터 쎼오75까지
첫 식사에 대한 실망감과 날씨 때문에 속상한 하루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먹은 음식 하나가 맛있었기 때문에 모든 하루가 좋았다고 기억한다.
해외에 가면 유난히 한국인만 가득한 식당이 있다.
예전엔 이상한 문화라고 생각했다.
현지에 가면 끌리는 대로 로컬 식당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가는 곳은 많이 가는 이유가 있음을 인정한다.
입맛에 안 맞는데 억지로 현지인과 같은 음식을 먹는 게 문화를 존중하는 일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한국 방송에서 외국인들에게 억지로 홍어 같은 걸 먹게 하고 즐거워하는 장면이 사라지길 바란 순간부터 나도 억지로 로컬 푸드를 먹는 일을 그만뒀다.
지금의 나는 주변에 한국인 사이에서 유명한 로컬 식당이 있으면 한 번쯤 방문한다.
로컬 푸드를 먹으면서 제일 만족을 느끼기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베트남의 첫 식사를 위해 선택한 식당은 좀 예상과 달랐다.
내가 머문 호스텔 바로 맞은편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일명 '할머니쌀국수'가 있다.
진짜 할머니가 계신 로컬 느낌 물씬 나는 식당이다.
위치는 특급호텔 객실과 조식 뷔페 레스토랑 사이보다 가까운 수준이라 합격이다.
어제 현지인과 한국인이 모두 넘치는 모습을 눈으로 봤고 어설프지만 한국어 메뉴판도 있다.
모든 면에서 좋았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위해 찾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입에 안 맞았다.
절대 한국의 맛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아주 달랐다.
무엇보다 갑자기 튀어나온 벌레 때문에 식욕을 잃었다.
국수 속에서 나온 벌레를 보니 이 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후기에선 다들 맛있게 잘 먹은 걸 보니 내가 징그럽게 운이 없었던 듯하다.
이때 이후로는 로컬 식당 쪽으로는 발걸음이 잘 향하지 않았다.
조용히 덜 비운 그릇을 두고 바나힐로 떠났다.
다낭 시내를 벗어나 바나힐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여길 왜 가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놀이공원, 비싼 입장료, 복잡한 교통편.
뭐 하나 좋아하는 조건이 없다.
놀이기구를 전혀 못 타기 때문에 국내 놀이공원도 가지 않는다.
혼자 놀기 최상위 단계 중 하나가 놀이공원인데 얼결에 도전했다.
놀아 줄 사람도 없는데 내가 왜 갔을까.
아마 다낭에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등산을 싫어하니 마블마운틴도 내키지 않고, 영흥사도 흥미가 안 생긴다.
제일 구미가 당기는 곳이 바나힐이었다.
결론적으로 바나힐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날씨 운이 너무 없었다.
다낭을 떠날 때는 괜찮았는데 바나힐이 가까워지니 비가 온다.
바보 같이 베트남의 12월이 우기라는 사실을 모르고 여행을 간 것이다.
동남아 여행인데 계절도 제대로 보지 않고 간 나 자신을 탓해야 했다.
비록 우기의 바나힐이지만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입구에 큰 트리와 장식들이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이보단 춥겠다.
비가 살짝 뿌렸지만 별 신경 안 쓰고 입구로 들어갔다.
그 유명한 바나힐 케이블카를 탔다.
하지만 바나힐은 아주 높은 곳에 있고 땅과 하늘의 날씨 차이는 많이 났다.
그리고 케이블카가 무섭다.
무섭다.
확실히 무섭다.
같이 탄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데 난 무섭다.
이제야 내가 놀이공원을 얼마나 싫어했는지가 기억난다.
이 무서운 케이블카를 한번 갈아타고서야 정상이다.
케이블카 안에는 무려 부적이 붙어 있다.
부적까지 붙여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인가 싶어 공포감이 더 늘어난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온 정상인데 아수라장이다.
이 구름은 무엇인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은 생각보다 별로다.
뭐가 보여야 걷지.
비가 와서 바람막이를 눌러쓰고 다녀야 하는데 시야가 가려서 걷기가 힘들다.
게다가 바나힐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레일바이크는 운행 중지다.
결국 실내 놀이기구만 탔다.
물론 범퍼카와 몇몇 놀이기구들을 꽤 신나게 타긴 했다.
하지만 큰 맘먹고 타기로 했던 레일바이크를 타지 못했고 레스토랑을 찾으러 다닐 수 없는 날씨라 가까운 곳에서 세상에 태어나 먹은 제일 맛없는 피자를 먹어야 했다.
바나힐 입장료는 3만 원이 넘고 피자가 만원 가까운 돈이었다.
베트남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난 돈이었기 때문에 본전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올라올 때 탄 케이블카가 날씨 탓인지 운행이 중지되었다.
다른 케이블카를 찾아다녀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려오는 케이블카는 덜 무섭다.
뜻밖에 계곡이 보인다.
케이블카 체험만으로도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고 나를 위로했다.
바나힐의 아름다움은 느낄 수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놀이공원은 혼자 가면 더럽게 재미가 없다.
다낭은 주변에는 관광지가 많지만 정작 시내에는 큰 볼거리가 없다.
바나힐에서 돌아오니 비는 그쳤지만 할 일은 없다.
할 일 없는 오후에 나에게 마사지를 선물했다.
바다는 안가지만 휴양지 기분은 제대로다.
이 정도가 나한테 딱 맞는 휴양이다.
마사지를 받고 나니 벌써 해가 진다.
맛있는 음식이 간절해서 검색을 서둘렀다.
반쎄오가 눈에 띈다.
반쎄오는 달걀이 들어간 쌀가루 반죽을 부친 음식인데 베트남에 오면 제일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다.
가까운 거리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어서 찾아갔다.
가게 외관부터 처음으로 성공적인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은 깨끗하고 직원들은 친절했다.
무엇보다 음식이 마음에 든다.
점심에 먹은 거지같은 피자를 잊게 만들어줬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라 맛 평가는 어렵지만 내가 좋아하는 식감이다.
바삭하게 과자처럼 씹히는 반죽에 고기와 채소가 함께 씹힌다.
달걀이 들어가 쌀이나 밀만 가지고 내지 못하는 크런치함이 느껴진다.
음식 때문에 속상하게 시작한 하루였지만 역시 맛있게 끝나면 다 좋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