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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Jul 19. 2021

놀이의 힘,  창의력이 쑥쑥!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30


어떻게 놀아야 잘 놀까? 


나는 아이가 어렸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공부하는가.’보다는  ‘어떻게 노는가.’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얼핏 보기에 비생산적이고, 시간 낭비로 보일 수 있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인지 발달, 운동성 발달,  언어 발달 그리고 사회성 발달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소통 능력과 협업 능력을 경험하고 키워나갈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기능 놀이들을 통해 소근육, 대근육 조작을 경험하고 인지력 및 운동성을 발달시키기도 한다. 구성놀이나 상상놀이를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키울 수도 있다. 뭘 하고 놀지, 뭘 만들며 놀지, 뭘 그릴 지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때로는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아이들의 머릿속은 늘 반짝인다. 


준규를 보며 가장 부러운 점은 그 아이만의 괴짜 같고 기상천외한 엉뚱함, 그리고 신선한 사고에서 비롯되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들이다.  그런데 이 준규만의 사고는 놀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이  눈앞에 굴러다니는 털실 한 타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나뭇가지나 돌멩이, 동화책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페이지, 배꼽 빠지게 웃었던 영화의  한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며 순식간에 놀이를 위한 생각의 재조합과 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아이들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을 만드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과학 체험관 같은 데 가보면 땀나도록 물 펌프질 하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펌프질은 그저 놀이일  뿐이고, 신나게 놀면서 무의식적으로 펌프의 원리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학습이 아니라고 홀대할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 속 숨은 가치를 안다면 아이들의 놀이를 단순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준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종이접기


준규의 종이접기 역사는 참으로 오래된 것 같다. 네다섯 살 때 종이 접기가 소근육 조작에 좋다는 말을 듣고 여느 엄마들처럼 종이접기 책 한 권을 사주며 시작되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준규는 8년이 넘도록 종이 접기에 빠져 있다.  처음에는 여느 아이들처럼 네모난 종이가 토끼로도 변하고, 개구리로도 변하니 신기해하며 심심할 때 나와 함께 접곤 했었다. 가끔 서점에  가면 종이접기 책들을 구경하며, 공룡에 빠져 있을 때는 공룡 접기 책을,  자동차에 빠져 있을 땐 레이싱카 접기 책을 샀다. 그렇게 아이는 종이 접 기에 대한 흥미를 이어나갔다.


평소에 외식을 하거나 심심해할 때 절대 스마트폰을 아이에게 주지  말자는 것이 내 원칙이었고, 집에 텔레비전조차 없다 보니 아이는 자연스레 지루한 시간을 독서나 종이접기를 하며 보내곤 했다. 심심한 시간이 많았던 것이 어쩌면 이 아이가 종이접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 일 수도 있겠다. 어느새 습관이 되었는지 집에서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그리고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종이 한 장을 얻어 종이접기를 하곤 했다. 


준규가 로봇에 한참 빠져 있던 즈음, 우연히 서점에서 후지모토 무네지의 《오리 로보》(봄봄 스쿨, 2016)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재앙의 시작이었 다. 한 시간이 꼬박 걸리도록 로봇 하나를 접어보려고 애썼지만 준규와 나 둘 다 도저히 완성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더 못 접겠다고 항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준규는 그날 이후 그 책을 붙잡고 꽤 오래도록 씨름을 했다. 50분 가까이 기본 선을 내며 접은 종이가 한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계속 망가져서 쓰레기가 되자 속이 상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나중에는 너무 화를 내며 접고 있기에 몰래 책을 감춰놓기도 했었다.  그러고는 준규가 도전할 만한 조금은 쉬운 난이도의 책을 사서 주기도  했다.


그 책으로 한동안 종이접기를 이어가던 아이는 자신감을 얻고 《오리 로보》 책의 종이 접기에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준규는 그  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접고 또 접었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준규는  그 책 속의 로봇을 너무나 능숙하게 접고 있었다.




준규가 종이접기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


이 시기에 종이접기를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아이를 종이접기 학원에 보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얼마 전 준규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학원에 갔더라면 ‘굳이 종이접기를 배워야 하 나?’라고 느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저 종이 접기가 재미있었고, 누군가 시킨 게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어쩌면 아이가 종이접기를 취미로 그리고 놀이로 지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천천히 가다 쉬다를 반복할 수 있도록 놔둔 것이 비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고비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팁을 준 것이 준규가 종이접기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다음은 내가 준규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그 팁들을 정리한 것이다. 만약 아이가 종이 접기에 흥미가 있거나 혹은 아이가 종이접기를  꾸준히 했으면 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팁들을 활용하여 아이에게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1 | 난이도 조절 

보통 학습을 하거나 무언가를 습득할 때 지나치게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면 초반에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책을 좋아하지만 한글을 더듬더듬 읽는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중고생이나 읽을 법 한 소설을 주고 읽으라고 했다고 생각해보자. 아이는 바로 책을 덮어버리거나 그림 정도만 볼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한 줄 정도의 문장과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을 준다면 아마 한글 읽기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준규의 종이접기도 마찬가지였다. 준규가 수행하기에 너무 어렵다 싶을 때는 난이도를 조금 낮추어  책을 다시 선택하기도 하고, 종이접기를 완성하지 못해 속상해할 때는 해내고 싶은 마음을 읽어주고 함께 접어보며 도와주기도 했다


