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사랑은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는다
어머니에게 가는 길은, 하나의 계절을 온전히 통과하는 일과 같았다. 겨울의 마른 냄새와 봄이 오려는 축축한 흙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아직 채도가 낮았고, 하늘은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꼭 우리의 마음 같은 잿빛이었다. 그 애매한 빛 아래에서 세상의 모든 경계는 희미해 보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 슬픔과 평온의 경계, 그리고 기억과 망각의 경계까지도.
우리는 주차장에서 내려, 길 안내 표지판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 아버지, 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제주에서 올라온 여동생과 매제, 두 조카까지. 열한 명의 발걸음이 마른 흙 위에서 ‘서걱’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외에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뿐이었다. 아버지는 가장 앞에서, 평소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길을 이끌었다. 그 등은 이전보다 조금 작아 보였지만, 무너지지 않으려는 단단한 의지가 걸음마다 묻어났다. 여동생은 얇은 패딩 주머니 안쪽으로 손을 깊이 찔러 넣고 있었다. 제주의 따뜻한 기후에 익숙해진 동생에게, 북쪽의 늦겨울 공기는 유난히 시리게 느껴질 터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침묵을 감지했는지, 재잘거림을 멈추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걸음을 맞췄다.
이 길은 단순한 숲길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의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통과 의례의 길이었고,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묵묵히 질문하는 순례의 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장례식장의 소란과 분주함이 먼지처럼 털려나가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숲은 인간의 소란스러운 슬픔을 정화하는 힘을 가졌다. 나무들은 그저 제자리에서 수많은 겨울을 견뎌냈을 뿐인데, 그 존재만으로도 거대한 위로가 되었다.
안내받은 자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숨부터 골랐다. 그곳에는 인위적인 봉분이나 비석 대신, 살아있는 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에 놓인 작은 사진 등 표식만이 있었다. 어머니의 이름 석 자. 작지만 세상 어떤 글씨보다 또렷하고 무겁게 새겨진 그 이름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말을 잃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한평생이 응축된 기호였고, 이제는 우리가 부르고 찾아와야 할 유일한 주소였다.
나는 나무의 거친 껍질에 가만히 등을 기대었다. 두꺼운 코트 너머로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그것은 동정이나 연민의 온도가 아니었다. 비바람을 맞고, 볕을 받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은 생명의 당연한 온도.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이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세상의 질서처럼 느껴졌다. 울음도, 인사도 아닌, 그저 존재하는 나무의 방식.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수많은 가지가 아주 작게 떨렸다. 그 떨림은 울음 같기도 했고, 멀리서 온 우리를 향한 수줍은 인사 같기도 했다.
우리는 향을 피우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인공적인 향보다 흙냄새와 풀냄새를 더 좋아하셨다. 우리는 그 뜻을 따라, 꽃과 맑은 물, 그리고 각자의 마음으로만 예를 갖추기로 했다. 아버지는 가져온 국화 한 다발을 표식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두 손을 모았다. 주름진 아버지의 손등 위로, 햇살 한 줌이 잠시 머물다 갔다. 여동생은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 낯선 의식의 의미를 온몸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엄마, 우리 왔어요.”
여동생이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 그 목소리는 울음기 없이 맑았지만,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카들이 뒤따라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큰딸은 가방에서 소중하게 접어온 하얀 종이학을 꺼내 표식 옆에 놓았다.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그 작은 몸짓이, 그 어떤 웅장한 제사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작은딸은 가방에 매달아 두었던 노란 리본을 풀어 나뭇가지 낮은 곳에 묶으려다가, 혹시라도 살아있는 가지에 상처가 날까 싶어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아이의 그 마음이 기특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 땅에 두자. 나무 아프지 않게.” 우리는 리본을 돌돌 말아 나무 밑동 옆에 살짝 눕혔다. 막내아들은 자기가 맡은 임무가 가장 중요하다는 듯, 작은 물병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내게 내밀었다. “아빠, 물.”
