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냐동굴의 매력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도피를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조용한 동굴에 들어가 보니 왜 그런 표현이 생겼는지 이해가 된다. 왜 신성한 용들의 은신처를 동굴로 그리는지도 알겠다. 지옥이 동굴의 얼굴로 표현되는 이유도 알겠다. 동굴에 들어갔을 뿐인데 왜 인류의 역사 속에 그토록 많은 동굴이 존재했는지 너무나 알 것 같다.
호텔에서 퐁냐로 가는 픽업을 기다리고 있으니 슬쩍 한국 음악을 틀어준다.
부킹닷컴에 평점을 잘 부탁한다는 일종의 아부다.
평점을 얼마나 줄지 고민하는 참에 픽업이 왔다.
짐을 들어준다.
고맙게.
무거웠는지 고쳐 든다.
미안하게.
오늘 타는 버스는 나를 퐁냐로 데려다 줄 예정이다.
'퐁냐케방 국립공원(Phong Nha - Ke Bang National Park)'은 세계 최대의 카르스트 산악지형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300여 개의 동굴이 있고, 여전히 새로운 동굴을 발견 중이다.
하나하나 신비함을 품고 있지만 관광객에게 허락된 동굴은 '퐁냐 동굴'과 '파라다이스 동굴' 정도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했을 정도로 절경이지만 인지도는 많이 떨어진다.
이 엄청난 관광자원이 한국인에게 덜 알려진 이유는 딱 하나다.
가기가 힘들다.
접근성이 떨어져서 아직 관광객의 발길이 드물다.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하롱베이 이상의 감동이 있는 곳이었다.
픽업한 밴은 외곽의 주유소에 우리를 떨군다.
여기서 슬리핑 버스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동안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도 왔다.
말하자면 이 주유소가 버스회사의 터미널인 셈이다.
제법 기다려서 버스가 왔고 짐과 몸을 싣고도 한참 후에야 출발한다.
후에로 올 때 탄 신투어의 버스와 달리 화장실도 있는 버스인데 대부분 현지인들이 이용한다.
외국인은 나와 어느 조용한 커플, 버스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사실에 오마이갓을 외치며 호들갑을 떤 여자애들 셋이 전부다.
요란한 여학생들을 따라 들어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내 키는 슬리핑버스를 타기 위해 성장을 멈췄나 싶을 정도로 딱 들어간다.
문제는 에어컨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
매캐함에 마스크를 쓰고 무슨 냄새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것이 담배 냄새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승객이 잠들어 조용했던 버스가 한순간 시끄러웠다.
'펑!'
'펑?'
버스타 터졌...다?
부정할 수 없는 폭발 소리가 들렸다.
자던 사람도 깨서 두리번거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하지만 그냥 간다.
여기서 당황하면 지는 걸까?
버스 기사는 일상인 듯 길을 간다.
설명도 무엇도 없다.
당황한 기색은 외국인들 사이에서만 있다.
기사와 말이 통하는 현지인들은 이유를 물어볼 생각도 없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순간 끝에 나는 새로운 장소, 퐁냐에 도착했다.
동남아에서 사고현장에 있을 때마다 생각하지만, 사고와 사건이라 참 한 끗이다.
분명 안전에 유의해야 하는 게 맞는데 이렇게 별일 없이 넘어가는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가치관이 무너진다.
이제는 여행 중에는 사람이 다치지 않으면 사고라는 생각이 안 든다.
결국 그 상황에서도 버스는 멀쩡하게 퐁냐에 도착했다.
사고가 돼야 했을 순간은 사건으로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퐁냐의 경치가 들어온다.
퐁냐에 도착했을 때는 11시쯤이었고 가로등 하나 없는 마을은 어두컴컴했다.
하루 7달러짜리 호텔의 창문에는 옆 건물의 벽돌만 보였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밝은 퐁냐를 봤을 때 이벤트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아, 정말 대단한 풍경!
비가 오지만 오히려 구름이 깔려서 수묵화 느낌이 난다.
아직 잠에서 덜 깨 몽유도원도 속에 들어왔나 싶다.
퐁냐의 명물은 동굴이라고만 알고 있어서 이런 산세가 펼쳐져 있을 줄은 몰랐다.
미처 생각지 못한 자연이 감동을 준다.
날이 궂어 퐁냐동굴까지는 우비를 쓰고 걸어갔지만 질척거리는 길이 싫지 않았다.
퐁냐동굴은 매표소가 선착장에 있다.
동굴이 강가에 있어서 배를 타야 갈 수 있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가다 동굴 입구에서 카누를 타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동굴 안으로 물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카누와 물의 흐름을 따라 동굴을 둘러보게 된다.
그래서 동굴 입장료에 배 요금이 포함되기 때문에 조금 비싸다.
이 배는 한 척을 이용하는 비용을 타는 사람들이 나눠 내야 하므로 매표소에서 기다리며 함께 갈 사람들을 모으는 시스템이다.
나는 바로 앞에서 배를 하나 보내는 바람에 꽤 오래 기다린 끝에 8명으로 떠났다.
나와 베트남 로컬 4명, 호스텔에서 만나 함께 왔다는 유럽 여행자들 3명이었다.
베트남 로컬 중 두 명이 영어를 잘하는 학교 선생님이라 훌륭한 통역이 되어줬다.
작은 배를 타고 동굴 앞에 도착한 뒤 우리는 4명씩 나눠 작은 카누로 옮겨 타고 동굴 탐험을 시작했다.
관광객이 워낙 적어서 우리 8명과 사공 두 명만 있었다.
사공들이 노 젓는 소리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이 동굴에서 가장 큰 소음이다.
우기라 밖에서는 비가 퍼붓고 있지만 동굴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사람이 열 명 밖에 없는 동굴의 침묵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다른 동굴에서 느끼지 못할 기운을 만든다.
동굴이 뿜는 분위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닥의 물로 들어가는 소리가 청량하다.
동굴은 본적은 있어서 동굴을 들어본 건 처음이다.
몇 안 되는 조명들이 별을 대신해 동굴을 밝혀준다.
맨발로 노를 젓는 여자 사공의 움직임이 나를 동굴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카누에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파라다이스 동굴은 따로 있지만 여기도 충분히 천국다운 풍경이다.
사실 어두운 동굴 속 기괴한 종유석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깝지만 어둠이 보여주는 신비함만큼은 충분히 천국의 것이다.
지옥 속에 숨겨진 천국을 보면서 어쩌면 지옥이 그렇게 괴로운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