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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Feb 10. 2022

홈스쿨링 선택의 순간

영재고, 영재학교 입시 Story #2


홈스쿨링을 선택하던 당시, 그 선택이 과연 잘못된 선택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불안했고 아이의 옆에서 홈스쿨링을 잘 도울 수 있을지 나조차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아이는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이 지옥 같다고 말할 만큼 처절했고 본인 스스로 살고자 발버둥 치며 학교 밖을 원했다. 


그리고 난 부모로서...

내가 예상한 방향과 다르다고 해서 더 이상 그 선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떤 거창한 계획이 있었다거나 대단한 교육적 소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떤 인생이든, 지지하고 응원해야만 했다.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다만 어렵게 내린 결정이니만큼 그 시간을 잘 보내보자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고...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이 지옥 같았다는 아이였기에, 그것보다는 뭘 해도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자퇴를 감행하고, 단지 아이 인생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년여 동안, 아이의 교육적 대안을 선택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이는 확연히 눈에 띌 만큼 무표정해졌고,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점점 더 생기를 잃었고, 부모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더 뾰족하게 날을 세워가고 있었다.


그저 까다롭고 예민하고 순종적이지 않은 아이를 둔 내 상황만을 비관하며

'내 아이는 왜 이렇게 키우기 힘들까?'

'남들 잘 다니는 학교에서 내 아이는 왜 잘 적응하지 못할까?'

마치 인생 초반부터 꼬여버리고, 실패한 것 같다는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어떻게든 학교에 잘 적응할 방법만을 고민하고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리석게도 그저 자기 연민에만 빠져, 궁지에 몰린 아이 모습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더 이상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와야 했다.


막상 홈스쿨링을 시작했지만...

아이는 처참하게 무기력해져 있었다.


학교라는 프레임에 잘 적응하길 바라며 힘든 자신을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부모에게 화가 나 있었고 학교라는 틀 안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학교에서 받았던 부정적인 피드백에 아이이의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였다. 속도를 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내 마음속은 매일...


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 대한 불안감이 시시각각 고개를 내밀며 폭풍이 일기도 했지만 시커멓게 멍투성이인 아이에게 학교에서와 같은 시간을 매몰차게 강요할 용기 또한 없었다. 


한없이 뒤로 퇴보하는 것만 같던... 그 머무름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늦잠이 난무했고, 온종일 종이 접기에 빠져있는 아이를 보며 아이의 시간 밖에서 마음 졸이며 '잘하고 있는지...' '홈스쿨링을 이렇게 해도 되는지...' 늘 혼란스럽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쓸데없어 보이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일상들의 반복이었지만 아이를 채근할 힘도, 맞설 에너지도 없었다.


홈스쿨링의 역사는 종이 접기가 되어... 완벽한 하루하루의 일과와 계획적인 일상들을 보내는 모습을 마음속에서만 수없이 짓고 허물다 보니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이는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뭔가 해보자고 말했을 때 못 이기는 척 응하는 모습들이 하나 둘 생겼고, 잃었던 미소를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1년 가까이 회복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이를 관찰하며 학습에 대해 욕심을 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양보이자 포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초중고 자녀들과 학습에 대한 날을 세우지 않는 한 부딪힐 일은 크게 없지 않은가? ㅋㅋㅋ(초등학생의 학습은 즐겁게, 최소한 해야 한다는 생각임에도... 최소한의 학습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다양한 경험과 기회들을 슬쩍 제안해보기도 하고, 어차피 좋아하는 것에라도 푹 빠져보라는 마음에 종이접기 하고, 로봇 만드는 것들에 더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그렇게 아이는 다시 웃는 날이 늘어났고, 다시 밝아졌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평온했고, 예상보다 더 행복했고, 예측할 수 없는 이벤트들로 가득했다. 시간들을 의미 있게 채우고자 시선을 사방으로 돌렸다.


