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엄마는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갔다(4)

4장. <그 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에서>

by 슬기로운 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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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png 조용한 장례식장의 밤

<슬픔의 물질성>


슬픔은 가장 먼저 공간의 공기를 바꾼다. 그것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밀도와 무게, 온도를 가진 물질에 가깝다. 환했던 낮의 소음과 분주함이 모두 빠져나간 장례식장의 밤, 지하의 공기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를 서늘하게 만드는 국화의 날 선 향, 모든 인간적인 냄새를 지워버리려는 듯 단호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켜켜이 쌓인 조문객들의 피로가 밴 미지근한 공기가 한데 엉겨 하나의 무거운 막처럼 공간을 지배했다.


천장의 길쭉한 형광등은 인간의 감정에는 무심하다는 듯, 일정한 저음으로 윙, 하고 울었다. 그 소리는 고요 속에서 더욱 증폭되어, 마치 시간이 흐르는 것을 멈추고 이 공간을 영원 속에 박제하려는 시도처럼 들렸다. 창문이 없는 지하 공간에서 시간은 오직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로만 존재를 증명했다. 그러나 그 초침 소리마저도 공기의 점성에 붙들려 한 칸을 나아가는 일이 유난히 힘겨워 보였다.


나는 그 시간의 흐름마저 잠식하는 공기 한가운데에 섬처럼 앉아 있었다. 모두를 떠나보낸 뒤였다. 아직 잠이 덜 깬 막내 아들의 칭얼거림, 내 손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던 아내의 불안한 온기,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눈으로 안부를 묻던 여동생 내외의 시선, 그리고 끝까지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신발을 신는 동작이 유난히 더뎌지던 아버지의 뒷모습까지. 육중한 방화문이 유압 장치의 힘으로 천천히, 소리를 삼키며 닫히는 순간, 나는 비로소 오롯이 혼자가 되었음을, 아니, 사진 속 당신과 단둘이 남았음을 알았다.


가슴에 달린 ‘상주’라는 이름표가 어색했다. 그것은 나에게 슬픔을 관리하고, 의례를 집전하며, 감정을 통제하라는 역할을 명령했다. 하지만 그 밤에 나는 역할이 아닌 아들이고 싶었다.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아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눈물은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말라붙어 있었다. 슬픔이 너무 거대하면, 오히려 감각이 마비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울음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텅 빈 진공의 시간이었다.


flower.png 하얀 국화들 사이로 떨어진 꽃잎 들

<슬픔에 맞서는 작은 의식들>


무언가 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대한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하얀 국화들 사이로, 누군가의 옷깃에 스쳐 떨어졌을 꽃잎 몇 장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주워 모았다. 손끝에 닿는 꽃잎의 차갑고 연약한 감촉이, 오히려 나를 현실에 붙들어 매는 닻처럼 느껴졌다.

과일 접시를 정돈했다. 배의 상처 난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살짝 돌려놓고, 사과의 가장 붉은 면이 사진 속 어머니를 향하도록 위치를 바로잡았다. 어머니의 물컵에 미지근한 물을 다시 채우고, 혹시라도 묻었을지 모를 먼지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사진의 유리 테두리도 정성껏 닦았다. 그 위에 겹쳐 보이는 내 일그러진 얼굴이 싫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용한 행위였다. 그러나 나는 그 무용한 행위들을 통해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방을 정리하던 아주 오래된 습관의 연장이었다. 몸이 불편해지신 후, 어머니는 당신의 작은 방이 언제나 정갈하게 유지되기를 바라셨다. 나는 주말마다 찾아가 창틀의 먼지를 닦고, 이불을 정돈하고, 약 달력을 채워 넣었다. 그 사소하고 반복적인 행위들이 어머니의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습관을 빌려와 나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슬픔이라는 거대한 무질서에 맞서는, 인간의 가장 작고 절박한 의식. 질서는 마음의 모서리를 아주 조금 둥글게 깎아내어, 내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방명록을 펼쳤다. 낮 동안의 소란이 잉크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지인, 내 친구들, 여동생의 동료들. 낯익거나 낯선 이름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이름들 사이사이에 남겨진 짧은 글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웃음이 참 고우셨지요.’ 나는 그 단어들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하나의 결로 모이고 있었다. 그 기억들이 모여, 사진 속 멈춰버린 당신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 같았다.


alone.png 장례식장에 나 홀로

<허공에 흩어진 언어>


“엄마.”

