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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몸의 시 Aug 08. 2023

몸의 시를 짓기 위한 과정, 안무노트


들어가며,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것을 '아이디어 노트'라고 하죠. 몸을 매개로 작품을 만드는 무용, 그리고 안무가에게도 아이디어 노트라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을 바로 '안무노트'라고 부릅니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생각, 글귀, 단어, 이미지 등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하고요. 때론 책에서 본 문장을 필사하기도 하며,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동선이나, 상황을 기록해두기도합니다. 때론 무용수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낙서처럼 끄적여두기도해요.


안무가에게 안무노트는 작품의 뼈대를 구축하는 과정 속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민과 마음과 생각을 담아내는 독백의 창구가 되기도 하고요, 때론 스스로 적어낸 글과 그림을 통해 다음의 방향을 찾아내게 되기도 하는 친구와의 대화 같기도 합니다. 


2023년 첫 몸의 시를 함께 하게 되면서, 장혜림 예술감독에게 들었던 이 프로젝트의 취지가 인상깊었습니다. 온전히 본인과 작품에게, 그리고 작품을 함께 구성하는 무용수들에게, 무대에, 관객에게 집중해도 모지란 시간이지만 우리는 경쟁에 과열되어있는 사회적 분위기,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 의무감 등을 안고 무대에 오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런 양상은 중견 안무가들보다도 이제 갓 자신을 알아가고, 관객을 마주하며 세계를 구축해나갈 신진안무가들에게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자유롭게 표현해보고, 자신의 세계를 한 점 만큼만이라도 온전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 싶었다고 합니다. 


무용의 대중화, 예술의 일상화를 꿈꾼다는 저의 비장하고 거대해보이는 목표속에서도 잃지 않고 지켜내는 것이 있다면 작은 것과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우리가 보는 결과들은 이미 완성된 큰 결정체이지만 그것이 존재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점들이 연속적으로 찍히는 과정이 있었을거에요. 저는 그 첫 시작과 시작의 지속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지구를 지탱하는 것은 아주 작은 핵 하나인것 처럼 말이죠. 본질을 잃지 않고, 초심을 잊지 않는 태도로 더 나은 무용의 환경이 되길 바랐습니다. <몸의 시>가 추구하는 방향 처럼요. 


거창한 포장지로 가득 채우는 작업이 아닌, 비우고 비우며 온전히 남겨야 할 것들에 집중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과만이 아닌 과정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기록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우리가 서로 약속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작지만 과정을 공유하자. 그리고 그 공유는 먼저 자신을 위한 즐거운 일이 될것, 다음으로는 그 공유를 통해 누군가가 작은 행복을 얻어갈 수 있기를. 그렇게 약 한달 정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비움과 채움의 과정을 기록해봅니다. 


본 기록은 산책의 안무가 이고운, 허밍의 안무가 이수경 각각 기록됩니다. 날짜에 따른 이미지와 제목 그리고 글귀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봐주세요.


_ 편집자 김혜연







안무노트의 시작, 

그 첫번째 이야기.



이고운 <산책>


잠깐 나가서 바람이나 쐴까 ? 

숨 쉬지 않고 살고있는 나를 위한, 

숨 쉬는 휴식 


_ 2023년 7월 18일 화요일, 이고운 <산책> 리서치 과정중 





이수경의 <Humming >안무노트

2023. 7. 18 (화)

코사크 자장가를 듣고, 아름다운 날들도 많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마치 전쟁터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 중인 국가들이 있다.

우리의 시대와 우리는 여전히 

혼란함과 아픔을 겪고 있다.

모든 포성이 멈추고 따뜻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면 좋겠다.

소리 없는 포성과 무형의 총알이 빗발치는 

이 전쟁터에서

귀를 막고 웅크려 앉아 나지막이 불러본다.

마치 기억이 존재하기도 전, 

어느 때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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