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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Jun 28. 2021

떼쓰는 아이의 행동 너머엔  늘 이유가 있다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27


자기 전 책 읽어달라고 떼쓰는 아이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육아 고충을 토로하기 위해서다. 준규 보다 세 살 정도 어린 딸을  둔 친구다. 친구의 이야기는 밤마다 아이 잠을 재우려고 씨름하다 보면 너무 지친다는 것이었다. 육아로 지친 하루를 빨리 마감하고 싶은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는 말똥말똥 한 눈으로 놀 생각만 하니 더 힘들다고 했다. 심지어 겨우 재우려고 침실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책을 읽어달라며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육아 몇 년 선배랍시고 친구에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법을 일러주었다. 우선 침실 환경을 바꿔보라고 제안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침실 안에 침구류, 아이가 최근 좋아하는 책들, 스탠드를 제외하고는 장난감이나 다른 물건들을 모두 치워보라는 것이었다. 밤마다 준규의 수면 육아에 고충을 겪을 무렵, 잠자리 독서에 관한 책을 읽으며 터득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잠자리에 들기 전 잠자리 신호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 정리를 마치고 여덟 시 이후에는 집에 있는 등을 다 끄고, 침실에 있는 노란색 전구 스탠드만 켜놓아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아이가 왜 밤만 되면 잠을 안 자고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책과 사랑에 빠지면 독서가 습관이 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 《몰입의 즐거움》(해냄, 2007)에 이런 이야기 가 나온다.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 그 활강이 너무도 완벽하여 우리는 그것이 한없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순간의 경험에 완전히 몰입한다. 스키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합창, 프로그램 짜기, 춤이나 카드놀이, 독서 등과 같은 활동을 넣어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수면과 같은 생리적인 욕구조차 잊은 채 책을 읽는 그 활동이 너무나도 완벽하여 그것이 한없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일지 도 모른다. 아이들이 밤을 새울 태세로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한다면 아이 스스로 그 순간에 흠뻑 빠지는 경험을 해보고자 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야 늦은 밤까지 계속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수고로운 일 이겠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의 따뜻한 목소리로 재미있는 이야기에 흠 뻑 빠져들 수 있는 몰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 시간은 책과  한층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자라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책을 통해 탐구하는 습성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욕구가 좌절되어 책을 통해 몰입을 경험할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일주일이 될 수도 한 달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아이는 이 시간을 통해 평생 책을 곁에 두고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밤만 되면 잠들기 싫어서 꼼수를 쓰듯 계속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 어쩌면 무슨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만으로도 부모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다. 

‘아, 우리 아이도 평 생 책을 곁에 둘 수 있는 몰입의 기회가 왔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손에 잡히는 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이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어느새 잠들어 있기도 할 것이다.




아빠가 읽어주는 추억의 잠자리 독서


어려서 부모와의 경험이 어쩌면 평생 독서 습관의 시초를 열어놓을  수도 있다. 짐 트렐리즈는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 의 힘》(북라인, 2018)에서 아이가 책과 사랑에 빠지게 하여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책을 즐겨 읽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이가 여덟 살 되던 해부터 아이 아빠에게  잠자리 독서를 부탁했다. 고맙게도 남편은 5년째 일주일에 두세 번, 책  속에 나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맞춰 목소리를 바꿔가며 책을 읽어주고 있다.


그 많은 밤 아들과 아빠가 쌓았을 유대감과 공감은 읽기 능력을 넘어서 부자지간에 더없이 값진 시간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생이 되어서 집중력 부족,  이해력 부족, 학습 부진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많이 본다. 그제야 부모들은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보고 학원을  알아보지만, 그때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그 부족함을 메울 수 있다.  


본인이 공부를 하고자 할 때 집중할 수 있는 힘, 이해할 수 있는 읽기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연스레 책이 친구가 되어 있는 아이들은 집중력, 이해력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  능력이 결국 아이 학습 능력의 뿌리가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통해 깊게 뻗어나간 뿌리는 그 어떤 학습 방법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 


아이가 두세 살쯤 되었을 때라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 그램을 통해 떼쓰는 아이에 대한 사례들을 본 적이 있다. 아이가 떼를  쓰는 경우, 부모의 양육 태도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모의 기 준에 일관성이 없으면, 아이  입장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떼를 쓴다는  것이었다.  


육아 전문가의 처방을 보며,  나도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미리 약속되거나 계획된 것이 아니면 100원짜리 장난감이라도 절대 사주지 않았다. 그렇게 했더니 준규는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에 받는 선물을 제외하고는 뭔가  사달라고 떼쓰거나 고집을 부린 적이 없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칭찬 스티커를 모은다든지 사전의 계획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준규에게 그 절대적인 룰이 통하지 않았던 적이 한 번 있었다.  준규가 3~4살 무렵 한 백화점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공룡 피겨들을 구경하던 준규가 평소와는 다르게 공룡 하나를 집어 들고는 갑자기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준규는 그 공룡을 꼭 사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고, 결국 아이 손에서 강제로 공룡을 빼앗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아이 머릿속은 온통 공룡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공룡 피규어들을 다 사줄 수는 없으니 주로 평일 오전 시간을 이용해  서점이나 대형마트에 데려가 진열된 공룡들을 실컷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해주곤 했다. 진열장 밑으로 온갖 공룡들을 내려놓고 공룡놀이를 한 시간씩 하고도 사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다 놀았다며 제자리에 올려놓고 집에 가자던 아이였다. 파워레인저, 트랜스포머에 빠져 있을 때조차도 가면과 온갖 칼들이 놓인 진열장 앞에서 포즈만 바꿔가며 상상 속에서 아이템들을 장착하고 놀던 아이였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공룡 하나를 손에 쥐고 사달라는 아이를 보며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 당시만 해도 왜 그러는지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떼쓰는 이유가 있다, 아이의 마음을 들어보자


처음에는 차에 타자마자 아이에게 왜 고집을 피우고 떼를  썼느냐고 채근하며 혼을 냈다.  그러고는 40분쯤 후 집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아이에게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동안 뭘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없는데, 오늘은 왜 그랬던 거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너무 미안해지고 말았다. 

“엄마, 노트로니쿠스를 책에서 말고 처음 봤어요. 티라노사우루스, 브 라키오 사우루스 같은 공룡은 우리가 자주 가던 곳에서도 팔아요. 그런데 노트로니쿠스는 아무데서나 살 수 없어서, 보는 순간 너무 사고 싶었어요. 잘못했어요.” 

울음을 삼키며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며 순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만든 기준에 어긋난다고 왜 그러는지 차분히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준규에게, 그랬던 거냐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엄마는 그런 줄 모르고 갑자기 네가 떼를 쓰니까  당황해서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 그날의 일을 돌이켜볼수록 후회가 되었다. 결국 다음 날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찾은 백화점에서 산 공룡은 아직도 준규 방에 고이 모셔져 있다. 




때로는 아이와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해소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되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동을 다 허용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가 예상치 못한 행동들을 했을 때 일단 그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순간들이 참 많다.  


아이들은 부모가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안정감을 갖는다. 부모로부터 받은 경험을 통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며 자란다. 아이가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면, 부모의 태도가 이랬다 저랬다 하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아이들 스스로 그 상황에 대해 어떠한 기준을 찾을 수가 없을 때 아이들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를 쓴다. 


그리고 어른 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가끔은 기분을 내고 싶을 때도 있고, 꼭 사야 하는 한정판 제품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역시나 육아의 가장 기본은 어른의 눈높이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라는 것을 또 배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을 화나게 하려고 괜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행동 너머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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