수많은 말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지만, 터져 나온 것은 결국 가장 오래된 그 한 단어였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 그리고 세상의 끝에서 가장 간절히 찾게 되는 말. 그 한마디에 낮의 모든 풍경이 뒤섞여 밀려왔다.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 아버지의 깊은 침묵, 아이들의 낯선 표정, 그리고 지금의 절대적인 고요.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갇혀 있던 내 숨을 비로소 터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 당신의 이름을 한 번 더 가만히 얹어보았다.


“다들 집에 갔어요. 오늘 밤은 제가 있을게요.”

사진 속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 우리 아들. 고생 많다.’ 그것은 기억이 만들어낸 환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환청이 절실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위로에 기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밤이었다.

어쩌면 사랑의 가장 오래된 형식은 머무름인지도 모른다. 그저 곁에 앉아, 그의 빈 숨을 대신 들이마셔 주는 일.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모두 사라진 그 밤, 나에게 남은 유일한 과제는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사진 속 당신과 나의 얼굴이 유리에 겹쳐졌다. 그 짧은 겹침의 순간이, 나에게 다음 한 시간을 버틸 힘을 주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정적을 깨는 진동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내였다. ‘아이들 재웠어. 당신은?’ 나는 차가워진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답장을 썼다. ‘여기. 엄마랑.’ 단 두 단어를 쓰는 데 온몸의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점처럼 짧은 답장이 왔다. ‘응.’

슬픔의 한복판에서는 언어가 길을 잃는다. 길고 유창한 문장은 감정의 실체 앞에서 무력해진다. 대신 이토록 짧고 단단한 말들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점멸등이 되어준다. 어둠 속에서 각자의 슬픔을 감당하고 있는 가족들이, 그 짧은 신호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여동생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주무셔? 나는 괜찮으니 쉬어.’ 곧 답이 왔다. ‘고마워. 오빠.’ 우리는 그 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언어로 서로를 붙들고 있었다.


tears.png 가장 순수한 언어, 눈물

<가장 순수한 언어, 눈물>


한밤의 정점을 지날 무렵이었다. 새벽이 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시간. 버티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예고 없이, 맥락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감정의 폭발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수문이 마침내 열리는 것에 가까웠다.

어떤 특정한 기억이 떠오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몸이, 이성이 통제하던 모든 방어기제를 해제하고 슬픔의 본질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심한 듯했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어깨가 잘게 떨려왔고, 뜨거운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눈물은 손등을 적시고, 검은 바지 위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상한 평온을 느꼈다. 울 수 있다는 것은, 내 안에 아직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사랑한다는 말은 닳고 닳아 그 의미가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눈물 앞에서만큼은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언어가 된다. 나는 그 밤,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이상한 평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당신을 제대로 애도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나자, 텅 비어버린 가슴 안으로 차가운 밤공기가 들어와 상처를 소독해주는 듯했다.


coldalone.png 차가운 새벽의 장례식장에서

<새벽에 새기는 약속>

새벽은 더디게 왔다. 그러나 분명히 오고 있었다. 지하의 공기는 여전했지만,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종류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밤의 소리가 고요와 정적을 확인하는 소리였다면, 새벽의 소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낮 동안 조문객들의 이름과 조의금을 기록했던 수첩이었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엄마에게’라고 썼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밤새 응어리졌던 미안함과 다짐들을 하나씩 새겨 넣었다. 그것은 울음을 담아내는 그릇과도 같았다. 미안함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수많은 주말들,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전화들. 그 모든 것을 나열하는 대신,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아버지와 정기적으로 꼭 식사하기.’

‘어머니 계신 곳,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뵙기.’

‘여동생 가족과 더 자주 만나기.’

‘나의 아이들에게 할머니 이야기 많이 들려주기.’

약속을 글로 옮기는 행위는 추상적인 슬픔을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바꾸는 첫걸음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계약이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빈소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어쩌면 이 밤은 당신을 지킨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온전히 지킴 받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가장 깊은 슬픔 속에서, 나는 오히려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단단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곁을 지키는 일이 때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는 것을, 나는 그 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에서 배웠다. 그 고요한 배움으로, 나는 나의 다음 아침을, 그리고 당신 없이 살아가야 할 나의 모든 날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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