2 | 영역의 확장 

그저 실컷 접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가끔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관심을 주며 쉬엄쉬엄 이어간 지 5~6년쯤 넘어가자 이제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책으로는 아이의 관심사를 채우기에 부족했다. 뭔가 종이 접기에  시들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전할 만한 것들을 찾다가 우연히 유튜브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오리가미 작품들이 온라인상에  넘쳐나는 것을 보며 아이는 탄성을 질렀다. ‘페이퍼 빌드’라는 유튜버의  건담 접기에 빠져 그동안 준규가 해오던 한 장 종이 접기와는 다른, 유닛을 이용한 오리가미에 빠지기도 했다. 보통 건담 한 작품(보통 높이 30cm정 도 사이즈)을 완성하려면 A4 종이 100장 이상이 들어가고 일주일을 꼬박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이가 종이 접기에 관심이 식을 때면 다시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의 종이접기를 소개해주고는 했다.


3 | 종이에 대한 관심 유도

종이 접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다른 취미에 비해 저렴하다. 준비해야  할 거라고는 종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이는 대형 색종이 (25 cm×25cm, 30 cm×30cm 사이즈)를 구해달라거나 종이접기 책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종이를 컬러복사해달라는 정도의 요구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두께까지 체크하며 종이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전주처럼 종이가 유명한 지역에 여행 갔을 때는 종이 판매하는 곳에 일부러 들러 한지를 살펴보고 구매해보기도 했다. 다양한 종이가 있는 곳을 알았다며 대규모 다이소 매장에 데려가 달라고 한 적도 있다.  매장 몇 군데를 돌며 새로운 종이를 사서 접어보았지만, 온라인에서 본  일본 작가들이 사용한 종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을지로에 있는 ‘인 더 페이퍼’라는 종이 전문 백화점을 알게  되었다. 그곳을 방문한 첫날, 아이는 온갖 종류의 종이들을 보고 흥분 하 여 하루 종일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새로운 종이를 사 온 날이면  짧게는 4~5시간을, 길게는 일주일씩 온종일 종이 접기만 했다.  멋진 작품을 생각하며 종이를 접고 있는 아이에게 차마 오늘 할 일을  다 했냐, 수학 공부는 다했냐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종이는 뭐 야?”, “이 곤충은 저 종이로 접어서 더 윤기가 나고 진짜 곤충 같아 보이네.” 정도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이의 취미가 꾸준할 수 있었던 것에는 종이접기 영역을 확장해주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종이로 관심을 유도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종이접기도 어떤 종이로 접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곤충도 일반 색종이로 접었을 때보다 윤기가 나는 종이로 접으니 실제 곤충과 더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도 이런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꾸준히 종이접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4 | 새로운 동기 부여 

종이접기 협회마다 어린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종이접기 자격증이라는 것이 있다. 각 급수에 해당하는 책을 구매해 요구하는 종이접기를  붙여서 협회에 보내면 자격증이 발급되는 형식이었다. 나는 준규가 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을 통해 종이 접기에 더 재미를 붙일까 하여 권해보았다. 어린이에게 발급되는 가장 어려운 난이도가 1급 자격증이었는데, 준규에게는 이미 너무나 쉬운 종이 접기였다. 3급 책을 채우고, 2급 책을  채우며 자격증을 받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 준규는 자격증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한 번은 페이스북을 통해 준규의 종이접기 사랑이 듬뿍 담긴 사진과  사연을 적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의 오리가미 작가 후지모토 무네지에게 친구 요청을 보냈다. 후지모토 무네지는 앞에 이야기한 책 《오리 로보》의 저자이기도 하다. 얼마 뒤 답 메시지가 왔고 그 이후로 그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의 SNS를 통해 크리스마스 한정판 오리 로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이는 한정판 오리 로보를 한국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지 물었고, 그 오리로 보는 판매용이 아니라 일본에서 그의 수업을 듣는  꼬마 친구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련된 것이라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준규가 너무 아쉬워하자 그는 한국에 있는 꼬마 팬을 위해 우리  집 주소를 물었고, 준규는 그해 겨울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는 일본에서 온 작은 상자에 들어 있던 크리스마스 오리 로보를  받아 들고 너무나 행복해했다. 그날 저녁, 준규는 정성스럽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직접 만든 오리 로보를 붙여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며칠 후 그의 SNS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크리스마스 카드에 대한 인사를 전하는 포스팅이 올라오기도 했다. 


준규에게 그 경험은 무엇보다 큰 선 물이자 종이접기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준규에게 종이접기는 학습이 아닌 그저 놀이 활동의 하나였 던 것 같다. 꼭 잘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놀이 말이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종이접기는  하나의 표출 도구였던 셈이다. 마치 그림 그리기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완성하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그 과정에서 아이는 몰입을 경험하게 되었다. 


종이접기는 놀이이자 취미로 즐길 수 있지만 최소한의 ‘시동 에너지★ ’가 필요한 활동이기도 하다.  또한 《장인의 공부》(유유, 2018)의 작가 피터 콘은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이 DIY, 공예, 예술 등 직접 참여하고 만드는 작업에 매료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만들기는 몰입에 필요한 거의 모든 요소를 제공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만들기와 몰입이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 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동 에너지: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은 하나같이 처음에 어느 정도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그다음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활동을 즐기려면 그런 시동 에너지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  피곤하거나 너무 불안하거나 혹은 처음의 그런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재미는  덜하더라도 더 편하게 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족할 것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해냄, 2007)



<준규네 홈스쿨> 진서원 2019.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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