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6와 2025년 여름 서울

굳이굳이 화질구지로 돌아간...

by iandfpark

인간들은 이게 문제야. 뭐든 지나치게 발전시키는 게 문제다. 적당히가 없고. 비교적 최신 버전인 아이폰 13미니 유저로서, 언젠가부터 풍경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 왠지 예쁘게 담기지 않는 느낌이었는데 내 사진 실력이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해외 여행 중 친구가 들고온 사진용 구형 아이폰을 보고 깨달았다. 요즘 아이폰이 지나치게 화질이 좋구나! 오래 잊고 지내던 아이폰6S를 꺼냈다. 유독 바쁜 여름, 외출 할 때마다 핸드폰을 두 개씩 챙기기 시작했다.


IMG_2428.JPG 종로 어느 노을


구형 아이폰으로 풍경을 찍기란 마치 흑과 백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것과 같다. 흑을 잡으면 백이 토라지고, 백을 잡으면 흑이 사라진다. 덕분에 사진 한 장 찍는 데도 손은 바쁘게 화면을 여기저기 터치하기 바쁘다. 결국 건물과 사람을 잡다 보니 하늘 일부가 완전 백색으로 날아갔는데, 이게 구형 아이폰 특유의 '화질 구지력'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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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핀 조명


덕분에 이런 이목을 집중시키는 핀 조명 효과도 가능하다. 왼쪽 사진은 같이 있던 친구가 꼭 보내달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했는데, 과하게 색이 쨍하게 나오지 않아서 좋다고 할까... 프레임 속 모든 부분을 고화질로 담아주는 요즘 아이폰 보다 이쪽이 더 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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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폭염주의보


한국 놀러온 외국인은 청계천을 꼭 와야겠더라. 나도 세계 곳곳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도시 한복판에 신발 벗고 발을 담글 수 있는 얕은 강은 못 본 것 같다. 이 날 굉장히 더웠는데 얼음 음료 먹으며 물가에 앉으니 그나마 시원했다. 군데군데 외국인 가족들도 많았는데, 하필 이런 더운 시기에 한국에 온 게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도 청계천 같은 멋진 데 와봐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맞은 편에 헤드셋을 끼고 책을 읽는 여자분이 계셨는데, 그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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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아이폰6로 그날 일상을 담고 나면 뭐랄까, 단 며칠 뒤에 그 사진을 봐도 마치 아주 오래 전 사진을 보는 기분이 든다. 챗gpt 같은 거 없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아날로그틱 했던 그 시절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세상을 보는 화질이 그렇게까지 높아질 필요가 있을까? 조금은 모르고 느리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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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라길 구름


어릴 때 하늘의 뭉게구름을 보면서 '세상에서 구름이 제일 예쁘다!'라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몇 번 비가 내린 후의 서울 구름은 너무 예뻤고요... 예전에 친구랑 걸었을 때 너무 예뻤던 기억이 있어 무작정 혼자 찾아간 서순라길. 지금은 웨이팅이 넘쳐나는 카페 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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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것 = 고양이. 긴 카페 거리를 지나 예전에 자주 갔던 안국의 도토리 가든에서 빵을 시켰다. 날이 예전만큼 덥지는 않았지만 밖에 오래 걸어다니니 진이 빠졌다.


갑작스럽게 생긴 주말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날. 여름은 끝나가는데 제대로 놀아본 기억이 없었다. 올 여름 예쁜 여름 옷 한 장 사지 못했고, 물 구경 한번 못한 채 벌써 8월이 지나간다. 요즘 들어 뚜렷한 이유없이 자신감이 없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다른 사람에게 내심 서운한 마음도 생기고. 쉬는 날은 쉰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있다 보니 점점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정말 홀린 듯이 외출을 결정했다.


무작정 나왔지만 아직도 혼자 밖에서 노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사실 어딜 가도 심심하고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들어서 오래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나마 구형 폰으로 남긴 아련 색감 사진들이, 나중에 이런 날도 있었지 돌아보게 할 것 같다. 종종 평소 안 하던 짓을 해보고 스스로 돌보는 습관을 키워야겠다,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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