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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dfpark Feb 04. 2024

신의 직장에서 퇴사할 결심

워라밸 극과 극 회사 체험

지난 주 금요일, 퇴사를 통보했다. 생각보다 행복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후련했다.




첫 번째 회사는 너무 힘들었다. 동료들도 좋았고 일도 재밌었지만 체력적으로 소모가 컸다. 작은 규모에 체계없는 중소기업. 문제점을 건의해도 나아질 수 없는 구조였다. 대표는 1시간 내내 퇴사를 말리며 나를 설득했다. 그 자리를 너무 뜨고 싶어 그러겠노라 말할 뻔할 걸 간신히 참았다. 7월에 퇴사를 통보했고 10월에 퇴사하게 됐다. 1년 6개월의 경력이 남았다.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 않을까? 너무 성격이 불같은 남자친구와 문제가 생겼다면 다음엔 차분한 보살 타입의 남자를 찾게 될 것이다. 너무 화끈한(?) 회사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탓에 공고에 대놓고 워라밸을 보장하는 인하우스 중견기업에 지원했다.


3번의 면접을 거쳐 합격. 나와 같은 직무인 사람은 건물 내에 아무도 없었고 나는 9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내 일을 끝내기만 하면 됐다. 6시에 조금이라도 꾸물대면 얼른 퇴근하라고 독촉하는 상사,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동료. 매일 같은 시간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기뻐하셨다. 퇴근 후 요가 학원에 다닐 수 있었고, 약속 자리에 친구를 기다리게 하며 사죄의 카톡을 보내지 않아도 됐다. 주말에 약속을 잡으며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입사 첫 달, 아무 것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는 해방감을 느끼며 정시 퇴근했다. 한국처럼 워라밸이 부족한 나라에서 되는 '신의 직장'에 들어간 것이다. (*꿈의 직장과 신의 직장은 엄연히 다르다.)


그 행복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 퍼스트 현타는 들어간지 한 달만에 담당 업무가 바뀐 사건이었다. '지원 부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감했다. 순 우리말로 '곁다리'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 곁다리 부서에서 나는 외눈박이 마을의 이방인이었다. 잘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인.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해도 다 나를 칭찬했다. 뭘 해도 '이런 건 어디서 배웠냐'며 날 추켜세웠다. 고작 1-2년 경력의 내가 듣기에는 너무 과분했다. 조직에 대한 기대감만 낮아져갔다. 이곳에서 대체 어떤 성과와 포트폴리오를 가져갈 수 있을까?


퇴근 후 자기계발이라는 걸 해보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시 퇴근을 하더라도 체력적으로는 힘들었다. 집에 가면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했다. 운동도 잘 나가지 않게 됐다. 미친듯이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해외여행도 다녀왔지만 회사에 돌아가면 또 무기력하게 9시간을 때웠다. 뇌가 썩는 기분이었다. 여기 오래 고여있으면, 이 다음에 성과를 입증해 이직할 수 있을까? 같은 회사를 나온 다른 동료들은 이름있고 성과좋은 회사에 이직해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것 같았다. 가장 나른하고 무기력한 오후 3시, 자리에 앉아 답답함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차피 높은 칸막이에 가려져 아무도 내가 우는 걸 모르니 상관없었다.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던 첫 회사에서 보다 더 자주 울음이 났다.


지난 주 금요일, 퇴사를 통보했다. 상사의 반응은 '그럴 줄 알았다'로 시작해 '이렇게 하면 퇴사를 안 하겠느냐'로 이어져 '알겠다'로 끝났다. 첫 회사 보다 훨씬 깔끔하고 나이스한 퇴사 조정이었다.


몇 주 후, 나는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한다. 1년의 경력이 추가됐고. 워라밸이 너무 없었지만 재미있었던 회사. 워라밸 하난 끝내줬지만 재미없었던 번째 회사. 극과 극인 회사를 거쳤다.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험이 없었다면 워라밸에 대한 환상이 아직 남아있었겠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 또 찾아나설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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