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요리, 대학교 실험 동아리

실험하는 동아리, 별이뜨는주막 창업동아리로 선정!

by 현상이지

구름 위에 새우잠, 달걀 분자요리

달걀은 너무 흔해서 늘 냉장고 안에 자리하고

아침마다 계란후라이 하나 구워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흔하다고 해서 결코 만만한 재료는 아니라는 점이다.

달걀은 흔히 “완전식품”이라 불린다.

단백질도 풍부하고, 영양도 고르게 갖추고 있어 빠지는 게 없지만

이상하게도 달걀 요리는 언제나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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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위를 또르르 굴러다니는 노른자는 주황빛 구슬처럼 보였다.

살짝만 잘못 건드려도 금세 터져버릴 것 같아, 괜히 숨까지 조심하게 되었다.


그 모습이 꼭 사람의 마음 같았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금이 가고 깨져버리니까.


처음엔 투명하고 흐물거리던 흰자가

쉼 없이 흔들리고 부딪히는 과정을 지나

마침내 구름처럼 포근히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 찾아왔다.


네모난 토스트 위에 치즈를 얹고, 그 위에 햄을 올렸다.

그리고 머랭을 푹 얹은 뒤 노른자를 살포시 올리자

마치 흰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풍경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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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새우까지 올려 보았다.

작은 몸으로 구름 위에 누운 듯한 모습이 참 귀여워서

나는 그 요리에 이름을 붙였다. “구름 위에 새우잠.”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븐 속에서 음식들이 조금씩 색을 입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설레었다.
치즈가 서서히 녹아내리고, 머랭이 은은한 갈색빛으로 구워지는 순간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구름 위에 새우잠’을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맛은 솔직히 호불호가 갈렸다.


머랭의 부드러움 뒤로 달걀 특유의 향이 남아 아쉽다는 이도 있었고,

새우와 치즈, 햄이 어우러져 묵직하다 보니 “조금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 시도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

늘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걸어봤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달걀은 여전히 평범한 재료였지만,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수비드 조리법 (소고기 스테이크 이야기)


고기 요리는 언제나 옳다.

누가 뭐라 해도, 입에 넣는 순간 모든 설명이 끝나는 음식이다.
불 앞에서 화려하게 구워내도 좋고, 간단히 팬에 올려 구워도 맛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불길의 열기 대신, 미지근한 물의 시간을 맡기는 방식.

바로 수비드 조리법이었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셰프들이 “수비드”라는 말을 할 때마다

괜히 고급스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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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전문가들만 다룰 수 있는 특별한 비밀 같았다.

그런데 막상 알고 보니 원리는 단순했다.

진공 포장한 고기를 일정한 온도의 물에서 오래 익히는 것.
말하자면, 불과 칼 대신 ‘기다림’으로 완성하는 요리였다.


소고기를 접시에 올리고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렸다.
그 위에 올리브 오일을 흘리자, 기름이 고운 물결처럼 번지며 고기 표면을 감쌌다.


사실 소고기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다루게 된다.
괜히 함부로 굽기 아까워서, 아마도 수비드라는 방식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이왕이면 제대로, 부드럽게, 완벽하게 하고 싶었으니까.

양념한 고기를 진공포장기에 넣고 공기를 쫙 빼냈다.

투명한 비닐 안에 고기가 봉인되는 순간, 묘한 기분이 스쳤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자기 안에서만 시간을 견뎌내는 모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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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공포장기가 없어도 괜찮다.

집에 흔히 있는 지퍼백에 고기를 넣고

공기를 최대한 빼주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중요한 건 ‘공기와 차단된 채 물속에서 시간을 견딘다’는 그 과정이니까.


이렇게 준비한 고기를 물에 넣었다. 온도는 60도에서 63도. 뜨겁게 팔팔 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식은 물도 아닌, 고기가 천천히 변할 수 있는 온도였다.

그 물은 꼭 온천 같았다. 겉으로는 별일 없는 듯 보여도, 안에서는 분명히 변화가 차근차근 쌓이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눈에 띄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 앞에 서 있으면 늘 조급하고 긴장되는데, 이건 그저 기다림 그 자체였으니까.
조리라기보다 오히려 명상에 가까운 시간에 더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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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여름철에 이걸 가방에 넣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수비드 되는 거 아냐?”

차 안에 두면 저온 장시간 조리가 되는 셈 아닌가 싶었다.
물론 실제로 하면 위험하겠지만, 진공포장된 고기를 들고 다니는 상상을 하니 괜스레 피식 웃음이 났다.


잘라낸 고기, 기다림 끝에 드러난 촉촉한 속살.
입안에 넣자 고기는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불에 구운 고기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향 대신

은근하고 차분한 풍미가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흔히 퍽퍽하다고 말하는 닭 가슴살도 수비드로 사용하면 달라진다.
수분이 날아가지 않으니 오히려 스르르 풀어지는 닭살이 되는 것이다.


순간, 분명히 느껴졌다.
이건 기다림이 건네준 맛이었다.
불 앞에서의 긴장과 다급함이 아니라, 묵묵히 시간을 견딘 끝에만 얻을 수 있는 맛.


정말 사람 앞길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저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 본 작은 실험이,

결국 ‘온천수를 이용한 육류 조리 방법’이라는 특허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 순간이 분명한 전환점이었다.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장으로 남겨 두고, 앞으로 글에서 천천히 풀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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