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28
준규: 엄마, 한 번 더요.
엄마: 또? 음, 벌써 다섯 번째인데……. (하는 수 없이 다시 이야기 시작)
깜깜하고 조용한 어느 날 밤……,
갑자기 밖에서 천둥소리 같은 ‘우당탕탕’ 하는 굉음이 들리는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호랑이가 온 건가?
집이 무너졌나? 하면서 밖으로 나가보았어.
소리가 나는 곳은 베란다였어.
살금살금 베란다를 향해 나가는데 글쎄, 세탁기가 혼자서 움직이고 있는 거야!
마치 걸어 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덜덜덜덜’ 소리를 내면서……
몇 주 전 세탁기 발받침이 빠지며 일어났던 소동을 30개월 준규 눈높이에 맞춰 의성어, 의태어를 넣고 극적으로 각색한 미스터리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자기 전에 잠깐씩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도 밑천이 다 떨어진 참이라, 지나가는 이야기로 잠깐 해준 것이 이렇게 고행의 길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처음 이야기를 해주던 날도 한 번 더해 달라고 조르는 아이 때문에 여러 차례 이야기를 되풀이해야만 했다. 하지만 하루로 끝날 줄 알았던 일이 몇 주째 지속되고 있었다. 연속해서 열 번 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쳐서 화가 나기도 하고,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반복 재생을 원하는 아이 탓에 나중에는 너무 지쳐 이야기를 짧게 끝내 보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막 엉터리로 보태기도 했다.
남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 차 방문했던 공사 현장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몇 시간을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벌써 며칠 째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늘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내 무릎에 앉아 있던 준규가 갑자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두 돌이 조금 넘었을 때라 겨우 문장을 완성하며 말하던 즈음이었고, 발음도 부모라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는 턱받이 수건이 침으로 흥건히 젖도록 온갖 수식어들을 보태 가며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얼마 전까지 무한 반복을 해달라던 그 미스터리 이야기의 각색 버전이었다.
이야기는 한 시간이 넘도록 살이 덧붙여지며 계속되었다. 그제야 남편과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아, 그거였구나. 너도 엄마 아빠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거구나.’ 여느 초보 부모가 그렇듯 우리 부부도 아이가 그렇게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이유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때론 얘가 나를 화나게 하려고 그러나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무한 재생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학습을 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에 책으로 보았던 다른 이야기들을 보태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꾸려나갔다. 그때 신기해하며 찍었던 영상은 아직도 남편 휴대폰에 기분 전환용 동영상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 이후, 우리 부부는 아이가 무한 반복을 요구할 때 무조건 모른 척 외면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던 경험이 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그때만큼 무한 반복을 요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반복되는 일상에 심신이 지치는 순간이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이렇게 힘들 때 가끔, 이 시간 너머에 찾아올 마법을 기대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쩌면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아이만의 어마 어마한 숨은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
<준규네 홈스쿨> 진서원 P.205~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