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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Mar 15. 2022

영재고를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

영재고, 영재학교 입시 Story #6



2017년쯤 준규 초등 4학년 나이쯤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은 홈스쿨링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메이커 페어’[참조 1]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로봇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 좋아하는 아이라 나들이도 할 겸 찾아가게 된 것이었지요.


행사 부스들을 돌며 갖가지 아이디어 작품들도 체험하고, 3D 프린터 체험도 하고, 새로운 로봇 키트들도 만져보며 즐기던 가운데,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헬맷을 쓰고 뇌파를 이용해 마인크래프트 미로 탈출을 시도하는 실험 작품이었어요. 관람 초반, 그곳을 발견하고는 눈이 커진 준규는 일등으로 체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체험을 한지 몇 초 지나지 않아 프로그램에 에러가 발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작품을 들고 나온 두 소년은 다시 프로그램을 손봐야 할 것 같다며 다른 곳을 구경하다 나중에 오라고 했습니다.


40~50분은 걸릴 것 같다고 했음에도 우리 집 11살 꼬마는 다 고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눈치 없이 바라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다른 곳에 다녀와 보자고 몇 번을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손보는 형들 옆에 앉아 있자니 눈치도 보이고 해서, 음료수도 건네고, 빈말도 건네던 중 형들이 너무 어려 보여 나이를 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5살이라니요. 헉! 그럼 중학생이냐고 했더니(역시 아줌마스러움), 중학생은 아니고 세종 과학영재학교 1학년 학생 이랍니다.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하던 중, 나오게 된 것이라며 소개를 하더군요. 예의까지 바른 이 소년들!


갑자기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걸 하고 논다고?!

그런 학교가 진짜 있다고?!


똑똑한데 호감까지 가는 형들 모습에 반해, 듣도 보도 못한 학교 이름을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해, 메모까지 했습니다.


다음날, 아이와 함께 메모해 놓았던 학교를 찾아 검색해 보았습니다. 세종시에 있는 영재고로 그 외에도 영재고로 운영되는 곳이 전국에 7군데 더 있다는 것,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주로 간다는 것, 과학고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약간 헷갈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몇 군데 커리큘럼들을 살펴보니 관심이 점점 커졌습니다. 하지만 검색을 거듭하며, 자료를 찾아볼수록 조금씩 절망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는 과학고보다 영재학교가 더 가기 힘든 곳이라는 점,

한 영재고에서 한해 보통 서울대를 20~40명 보내고 있어,

학벌 지상주의 한국에서 이과생 아이를 둔 엄마들의 워너비 학교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영재고 입학만 하면 서울대나 카이스트로 가는 프리패스, 골드패스를 따는 거라는 글들까지 심심찮게 보이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기사에서 2022년 서울대 입학 Top 20 학교를 발표[참조 2] 했는데, 8개 영재고가 그 안에 모두 들어갈 정도이니 엄마들이 영재고 입시에 목숨 걸 만도 하다 싶네요. [3위 서울과학고, 4위 경기과학고, 7위 대전과학고, 8위 한국 과학영재고, 10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대구과학고 세종 과학예술영재학교, 13위 광주과학고]


[참조 2] 2022년 서울대 입학 Top 20 고등학교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75651



갈 수 있다면, 그래도 재미있게 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지만, 입시 과열이 너무 심해서 몇몇 자료만 접해도 헉! 소리가 났습니다. 초등 저학년부터 어마어마한 선행학습을 시키고 있고, 수과학 융합 문제의 난도가 엄청나고, 기출문제들이 외부로 거의 공개되지 않아(2020년 11월 발표 이후 일부 학교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음) 입시 전문 학원을 다니지 않고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야기 등, 정보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딴 세상, 이미 저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다음날 준규에게 솔직히 말해주었습니다.

나: 준규야, 그 세종 과학영재학교 있잖아, 엄마가 그 학교에 대한 정보들을 좀 더 알아봤어. 그 형들처럼 신나는 것들도 해볼 수 있는 친구들도 많고, 나름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해. 그런데 들어가기가 엄청 힘든 학교더라고. 안 되겠더라.

준규: 왜요? 뭐가 힘든데요? 왜 안 되는데요?

엄마: 학교 생활은 그나마 네가 흥미 있어할 만한 것들이 꽤 많아 보여. 그런데 입학시험이 엄청 어려운 것 같아. 영재고(영재학교)에 가려고 초등 저학년 때부터 학원 다니고, 중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공부한다나 봐. 공부하는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다네. 기대가 가는 학교는 맞지만, 경쟁도 치열하고, 입학 준비가 너무 힘들어서 안 될 것 같아.