나는 물병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어 물을 반쯤 따라 흙 위에 조용히 부었다. 마른 흙은 마치 목마른 생명처럼, 천천히, 그러나 남김없이 물을 빨아들였다. 흙이 물을 머금는 그 느리고 당연한 시간 동안, 우리 열한 명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소리 없는 일들이 세상의 대부분을 이루고, 가장 중요한 일들은 언제나 침묵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충분하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가져온 꽃도, 물도, 아이들의 작은 선물도, 그리고 이곳에 모인 우리의 마음도—지금으로는 이것으로 충분히 전해졌다는 뜻. 우리는 이제 슬픔을 과시하거나 형식을 따지는 대신, 마음을 정돈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때, 나무 아래 서 있는 내 마음속에서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무 아래의 약속’. 그것은 갑작스러운 영감이 아니었다. 장례식 이후, 텅 빈 집과 남겨진 아버지를 보며,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가족의 미래를 고민하며, 내 안에서 오랫동안 숙성되어 온 생각의 결정체였다.
슬픔은 그저 느끼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겨낼 수 없다. 거대한 감정의 파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우리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 결국 지쳐 가라앉고 말 것이다. 슬픔은 행동으로, 리듬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약속으로 바뀌어야만 비로소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약속은 미래를 향한 이정표이자, 흩어지려는 우리를 단단히 묶어줄 가장 튼튼한 밧줄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가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다섯 개의 약속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째, 우리는 이곳에 자주 올 것을 약속했다. 기억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되새기고 가꾸지 않으면, 시간의 풍화 작용 속에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리듬’이 필요했다. 의정부에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나는 매월 한번 토요일 오전에 이곳을 찾을 것이다. 멀리 제주에 사는 동생은 분기마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일과 명절에는 반드시 올라올 것이다.
오지 못하는 날에는 같은 시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로에게 안부 사진 한 장을 보내기로 했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우리는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기억에 리듬을 부여하고, 그리움을 일상의 일부로 만들 것이다.
둘째,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아이들의 키가 한 뼘 자란 이야기, 학교에서 새로 배운 노래 이야기, 아버지가 입맛이 없으시다던 어느 날의 저녁 같은 사소한 일상들을, 마치 당신이 살아계실 때처럼 이곳에 와서 들려주기로 했다. 동시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우리 삶 속으로 계속해서 데려올 것이다. 국이 끓기 직전에 불을 줄이던 당신의 완벽한 타이밍, 일요일 아침마다 화분에 남겨두던 ‘물’이라는 메모, 김을 펼칠 때 모서리부터 잡던 그 작은 습관까지. 사랑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디테일 속에 머문다. 우리는 그 구체성을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어, 아이들이 한 번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할머니를 기억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슬픔의 무게를 공평하게 나누어 짊어질 것을 약속했다.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일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사는 나의 몫이 되겠지만, 그것이 나 혼자만의 짐이 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생은 제주에서 원격으로, 혹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함께하며 그 짐을 나눌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되, 마음의 거리를 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내가 힘낼게, 내일은 네가 힘을 내줘.’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어깨를 번갈아 받쳐주는, 그런 단단한 연대를 지켜나갈 것이다. 슬픔이 어느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몰려 그를 무너뜨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서로의 감정적 안전망이 되어줄 것이다.
넷째, 우리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의 방식을 배울 것을 약속했다. 어머니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은 행동 이전에 깊은 침묵이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방식을 모두 배우겠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에는 오래 곁에 앉아 있는 손으로, ‘괜찮다’는 말 뒤에 숨은 떨림을 알아채는 귀로, 그리고 때로는 거실 스탠드를 먼저 켜두는 작은 배려로. 사랑이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실천임을 잊지 않겠다.