재미없는 학교 공부를 무의미하게 채우며 갈등을 만드느니,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충분히 채워보겠노라 마음먹고 최소한의 규칙만을 두었다. 그리고 그 규칙들이 무너지면 다시 아이와 이야기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공부는 나중에 동기가 생기면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욕심을 매일매일 버려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푹 빠져 볼, 몰입의 시간들을 아낌없이 허용하는 것, 최소한의 규칙을 제외하고 스스로 시간을 온전히 누리도록 이해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불안감들이 뱀의 혀처럼 빠져나와 '그렇게 최소한의 약속도 안 지키면 어떻게 할 거냐...' 하며 아이의 일상생활을 아이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책임의 무게를 아이에게 전가하며 내 불안감을 아이에게 쏟아냈던 날도 많았다.


그렇게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날은 아이에게 후회될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사과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와 잘해 보자며 파이팅을 외치길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내 욕심으로 채우고자 했던 이상적인 홈스쿨링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아이의 하루하루를 대면하며 끊임없이 접점을 찾아 이야기하고, 때론 설득하고, 서로 계획을 세우고, 실패를 되돌아보고, 다시 계획을 세워보기의 연속이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아이와 나는 그렇게 한편이 되어갔다.


때론 길을 잃기도 하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럴 때 아이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때론 내가 가는 길을 따라와 보라고 손짓해보기도 했다. [준규네 홈스쿨, 진서원] 책에서도 썼듯 6년 내내 홈스쿨링 하며 완벽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며 웃던 선배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당연한 거라고' '잘되는 게 이상한 거라고...' '어찌 완벽하겠냐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그저 애쓸 뿐이었다.


그런 시간과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씨앗들이 대부분 아이가 즐거워하던 일들, 내가 그토록 말리고 싶었던 아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던 활동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기보다는 그저 행복하게 살자며 나온 학교였지만 나는 여전히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아이가 몰입한 시간들이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고 행운처럼 아이의 '다른' 상황들은 어느새 아이의 인생에 빛을 비추고 있었다. 영재 발굴단에 '로봇영재'로 소개된 후 로봇 벤처 회사의 지원을 받을 당시, 꽤 고가의 3D 프린터를 지원받고, 로봇 부품들과 교육에 대한 지원들이 전폭적이었을 당시... 남편과 나는 꽤나 마음이 들떠있었다.


뭔가 아이 인생에 꼭 잡아야 할 기회라 생각하며 아이가 우리 예상대로 배움에 대해 능동적이길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3D프린터기 프로그램이 익숙지 않다며 영화에 나온 피겨를 뽑느라 바빴고, 정작 로봇에서 필요한 부품들은 박스를 자르고,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찾았다.


답답하고 화가 났다. 우리 기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들이... 그런데 그때도 그랬다. 

아~~~ 이 또한 우리 욕심이구나~

아이가 즐거워서 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 시간들이 우리 눈에 차지 않는 것들이라 해서 쓸데없다고 한계 짓고 있구나...


그렇게 남편과 나는 사랑방 잠자리에 누워 우리의 욕심이 또 앞서갔다 인정하며 박스를 자르고, 3D 프린터로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를 출력하고,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를 뽑는 아이를 또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랬기에 입시학원의 문턱을 과감히 넘어서겠다며 자신의 삶에 능동적인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아이의 직감과 선택을 따라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은근히 내 부담과 할 일이 줄어든 것 같아 반가운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많은 부모들이 희망하며 바라는 여정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면서 싫지는 않았다. 그만큼 아이가 현재 영재고(영재학교) 입시를 희망하고, 그 누구보다 자기 주도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데는 홈스쿨링을 했던 시간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홈스쿨링을 해야만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어떤 교육 환경이나 방법이더라도 인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과감히 선택하는 그 경험들이 입시라는 저 끝 남의 이야기만 같았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만들었던 것 같다.


끝과 끝은 다시 만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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