준규: 그럼 하면 되지, 왜 안 되는데요? 뭘 공부하면 되는데요?

엄마: 엥? 수학, 과학인 것 같은데 대학 입학시험만큼, 아니 그보다 어렵다네.

준규: 엄마가 그럼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

엄마:??? 그래 더 알아는 볼게. 에휴~


일단은 학교 홈페이지에서 입학 설명회를 찾아보니, 반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더군요. 그러다 한 입시전문 학원의 영재고 입시 설명회가 곧 있을 예정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엄마들이 카페에서 입시 정보들을 얻고, 설명회를 듣고, 컨설팅받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살짝 떨렸지만, 일단 영재고는 어떻게 공부해서 가는지 미리 드러나 보자며 혼자 조용히 신청을 하고 설명회를 기다렸습니다. 아이에게 함께 가보자고 권했더니, 자기는 쑥스럽답니다. 엄마 혼자 다녀와서 설명을 해주면 안 되냐고 하는 아들... [입학 설명회 관련 이야기는 추후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입학 설명회를 다녀와 설레는 마음 반, 막막한 마음 반이 뒤섞여 한참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연찮게 남편의 동창이 경기과고를 중2에 붙은 아들의 소식을 전하자, 우리 부부는 다시 궁금증이 동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 말고, 실제로 아이들이 어떻게 준비해서 가는지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두 번 뵌 적 있는 아이 어머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집 아이는 학원 대신 초등 저학년 때까지 어머님이 책 육아를 오랫동안 실천한 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공부 그릇을 단단히 만들어 놓느라 꽤 정성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아이가 모범생 타입에, 제법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초등 6학년 때부터 시작해 중고등학교 수학 선행학습을 하고, KMO(한국 수학올림피아드) 준비 학원과 과학 학원을 다니며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시더군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몇 년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공부량도 엄청난 데다, 시간도 빡빡해서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열의를 가지고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중간, 기말고사 관리 + 영재고 입학시험 준비까지 하자니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관두게 할까 고민할 정도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나마 이야기를 들으며 언론에서 접한 것처럼 6~7년을 학원 생활하며 유년기를 희생하지 않고도, 부족한 부분만 학원을 이용해 시험 준비 기간을 최소화해서 도전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뭐든 고민이 오래 걸리는 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준비하는 상황 자체들이 너무 무리해 보였던 탓도 있는지라,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갔습니다.


매일매일 온갖 뉴스와 스포츠를 다 챙겨보는 남편이 하루는 회사에서 다녀와 준규에게 보여줄 기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초등 2~3학년 때부터 유소년 기를 몽땅 학원에 바치는 대치동 학원 풍경이었습니다. [참조 3] 과열된 입시경쟁으로 인해 한해라도 일찍 공부시키겠다는 부모들 등쌀에 학원가를 돌며 밤 10시가 넘도록 수학 선행학습을 하고, 배달된 도시락이나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며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이었습니다.


부모로서 저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초등 2학년이 뭘 안다고, 학원을 가겠다고 했겠나 싶었습니다. 부모들의 권유로 닭장 같은 학원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생기를 잃는지조차 모르며, 유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그저 불쌍해 보였습니다. 좀 더 날카롭게 날을 세워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 나아가 학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영상들을 다 보여준 후 씁쓸해하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남편과 나: 어떤 것 같아? 복 받은 우리 아들. 네가 봐도 장난 아니지? 너처럼 매일 책 보고, 만들고, 실컷 자고, 실컷 노는 네 일상이랑 너무 다르지?

준규: 그렇긴 하네요. ㅎㅎㅎ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보니까, 은근히 더 가고 싶어 지네요.

남편과 나: 뭐라고? 왜?

준규: 아니, 그렇잖아요. 저렇게 돈도 있고, 배울 만큼 배운 부모들일 텐데, 저렇게 많은 부모들이 보내고 싶어서 안달 났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남편과 나: 엥?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다만…

준규: 저는 더 관심이 생기는데요?! 일단 알아봐 주세요. 시험공부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언제부터 하면 되는지, 딱 6개월만 더 놀고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남편과 나: 고뤠? 너는 그렇게 결론이?


우리 부부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 흠칫 놀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제) 스스로 정보를 찾거나 열의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초등 5학년이지 않겠습니까?? 그저 놀기 좋아하는^^


다만... 언제부터 공부를 시작하면 되는지, 무슨 과목을 공부하면 되는지, 혼자 하는 공부는 힘들다며 선생님을 알아봐 줄 수는 없냐고 하더군요. 못 이기는 척 알았다며, 한번 알아보겠노라 대답했습니다.