다섯째, 우리는 이 나무처럼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 제자리에 서서 묵묵히 비바람을 견디는 방식을, 뿌리가 보이지 않아도 서로 깊이 연결되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때로는 잎을 피우고 때로는 모든 것을 비워내는 지혜를 배우겠다. 느린 리듬으로,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속 정리가 끝났을 때, 나는 비로소 입을 열 준비가 되었다. 나는 가족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엄마, 그리고 모두에게, 약속할게요.” 그리고 앞서 정리했던 다짐들을, 감정을 덜어내고 가장 압축된 언어로 짧게 요약해 소리 내어 말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는 대답 대신, 아주 깊고 무겁게 고개를 단 한 번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는 아들의 다짐에 대한 동의와 신뢰, 그리고 말없는 격려가 모두 담겨 있었다. 여동생은 젖은 눈으로 나를 보며 “응” 하고 작게 대답했다. 그 작은 소리가 숲의 정적 속에서 그 어떤 큰 소리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아이들은 그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했지만, 어른들의 진지한 분위기를 느끼고 우리를 따라 진지한 표정으로 외쳤다. “약속!” 그 작고 맑은 목소리들이 숲에 흩어졌다가, 다시 하나의 메아리가 되어 우리 모두를 감쌌다.
우리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슬픔은 시간을 길게 끄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동작 하나로 증명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나무 주변에 떨어진 잔가지를 주워 한쪽으로 모았다. 여동생은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가져온 쓰레기가 없는지 주위를 살폈다. 나는 남은 물을 마저 부었다. 그 작고 소박한 행동들이, 우리가 소리 내어 말한 그 어떤 약속보다 더 진실하고 단단한 약속이었다. 작은딸이 내게 말했다. “아빠, 흙이 목마른가 봐. 물을 다 마셨어.” 나는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아. 오늘은 우리가 엄마의 물이야.”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우리의 발걸음은 올 때와 사뭇 달랐다. 침묵은 여전했지만, 그 침묵의 색깔이 달라져 있었다. 올라올 때의 침묵이 무겁고 막막한 회색이었다면, 내려갈 때의 침묵은 모든 것이 정리된 뒤의 차분하고 투명한 색이었다.
막내아들이 내 손을 앞으로 끌며 말했다. “아빠, 다음엔 내가 물 들게. 나 이제 힘 쎄.” 큰딸이 질 수 없다는 듯 덧붙였다. “나는 종이학 더 많이 접어 올게요.” 작은딸이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나는 노란 리본, 더 예쁜 걸로.” 여동생이 그 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시던 오미자차 가져와야겠다.” 아이들과 동생은 벌써 다음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없이 걸었지만, 그 걸음은 올 때보다 분명 반 박자쯤 가벼워져 있었다. 약속은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주었다.
차에 오르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잿빛 구름 사이로, 작은 점 하나가 유유히 원을 그리고 있었다. 새였다. 장례식 날 우리를 맴돌던 그 새였을까. 아니, 어쩌면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보지 못했던 수많은 새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제 그 새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오늘은 우리가 슬픔 대신 약속을 배웠어요.’
엔진을 걸 때, 내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속은 거창하지 않았다. 물을 붓고, 쓰레기를 줍고, 리본을 풀어 땅에 눕히는 작은 동작들. 그런 사소한 동작들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 그 하루들이 모이면 계절이 되고, 계절들이 모이면 우리가 된다. 나무 아래의 약속은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감당 못 할 만큼 무겁지도 않다. 우리가 함께 나누어 들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희망의 무게다.
도로를 빠져나오며,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오늘 집에 갈 때 장도 봐서 가요.’ 곧 점처럼 짧은 답이 왔다. ‘응.’ 나는 그 한 마디에 담긴 온기를 느끼며 웃었다. 여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화면에 입력했던 긴 안부 인사를 모두 지우고, 마지막에 한 단어만 남겼다.
‘약속.’
그걸로 충분했다. 바람이 차창을 한 번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우리는 이미, 같은 약속의 온기 안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