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밤을 준비하는 도시
사실 호이안의 보름, 보름밤을 기념하는 축제는 특별하지 않다. 호이안의 밤은 매일 아름답기 때문에 13일도 14일도 15일도 모두 똑같이 아름답다. 하지만 사람의 기분이란 그중 14일을 콕 집어 특별하게 기억하게 된다.
예쁜 마을에서 잠이 깼다.
예쁘게 일어나지는 못했다.
방안을 돌아다니는 벌레들 덕에 아름다운 호이안의 환상이 깨졌다.
친절하고 청소도 잘 된 홈스테이지만 벌레까지 막아 주지는 못한다.
일찍 일어난 탓에 아침 시간은 여유로워졌다.
모기 물린 팔다리를 긁으며 아침 식사도 빨리 했다.
메뉴는 반미 샌드위치와 과일이다.
반미를 하루 하나씩 먹어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어쩌다 보니 처음 먹는다.
조금 딱딱하지만 익숙한 샌드위치 맛이다.
남은 아침은 벤치에서 보냈다.
어제 신투어리스트 사무실에서 미선투어를 신청해두었기 때문에 픽업을 기다려야 했다.
밤과는 전혀 다른 아침을 보고 있으니 오토바이가 온다.
오늘 투어는 숙소로 벤이 픽업을 온 뒤 큰 버스로 옮겨 탄다.
나는 인원이 한 명 뿐이어서인지 오토바이가 왔다.
큰 버스로 옮겨 탄 뒤에 몇 차례 픽업이 더 있었고, 한참 더 가서 영어 가이드가 탔다.
제법 유쾌한 가이드다.
영어로 인사할 줄 아느냐고 물어서 사람들이 "Good morning!"라고 말했더니 가이드가 다들 영어를 잘한다며 칭찬을 한다.
영어에 등급을 나눠 점수를 받다가 굿모닝 한마디로 칭찬을 받았다.
웃자고 하는 말에 다 함께 웃고 즐거웠다.
물론 그 뒤로는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나는 오늘 하루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다.
가이드가 바람을 잡고 입장료를 걷는 동안 유적지에 도착했다.
관광지라기에는 한적하다.
미선 유적은 호이안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정글에 있는 참파 왕국의 유적지다.
힌두교 유적이 남아 있는데 인도차이나반도의 다른 유적보다 역사가 깊다.
입구에서 유적까지는 골프카를 타고 간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경치 구경을 넉넉하게 했다.
차에서 내려 조금 더 걸으니 유적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보존이 잘못되어 무너진 부분도 많다.
동남아의 유적들이 으레 그렇듯 프랑스에 빼앗긴 유물도 많다.
가이드는 유럽 사람들을 향해 그 사실을 강조한다.
또 하나 가이드가 강조하는 사실은 미선 유적의 역사다.
다른 동남아 유적들보다 오래된 유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캄보디아나 미얀마의 유적에 비교해 시각적 임팩트가 적어서 그런듯하다.
미선유적은 미얀마의 바간 유적지를 축소 또는 일부만 보는 느낌이다.
바간 유적에 다녀온 지 1년도 안 되어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열정 넘치는 가이드는 지치지 않고 이곳저곳 끌고 다닌다.
여름에 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알겠다.
날씨도 비가 오려다 말려다 약 올리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체력 좋아 보이던 서양인들도 흥미 잃은 표정으로 뒤쪽에 걸터앉는다.
무엇보다 이 유적은 유적보다는 관광지라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의 유적에서는 유적을 아끼는 할아버지, 기도하는 아줌마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사람과 공연장, 관광로가 있을 뿐이다.
기도하는 이가 떠난 유적에선 신도 떠나는 걸까?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유적이지만 미얀마의 버려진 유적보다 생기가 없어 보인다.
충분히 가치 있는 유적이었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났다.
미선 유적 투어는 두 종류가 있다.
버스로 왕복하는 기본 투어와 버스를 타고 유적지까지 가고 투본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돌아오는 투어다.
나는 간.단.한. 점심이 포함된 보트투어를 선택했다.
강가까지는 같은 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내려 조금 걸으면 배가 기다리고 있다.
정박한 보트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덮밥 같은 메뉴인데 정말 별거 없는 메뉴지만 배고파서 잘 먹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아서 맥주와 탄산음료 몇 가지를 돌아다니면서 판매한다.
판매가 끝나면 미지근한 생수를 한 병씩 나눠준다.
과연 물건을 파는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다.
음식도 구경거리도 평범한 보트투어지만 이런 사소한 시간이 좋다.
하필 햇살이 좋아서 강보다 하늘에 눈이 간다.
배에서 내릴 시간이 되자 가이드가 오늘이 풀문 페스티벌이란다.
호이안은 매월 음력 14일이면 축제가 열린다.
특별한 행사는 아니지만 화려하게 등불을 켜는 날이다.
예상치 못한 날짜선정에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에 가서 쉬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호이안은 참 원피스가 땡기는 곳이다.
너무 예뻐서 나도 함께 예쁘고 싶다.
저녁을 먹고 밖에 나오자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본격적으로 투본강에서 보트를 타라는 호객이 붙는다.
처음엔 생각이 없었는데 걷다 보니 타고 싶다.
14일, 풀문페스티벌이라 더 그렇다.
사실 관광지 호이안은 평소에도 등을 켜두기 때문에 어제와 다른 점은 없다.
하지만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이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강가를 걷다 호객에 걸리는 척 잡혀줬다.
구명조끼를 입고 소원등을 받아 배에 탔다.
확실히 강 위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긴 하다.
곱게 일렁이는 강물은 부드럽지만 깊은 까만색이라 좀 무섭기도 하다.
여행이 무사히 끝나길 바라며 소원등을 하나 띄웠다.
사실 수거되지 못한 소원등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환경오염이라는 생각은 좀 들었다.
내가 용왕이라면 강물을 더럽히는 이들의 소원은 무시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소원 하나는 이루어진 셈이다.
아름다운 밤, 나도 함께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