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첫 깨달음, 사랑은 늘 곁에 있었다〉
# 3장 〈첫 깨달음, 사랑은 늘 곁에 있었다〉
어떤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먼저 새겨진다. 의식의 수면 아래, 근육의 결이나 손목의 각도 같은 곳에 아주 오래된 문신처럼 남는다. 우리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버릇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건 사랑이 남기고 간 가장 선명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이의 부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 역시, 이성적인 뇌가 아니라 무방비 상태의 몸이다.
어머니가 떠나고 한 달쯤 지났을까. 텅 빈 거실의 적막이 유난히 낯설던 저녁이었다. 먹통이 된 TV 리모컨을 들고 한참을 쩔쩔맸다. 건전지를 갈아 끼워도, 있는 힘껏 버튼을 눌러봐도 화면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는 신문 너머로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셨다. “그거 원래 오락가락했어.” 그 순간, 의식의 저편에서 희미한 동작 하나가 전류처럼 흘렀다. 거실 소파가 거의 잠자리처럼 익숙했던 어머니. 몸이 불편해지신 후, 세상의 대부분을 그 자리에서 마주했던 어머니는 유독 리모컨과 씨름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터득한 비법이라며, 리모컨 뒷부분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가볍게, 그러나 정확한 힘으로 두드리곤 하셨다.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낸 사람의 비밀스러운 주문에 가까웠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 주문을 흉내 냈다. 탁, 탁. 거짓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TV 화면에 익숙한 로고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켜진 화면을 보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아직 온기가 남은 듯한 내 손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어머니의 부재는 ‘이제 세상에 없다’는 명징한 사실보다, 온종일 소파에 앉아 세상을 향한 창이었을 TV를 켜내던 그 사소한 몸짓 하나로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
집 안의 세계를 묵묵히 지탱해 온 것은 거대한 사랑의 언어가 아니었다. 이름조차 없던 수백, 수천의 마음씀씀이였다. 어머니가 사라진 집은, 그 소리 없는 염려들이 빠져나간 만큼의 공백으로 가득 찼다. 아침을 깨우던 압력밥솥의 ‘칙’ 하는 소리는 여전했지만, “밥 다 됐으니 어서들 먹어라” 하고 독려하던 목소리가 사라진 식탁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거동이 힘들었지만 가족의 ‘관제탑’이었다. 집안의 모든 물건 위치와 가족들의 일정을 꿰고 계셨다. 몸은 소파 또는 의자에 묶여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집안 구석구석을, 나아가 집 밖의 우리들 삶까지도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자, 우리는 방향을 잃은 비행기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길을 잃었다. 아주 사소한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지는 동안, 우리는 그녀가 단순한 ‘엄마’가 아니라, 이 집의 모든 것을 원격으로 조종하던 보이지 않는 심장이었음을 깨달았다. “엄마, 그거 어디 있어?” 이 질문이 갈 곳을 잃고 허공에 흩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맛의 고고학>
상실의 첫 단계가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면, 그다음은 ‘있었음’을 발굴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나는 일상 속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는 고고학자가 되기로 했다. 거창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닿았던 모든 것, 그녀의 시간이 스며든 모든 것이 나의 발굴 대상이었다.
그 첫 번째 유물은 마트의 간장 코너에서 발견했다. 어머니가 아프기 전, 기력이 좋으셨을 적에 어머니는 유독 한 가지 상표의 간장만을 고집하셨다. 짠맛 뒤에 단맛이 살짝 돌아야 음식의 맛이 깊어진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거동이 힘들어지신 후에는, 장을 보러 가는 내게 “얘, 다른 건 몰라도 간장은 꼭 그걸로 사 와야 한다”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시곤 했다. 그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스치는 듯했다. 그 간장을 집어 드는 내 손은, 단지 물건을 고르는 행위를 넘어 어머니의 마지막 미각을 지켜주려 했던 나의 시간과, 그 맛을 통해 세상의 기억을 붙들고 있던 어머니의 시간을 잇는 조용한 의식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어머니의 레시피를 기억해 내 멸치볶음을 만들었다. 아내가 한입 먹어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이 맛, 어머님이 해주시던 맛이랑 거의 똑같아.” 나는 간장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고, 내 몸이 그 맛을 잊지 않았다고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본격적인 발굴은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작은 수첩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요리책이라기보다는, 당신이 자리에 앉아 내게, 혹은 여동생에게 지시했던 내용들이 빼곡히 적힌 ‘구술 레시피’의 기록에 가까웠다. ‘된장찌개: 멸치 육수 진하게 (내가 말할 때까지 끓여라), 두부는 마지막에. 너무 오래 끓이면 텁텁하다고 몇 번을 말하니.’, ‘총각김치: 풀 쑤기 귀찮아도 꼭 해야 함. 안 그러면 군내 난다. (이건 아빠 시켜라).’ 어머니의 단호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지침서였다.
