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의 밤으로 가기까지

다낭을 잊게 만든 호이안의 밤

by 사십리터
베트남에서 가장 행복한 밤은 호이안이었다. 베트남, 중국, 일본 양식의 건물들 사이사이 들어 선 등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판타지 자체였다.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품고 한번 더 보여주는 새까만 투본강을 잊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 다낭의 마지막 시간

누군가의 알람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일찍 일어나는 건 오늘 계획엔 없었는데.

더 자고 싶었으나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한국인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잠이 깬다.

영어였다면 오히려 잠이 잘 왔을 텐데 타국에서 아는 말이 들리니 듣게 된다.

반강제로 일어나서 호스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내 지갑은 도미토리의 가격에 적응했지만 나의 예민함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언제나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배가 매우 고팠으나 가고 싶은 레스토랑이 아직 오픈 전이다.

늦잠을 자고 첫끼를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다른 후보지는 정하지 못했다.

꼭 가고 싶은 식당이었고 오늘은 다낭을 떠나는 날이라 미련하게 배고픔을 참았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노력이 시작되었다.

IMG_2416.JPG 한시장과 금은방 건물

우선 환전을 위해 한시장 근처로 갔다.

'Money Exchnge'란 글자를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다.

따로 표시는 없고 그냥 들어가 물어보니 해준다.

기차 예매 후 얇아졌던 지갑에 다시 생기가 돈다.

한시장 바로 앞이지만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옛날엔 시장이 가장 중요한 여행코스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잘 가지 않는다.

관광지의 시장이란 너무나 관광지다.

주거자들의 생활 용품 대신 관광객의 기념품이 가득하다.

시장인지 기념품점인지 고민하기보다는 길을 걷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쪽을 택했다.

지나가는 길에 핑크성당이 보였다.

수십 명의 한국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길과 성당은 전혀 다른 세계다.

길은 오토바이가 지나는 베트남이지만 성당은 각종 포즈와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한국인들의 성지다.

저 담을 넘으면 애써 벗어난 한국으로 다시 들어갈 것 같아서 성당을 스쳐 지나갔다.


# 나를 구원하신 성당 옆 약국

드디어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 '쩨비엣'의 오픈 시간이다.

아직 사람이 없는 시간이라 손님이 나뿐이다.

기대했던 분짜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모기와의 전쟁이...

하필 반바지를 입어서 모기를 미친 듯이 물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단시간에 많이 물려보긴 처음이다.

기록적이다.

1의 과장도 없다.

분짜는 맛있었지만 맛을 느끼는 건 불가능했다.

한 손엔 젓가락, 한 손엔 모기약을 들고 정신없이 먹었다.

옆의 한국인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볼 정도로 다리가 울긋불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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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근처 약국을 검색했다.

결국 다시 한시장으로 가서 모기기피제를 샀다.

약국에서 나오자마자 기침이 나올 때까지 온몸에 뿌렸다.

하지만 이미 많이 물린 터라 통증에 가까운 가려움이 느껴진다.

진정을 하고 보니 고작 한 시간쯤 전에 떠난 한시장 앞에 다시 서있었다.

결국 안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안은 생각대로다.

세발자국마다 한 명씩 아오자이를 맞추라는 사람들이 붙는다.

IMG_2440.JPG 한시장은 규모는 작고, 실내라 이런저런 냄새가 가득하다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근처의 콩카페로 갔다.

그 유명한 코코넛 스무디 커피를 드디어 맛본다.

약간 더위를 먹은 상태라 스무디의 시원함이 너무 좋다.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식감이 입안을 한 바퀴 돌다 커피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은 곳이라 조용하게 즐기기는 어렵다.

대부분이 한국인이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스타벅스보다 볼륨 높은 한국어가 많이 들린다.

그렇게 다낭 시내를 전전하다 예약해 둔 호이안행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 호이안의 밤은 무엇보다 아름답다

호이안은 정말 마음에 든다.

호이안에 가까워졌을 때 이미 좋았다.

다리를 건너 버스에서 내리자 호이안은 밤을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투본강 주변에서 장사를 시작하려고 플라스틱 의자를 까는 사람들, 야시장이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

밤이 되기 전부터 호이안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가 깔려 있다.

맘 같아선 남은 일정을 다 보내고 싶은 곳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오는 사이 해가 졌고 진짜 호이안이 나타나 있었다.

그림 앞에서 졸다 도원향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환상에 젖어서 호이안을 둘러봤다.

도시 곳곳에 깔린 등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야시장의 시끌벅적함도, 좁은 강가에 빡빡하게 들어선 관광객도 오늘만큼은 다 좋다.

빗물이 들어오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행복했다.

짧아진 해 덕에 일찍 찾아오는 밤이 반갑다.

아직 남아 있는 전통 가옥 사이로 난 골목길도 좋다.

투본강을 따라 지나는 소원 등이 특별한 분위기를 보고 싶다는 관광객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었다.

호이안을 걷는 한 사람일 수 있어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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