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밀일기장, 브런치
남자친구가 우연히 내 브런치 계정을 알게 된 것, 그것은 나에게 비극 같은 일이었다. 내가 쓴 글 몇 개를 텍스트로 공유했더니, 그가 호기심에 내 계정을 검색해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관심의 표현이라며, 마치 깜짝 선물이라도 되듯 내 계정을 ‘구독’해버렸다. 나는 남자친구가 구독자가 되었다는 알림을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패닉에 빠졌다.
아직은 잘 보이고 싶은데, 청소년 우울증을 겪던 여드름쟁이 소녀였던 10대와, 청춘 대신 투병으로 채워졌던 20대의 못난 내 모습이 담긴 글들을 그가 읽는다는 사실이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브런치는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공간이었고, 익명의 힘을 빌어서만 솔직해질 수 있었던 나만의 ‘비밀 일기장’ 같은 곳이었다.
어떠한 가면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남자친구가 알게 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혼란과 슬픔 속에서 두어 시간 내내 울었다. 남자친구에게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브런치에 어떤 글이 있는지, 내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영문을 몰랐던 남자친구도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비밀”이라고 한 공간인데 굳이 찾아 들어와 구독자가 되다니. 내 영역을 침범한 것 같았고, 그가 ‘침입자’처럼 느껴졌다. 내가 분명히 경계선을 그어둔 그곳을 넘어와버린 것이다.
남자친구는 곧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쉽사리 마음을 가라앉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왜 내 못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이렇게 싫었을까. 혹시 남자친구가 내 상처를 알게 되면, 실망하고 언젠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오래 묵은 두려움이 마음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안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다른 이에게 선뜻 보여줄 수 없는, 익명에 기대어야만 용기를 낼 수 있는 그런 큰 상처가.
며칠이 지나 남자친구와 대화하고 오해를 풀었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는 그에게 말했다.
이 모습도 나야.
상처를 감추는 게 익숙한 나였기에 누군가가 그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사랑은 때때로 보여주기 싫은 모습까지 비치는 거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