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비무장지대

베트남 DMZ 투어

by 사십리터
DMZ(비무장지대)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을 때는 좀 신기했다. 당연한 일인데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나라의 DMZ가 보고 싶었다.

# 후에(Hue)를 찾은 이유

후에(Hue)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도시지만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건너뛰려던 후에를 방문한 이유는 비무장지대(DMZ) 때문이었다.

한반도에만 있는 줄 알았던 DMZ가 베트남에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궁금증이 일었다.

같은 나라 안에 '비', '무장'을 해야 하는 현실이 모든 나라에 있는 건 아니니까.

정확히 말하면 DMZ는 후에가 아닌 동하에 있다.

하지만 동하는 관광업이 발달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보통 후에에서 머물며 투어를 이용해 DMZ를 방문한다.

가는 방법이 복잡한 탓에 DMZ까지 가는 관광객은 드물다.

정보도 드물어서 신투어리스트의 후에 투어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IMG_2787.JPG 참여하는 인원이 적어서 투어는 밴으로 진행된다

사실, DMZ투어가 인기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재미가 없다.

후에에서 동하까지는 차로 두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왕복만 4시간이다.

도착하고도 다음, 그리고 다음 장소로 계속 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렇게 나타난 장소는 하나같이 평범하다.

대단한 자연경관도 아니고, 번쩍거리는 문화재도 없다.

전쟁의 흔적을 따라가는 길이라 오히려 볼품없기까지 하다.

오분, 십분 정도의 볼거리를 위해 하루종일 차를 타고 이동한다.

보통 일주일 이하의 단기 여행밖에 못하는 한국인들은 당연히 싫어할 만하다.

나도 여행 기간이 짧았다면 가지 않았겠지만 여유가 있다.

탱크와 총알이 날아다니던 그 자리가 한국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보고 싶었다.

IMG_2789.JPG 전쟁 이후를 사는 사람들의 집


# 산과 들에 남아 있는 전쟁

전쟁의 역사란 때론 자국보다 타국과 연관이 깊다.

한국 전쟁도, 베트남 전쟁도 모두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발발했다.

그래서인지 투어 참가자들의 국적이 다양하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인이 대부분이다.

남한 국적의 내가 마지막에서 두번째로 차에 탔다.

그리고 마지막 멤버 두명은 미국인이었다.

다들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며 참여했다.

IMG_2781.JPG 록파일(The Rockpile)

가이드가 처음 내려준 곳은 록파일(The Rockpile)이다.

미군의 감시초소로 사용되었던 산이다.

잠시 내려 둘러보는 동안 차도 몇 대 없는 한적한 동네는 전쟁의 음울함이 깔려 있다.

그렇게 두세군데 전쟁 관련 된 장소에 내려 포토타임이 주어졌다.

그냥 봐선 평범한 산이고 논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이름 없는 산으로 알고 지나갔을 이곳에도 전쟁이 스며있다.

IMG_2797.JPG 군수 물자의 수송 통로였던 '다크롱다리 (Cau Da Krong)'. 다크롱강이 베트남 남북의 국경이 되면서 여러 번 폭격을 받았다.


# 전쟁을 파는 사람들

황폐한 고원에 도착했다.

'케산 전투 기지(Khe Sanh Combat Base)'.

베트남 전쟁 중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다.

역사적 지식이 짧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박물관을 만들었을 정도니 전투의 규모가 컸으리라 짐작해본다.

탱크, 전투기 등 당시의 흔적 주변으로 커피 농장이 펼쳐져 있다.

케산 기지에 도착하니 하루 중 유일하게 비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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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에 '케산 커피'라고 쓴 팻말이 있다.

들어가면 작은 전쟁의 흔적을 파는 베트남인들이 있다.

그들은 관광객 사이를 돌아다니며 미군의 계급장이나 옛날 동전 같은 물건을 사달라고 한다.

녹슨 총알을 파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거대한 몸집의 미국인을 따라다니며 전쟁을 사라고 말하는 베트남 사람.

서양에서 들어왔을 커피를 키워 다시 미국인에게 파는 사람.

전쟁이 끝난 DMZ는 여전히 전투 중이다.

들판과 커피나무, 군용 헬기가 만들어 내는 이 기묘한 풍경.

부조화가 만드는 미묘한 풍경이다.

케산 기지를 돌아보는 동안은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았다.

조금 전까지 오던 비가 이곳을 똑바로 보라고 잠시 멈춰주는 것 같다.

IMG_2824.JPG 케산 전투의 흔적을 말해주는 박물관


# 지하로 내려 간 사람들

이제 빈목터널(Vinh Moc Tunnels)로 간다.

'구찌터널'같이 베트남 사람들이 미군을 피해 땅굴을 파고 살던 곳이다.

가는 중에 비가 심심치 않게 온다.

터널에 도착해서 다들 우비를 챙겨 입었다.

미국인들은 터널에 들어갈 체격이 아니라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정도로 좁고 어두운 땅굴이다.

IMG_2847.JPG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마네킹으로 전시하는데 핸드폰 불빛으로 간신히 앞을 보며 가다 마네킹이 나타나면 놀란다.

160cm가 안 되는 내가 허리를 숙여 걷기도 해야 하는 정도다.

날이 선선해서 땀이 안 났는데 들어갔다 나오니 푹 절어있다.

전쟁은 이런 곳으로 마을을 몰아냈다.

'카타콤', '데린쿠유' 같은 지하 도시 보다 훨씬 초라하다.

종교적 지하도시가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면 여긴 훨씬 더 생존 문제와 연결된 곳이다.

전쟁과 종교는 땅에서, 하늘에서 살기 위해 시작했지만 정작 그 결과는 사람을 지하로 내몬다.

죽음을 피하려고, 죽은 뒤 하늘로 가기 위해 실천하는 것들이 사람을 지옥보다 좁은 땅굴로 몰아낸다.

IMG_2838.JPG 터널에 가기 전에 작은 전시관에서 설명을 듣는다


# 묵념

하루 동안 전쟁을 했다.

한국이 참 많이 생각나는 날이다.

오늘 돌아봤던 모든 곳은 한국에도 있다.

전쟁 중 물자를 수송한 도로, 폭격당한 다리, 비무장지대, 국립묘지.

한국 어느 시골에 가도 하나쯤 있을 만한 것들이다.

다만 한국의 DMZ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한가지가 느껴진다.

가해자의 심리.

같은 DMZ에 서 있어도 전혀 다른 입장이 된다.

낯선 감정이다.

베트남전쟁 피해자들의 평가는 항상 아이러니다.

내가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라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감정이다.

지하에서 나와 국립묘지에 도착하니 빗소리가 무겁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름 없는 병사들을 위한 그곳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IMG_2853.JPG '쯔엉선 국립묘지'에 잠든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도 사망일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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