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많이 방황하던 때 이야기
혹시 지금, 꿈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나요?
라라랜드
혼자 영화를 즐겨 보러 가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라라랜드는 내게 특별히 남아 있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 영화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꿈을 향한 고집스러운 걸음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주변에서 비웃음을 받아도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끝내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두 주인공.
영화관을 나서는 길, 그 잔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 삶 속에서도 닮은 경험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녀는 피아노를 치던 친구였고, 나는 요리를 배우던 학생이었다.
서툴고 부족했던 나를 늘 응원해 주고 믿어주던 사람.
아침이면 “일어났어?”라는 말 한마디로 하루가 시작되고,
밤에는 “잘 자”라는 인사로 하루가 마무리되던 날들.
뻔한 대화일지 몰라도, 그 평범한 일상이 내겐 가장 큰 힘이었다.
지쳐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녀는 종종 통화로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
오늘 연습한 곡이라며 피아노 반주에 맞춰 흥얼거리던 목소리.
솔직히 무슨 곡인지 모를 때도 많았지만, 중요한 건 노래가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함께였다는 사실, 그리고 나를 향한 믿음이 느껴졌다는 것.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결국 각자의 꿈을 선택하듯, 우리도 그랬다.
각자의 길을 위해 손을 놓아야만 했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서로는 꿈을 이루며 살아가지만, 마주친 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눈빛은 씁쓸한 잔상을 남긴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오래 기억되는 장면.
시간이 흐르고 만약,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면 멀리서 눈빛으로 전하겠지
“그래도 우리, 잘 버텨냈지?”
그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지난 시간들을 위로받고, 그저 웃으며 지나칠 수 있을 테니까.
‘자극적인 맛’을 찾곤 했다.
입안이 얼얼해지는 매운맛, 혀끝을 톡 쏘는 짠맛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가슴을 후끈하게 만드는 그런 맛 말이다.
그게 단순히 배고픔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속 허기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특성화고에 입학했다.
손에 칼을 쥐고, 팬을 달구고, 뭔가를 완성해내는
그 과정이 마치 내 인생을 조금은 바꿔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속이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많았다.
밥은 분명히 먹었는데, 허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건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 굶주렸던 건 아닐까?
솔직히 말하자면, 잘하는 게 없었다.
요리를 해도 늘 서툴렀고
완성된 접시 위에는 내 부족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서 주로 뒷정리를 맡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공부도 못하니까 저런 학교에 가지.”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녀’를 만났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웃어주던 친구였다.
별 볼 일 없는 농담에도
불안과 주저함이 묻어 있는 내 말투에도
늘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줬다.
“괜찮아!”
그 말들이 방향을 알려주는 듯했다. ‘혹시 마법사가 아닐까?’
마법 같은 순간들
남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가능성을 봐줬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조롱을 던졌지만, 그녀는 믿음을 던져줬다.
말 한마디가 마법처럼 내 마음속 어둠을 조금씩 걷어냈다.
암울하고, 자존감이 바닥이던 과거 속에서 나는 늘 밤하늘만 올려다봤다.
그런데 그녀는 그 하늘 속에서 별을 보게 해줬다.
별빛은 멀리 있지만, 분명히 어두운 하늘을 뚫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였다.
내 허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밥으로 채워지지 않던 허기, 자극적인 맛으로도 달래지지 않던 허기가,
그녀의 믿음과 웃음으로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허기는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기를, 누군가 내 존재를 인정해주기를,
누군가 “괜찮아,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허기였다.
그녀는 마법처럼 그걸 알아채고
나를 비추는 별빛이 되어줬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채워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허기를 채워주는 건 음식만이 아니더라.
사람이, 믿음이, 말 한마디가, 웃음 하나가, 누군가의 존재가 허기를 채워주기도 한다는 걸.
수많은 후보 끝에 남은 건 ‘별이 뜨는 주막’이었다.
주막은 길을 걷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건 그런 곳이었다.
꿈을 좇다 지친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르고,
다시 별빛을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는 자리.
그곳에서라면 누구든, 다시 꿈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라라랜드의 부제처럼, 여기는 “꿈꾸는 자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내 삶의 주막에도 별은 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믿는다.
꿈에 눈이 멀어라, 시시한 현실 따위 보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