여느 어머님들 같았으면 바로 학원 레벨 테스트로 달려갔을지도 모르겠으나…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습니다.


학원에 대한 제 기준은

아이가 다리 붙잡고 학원 보내달라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보내줘야

...

그때가 바로

돈도, 시간도

가장 덜 아까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관심 가진다고 해서 너무 급한 속도로 나아가면 지레 겁먹을 수도 있어 더 강한 동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덧 5학년 나이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설렁설렁 알아보고 고민해 본 지 1년이 반이 흘러 있더군요. 남편 친구 자녀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면 6학년부터 해도 늦었다고 했는데...


그즈음 중학교 수학 개념을 집에서 공부한 지 1/3쯤 지나고 있었습니다. 수학 머리가 나쁜 녀석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가르쳐도 보고 혼자 해보게도 하면서 수학을 그렇게 즐기거나, 영재라고 할 만큼 즐기면서 공부할 정도는 아니라서, 뛰어난 수과학 천재나 영재로 입학할 희망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과열된 입시경쟁에 아이를 같이 태워, 학원가를 맴돌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중학교 수학 개념을 끝마치면 학원이든, 과외든 공부 방안을 마련해볼 테니 일단 중학교 수학 공부를 마치면 다시 이야기하라고 하며 다시 한번 제동을 걸었습니다. 중학교 수학조차 가지고 놀 정도가 아니라면 학원을 다니며 영재고 준비를 해서 어찌어찌 붙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관심의 기미를 조금 보였지만,

섣불리 올라 탈 곳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아닌 이상, 학습에 대해 스스로 동기를 갖기 전 부모의 권유로 섣불리 시작하는 학습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 타인과 감정을 소통하는 법,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기회를 갖는 게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아직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더구나 홈스쿨링을 했기에 남들보다 더 취약해질 수도 있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그즈음 하여 수학 학원을 보내기는커녕 몸으로 감정표현도 익히고, 친구들과 단체 생활을 하며, 협업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날자'라는 뮤지컬 극단을 권했고, 아이도 원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 친한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 네가 진짜 난 X이구나'라고 말하며, 도대체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해 배꼽을 잡고 웃은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과

자존감이 단단해져야

그 바탕 위에서

학습도

날개를 다는 법입니다.


그렇게...

욕심은 났지만 한 템포 마음을 늦췄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강하게 원한다는 것을 느끼고, 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부모가 너무 적극적이고, 아이보다 더 조급하게 이끌고 나가려 할수록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들은 주지만, 부모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면 오히려 살짝 한 템포 마음을 늦추는 것이 숨은 전략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반반이었습니다. 전략 반, 진심 반^^


뭐 이렇게 복잡하냐 하시겠지만, 청개구리 같은 아이들 마음이 진지할 리 없고, 어느 날 공부하겠어요 하고 진득하니 공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싶었습니다.


마치 연애하는 상대가 좋았는데, 부모가 반대하면 갑자기 그 이성이 더 좋아지고, 절대 헤어질 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찹니다. 그렇게 아이의 관심은 인정하되 우리가 뒤로 물러설수록 "자신의 공부라는 것", "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조금 늦을 수는 있겠지만, 더 강하게 자기 스스로 동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학습은 배워나가면서 소소하게 성취감이나 즐거움도 있지만, 그 수준까지 가기 전에 쉽게 지치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게임처럼 다음 레벨로 자신의 성과가 눈에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결국 학습은 스스로의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늘 생각했기에 집에서 한 과목 유일하게 하던 수학 학습에서 동기를 갖는 계기가 되기는 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수학 공부를 일단 마치고,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며 아이의 다음 요청이 있기를 학수고대하며 다시 기다림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참고사항

[참조 1] 메이커 페어 정보


https://www.innovationpark.kr/2017-%EB%A9%94%EC%9D%B4%EC%BB%A4%ED%8E%98%EC%96%B4%EC%84%9C%EC%9A%B8/


[참조 3]

당시 아이에게 보여줬던 MBC의 뉴스 기사 시리즈를 찾을 수가 없어, 그 내용을 바탕으로 편집된 영상을 찾아 공유합니다.

아무래도 과열된 내용들을 꼬집다 보니, 보다 보면 마음이 불편 해지 실수도요^^

https://youtu.be/pU5 Ft3epp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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