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후에의 하루

후에를 먹고 마신 날

by 사십리터



후에의 또 다른 이름은 '딴 호아(Than Hoa)',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평화의 도시를 떠나는 날에 조용한 왕궁 카페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전쟁 때문에 망가진 성이 보이는 자리다. 왕궁의 주인들은 몰랐을 맛을 즐기며 그들을 떠올려 본다.


# 1600원짜리 브런치

하루는 아파서, 하루는 일정 때문에 끼니를 챙기지 못했더니 허기가 진다.

늦잠에서 깨자마자 프엉남카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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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cafe란 여행자를 위한 시설을 말한다.

여행사나 영어 메뉴판이 있는 식당의 이름이 ~카페인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길 생각이다.

메뉴는 분보후에(후에식 쌀국수)와 베트남 차다.

IMG_2865.JPG 원래는 매운 양념을 따로 주는데 여기는 넣어서 줬다. 조금 맵지만 먹을만하다.

후에를 떠나는 날에서야 분보후에를 먹는다.

매콤한 양념이 섞인 국수가 목적이었으나 2000동짜리 티에 시선을 빼앗겼다.

싸길래 주문해본 베트남 티는 유리잔에 뜨거운 차를 한가득 담아 내준다.

한국 돈으로 100원임을 생각하면 대단하다.

차 한잔 덕에 삼일 치의 포만감이 불러온다.

IMG_2862.JPG 결국 남겼다

쌀국수도 구석구석 고기가 제법 들어가고 괜찮다.

한국 어디에 고기 들어간 1500원짜리 음식이 있던가.

비가 와서 조금 추운 몸이 사르르 녹는다.

든든해진 몸으로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왕성으로 갔다.


# 왕궁에서의 커피 타임

내가 후에 왕궁에 너무 기대가 없었나 보다.

생각보다 멋지다.

작은 자금성을 생각했는데 전혀 다르다.

일단 해자가 있어서 분위기가 살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끄러운 자금성과 달리 차분하다.

어설픈 복원 상태가 오히려 사라진 왕조의 분위기를 살린다.

너무 새것같이 복원한 궁전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제 왕은 없는데 혼자 그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대궐이란 부질없고 쓸쓸해 보인다.

낡은 후에 왕궁은 솔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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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왕궁에 들어가니 비가 온다.

왕궁의 구석으로 가니 이끼 낀 바닥이 미끄럽다.

샌들을 신고는 걸을 수 없어 큰길만 보고 왕궁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왕궁의 일부지만 궁 밖으로 나와 다른 입구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궁 안에도 카페가 있지만 여기는 옛 건물을 그대로 살린 곳이라 전혀 다르다.

대부분 다시 입구로 돌아가기 때문에 인적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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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오후의 티타임을 갖는다.

아마 여기 살던 왕족들도 잘 모르는 맛일 커피를 타국의 서민이 마시고 있다.

사라진 주인들이 무너진 왕궁에서 어느 나라의 여자가 커피 마시는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커피 한잔에 생각을 담아 정리하는 시간이다.


# 느긋하게 코스 요리 즐기기

후에에 도착한 첫날 호텔 직원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이 있다.

엄지를 내밀며 베리 굿이라 말하던 표정이 생각나서 바로 거기, 마담뚜(Madam Thu)를 찾았다.

식물로 꾸민 레스토랑은 카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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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을 보며 한참 고민하다 베트남식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가격이 좀 부담스럽지만 그래 봐야 서울 시내 식당의 칼국수 가격이다.

게다가 음식은 가격만큼 나온다.

7~8천원 정도의 가격에 음료와 디저트까지 포함이다.

영어가 능숙한 직원이 음식이 나올 때마다 먹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소박하지만 화려한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베트남 요리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후에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음식들을 다 먹고 떠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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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러서 남긴 음식은 포장까지 해준다.

생각 못 한 친절이다.

맛있는 음식을 기분 좋게 먹은 순간은 항상 모든 기억을 좋게 만든다.

후에는 왕궁 이외는 특징이 없는 도시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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