나는 주말마다 그 수첩을 경전처럼 펼쳐 들고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처음에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같은 재료를 넣고 같은 순서로 끓여도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수첩을 몇 번이고 다시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자, 이제 넣어라” 하고 외치던 그 절묘한 타이밍, 맛을 보시고는 “조금 더” 혹은 “거기까지”라고 말씀하시던 그 미묘한 감각 같은 것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단순한 요리를 넘어, 앉은자리에서도 기어이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려 했던 그녀의 고단한 사랑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마침내 희미하게나마 그 시절의 맛과 비슷한 된장찌개를 끓여냈을 때, 나는 숟가락을 든 채 한참을 울었다. 이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녀의 사랑을 내 손으로 되살려낸, 눈물겨운 성공이었다.
<습관의 상속>
어머니의 흔적은 부엌에만 있지 않았다. 내 몸 곳곳에, 나의 사소한 습관 속에 무형의 유산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인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두 딸아이와 막내아들을 대하는 내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현관을 나설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창가로 다가가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젊은 시절, 어머니가 내게 해주시던 행동이었다. 몸이 불편해지신 후에는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창가 대신 마음으로 우리를 배웅하셨을 것이다. 그 애틋한 마음이 어느새 내게로 옮겨와 있었다.
말투도 그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할 때,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즐겨 쓰시던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고, 저런!”, “그렇게 하면 못써.”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그 말들이 내 귀에 되돌아와 박힐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곤 했다.
이 ‘습관의 상속’은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결혼한 여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각자가 어머니의 다른 조각들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동생은 통화를 끊을 때 “그래, 또 보자”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버릇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나는 TV를 보며 무릎을 탁탁 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발견하며 안도하고, 또 애틋해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의 일부를 공평하게 나누어주고 떠난 것이었다. 우리는 어머니라는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씩을 품고 살아가는 셈이었다
.
이 깨달음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어머니는 죽음으로 소멸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몸과 습관 속으로 흩어져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일부러 더 할머니의 말투를 흉내 내며 농담을 건넨다. “우리 큰 공주, 작은 공주, 그리고 막내 왕자님! 밥은 먹었어?”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배를 잡고 웃는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머니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사랑은 이렇듯 세대를 건너 전염된다. 가장 다정하고, 가장 이로운 유전병처럼.
<새로운 언어>
시간이 흘러 몇 번째인지 또다시 어머니 찾았다.. 처음 어머니를 찾았을 때의 막막함과 비통함은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곳은 더 이상 슬픔과 이별의 장소만이 아니었다. 조용한 대화와 안부를 전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녀의 이름 앞에서 울기만 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 산 아버지의 옷 이야기, 큰딸의 학교생활과 작은딸의 그림 솜씨, 제법 의젓해진 막내아들의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두런두런 늘어놓았다. 마치, “엄마, 우리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보고하는 것 같았다.
가족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머니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후, 우리는 한동안 흩어진 모래알처럼 겉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여동생네와 번갈아 아버지 집에서 저녁을 먹는 규칙이 생겼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 어떤 음식과 대화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어머니의 수첩을 보며 서툰 솜씨로 잡채를 만들었고, 나는 어설프게나마 된장찌개를 끓였다. 맛은 제각각이었고, 어머니의 손맛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도 맛을 타박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유대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남긴 ‘함께 먹는 식사’라는 유산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어가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어느 주말 저녁,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오늘 된장찌개… 네 엄마가 끓여준 거랑 맛이 비슷하다.” 칭찬에 인색하시던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몰래 눈물을 훔쳤다.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과 함께, 이제는 내가 그 맛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밀려왔다. 사랑은 책임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떠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든다. 리모컨을 두드리는 손짓에, 무심코 집어 드는 간장 한 병에, 아이들을 향한 나의 걱정 어린 시선 속에. 그 조각들을 발견하고 맞춰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전체 모습을 어렴풋이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그 전체 그림을 다 알지 못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조각을 발견하며 놀랄 뿐이다. 아, 여기에도 당신이 있었구나.
그렇게 속삭이며, 나는 당신이 내 몸에 새기고 간 지도를 따라 오늘을 살아낸다. 그 지도는 낡거나 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시간이 덧입혀지면서 더욱 선명하고 풍요로워진다. 언젠가 나의 두 딸과 아들도, 아빠의 사소한 습관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할머니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이야기가 되어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