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장례식의 소란 속에서도, 모든 것이 끝나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리고 남겨진 모든 시간 속에서도. 눈물은 가장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애도의 언어일진대, 아버지는 그 언어를 끝내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는 온몸으로 침묵하기 시작했다. 그 침묵은 모든 소리가 사라진 텅 빈 공백이나 부재의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의미와 기억,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어 차마 소리 내지 못하는, 하나의 단단하고 깊은 세계였다. 아버지는 침묵으로 자신만의 집을 지었고, 나는 그 집에 들어가 그의 언어를 배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언어는 귀가 아닌 눈으로, 때로는 온몸의 감각으로 들어야 한다. 어머니가 떠난 뒤, 아버지의 집은 가장 먼저 소리의 성질이 바뀌었다. 그전까지 집 안을 채우던 소리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존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들이었다. 몸이 불편하셨어도 거실에 앉아 나지막이 나를 부르시던 목소리, 휠체어 바퀴가 닳은 문턱을 지날 때 내던 ‘드르륵’하는 익숙한 소음, 그녀가 즐겨보던 연속극의 애달픈 배경음악, 약을 삼키신 뒤 물컵을 내려놓는 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들은 집이라는 공간에 생명과 온기를 불어넣는 혈액과도 같았다.
그런 인간적인 소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집은 이전과 전혀 다른 소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들이 아닌, 사물들이 내는 고유의 무기질적인 소리였다. 밤이 되면 오래된 냉장고는 낮은 콧김 같은 진동을 이전보다 더 멀리까지 보냈고, 그 소리는 마치 집이 홀로 외로워 내는 신음처럼 들렸다. 전기포트는 세상의 종말이라도 알리는 듯 유난히 날카롭게 울었고,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는 텅 빈 방들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 기계적인 소리들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더욱 낮췄다. 그의 존재감은 소리가 아닌, 소리의 부재로써 증명되었다.
텔레비전은 거의 항상 켜져 있었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무성영화처럼 화면만 번쩍였고, 아버지는 소리 없이 흐르는 자막을 읽는다기보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자신만의 침묵을 지키려는 고독한 수행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키우려 리모컨에 손을 뻗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됐다”라는 나지막한 한마디로 나를 제지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소란에 귀 기울이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다른 모든 소리는 의미 없는 소음으로 전락해버렸을지도.
아버지의 언어는 극도로 축소되고 응축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보낸 ‘천천히 오세요’라는 걱정이 담긴 긴 문자에, 아버지는 ‘응’이라는 점 하나의 답장을 보냈다. 그 한 글자가 어둠 속에서 길게 붙든 손처럼 느껴졌던 그날 이후, 아버지의 언어는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도착’, ‘먹었다’, ‘괜찮다’. 세상을 향한 모든 문장이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의 복잡한 구조를 잃고, 마침표에 가까운 최소한의 단어들로 돌아왔다.
말이 줄어들수록,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은 광활해졌다. 나는 그 너른 여백을 읽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그것은 국어 시간에 배운 행간을 읽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독해였다. 소리 내어 말해지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의 표정과 몸짓, 그가 만지는 사물의 온도, 그리고 그가 선택한 단어의 미세한 결 속에서 읽어내야 했다.
한번은 전화 통화 중에 어색한 침묵이 1분 넘게 이어진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심지어는 그날의 날씨 이야기까지 꺼내며 조급하게 공간을 채우려 했다. 나의 얕은 수다 끝에, 수화기 너머의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됐다. 끊자.”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때로 침묵을 깨려는 시도는, 그 침묵을 오롯이 살아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존중 없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침묵으로써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그에게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었다.
아버지의 축약된 언어 중 가장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괜찮다’였다. 그러나 그 말은 단 하나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매일, 매 순간 다른 결을 지닌 다른 말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내가 “아버지, 점심은 드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응 그래....”는 이 말은, ‘사실은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너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라면을 끓였다. 또 어떤 날, 여동생이 전화로 “우리가 한번 올라갈까?”라고 물었을 때의 “괜찮다”는, ‘이 슬픔은 온전히 나의 몫이니, 너는 너의 삶을 살아라’하는 단호한 배려이자 경계선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괜찮다’는, ‘지금은 온통 무너져 내리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스스로를 향한 위태로운 다짐처럼 들렸다.
나는 그 말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살폈다. 목소리의 높낮이, 말의 속도, 문장 끝에서 몇 초를 더 머무는지.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날이면, 내가 해야 할 일도 달라졌다. 라면을 끓여야 하는 날과, 그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야 하는 날, 혹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무성영화를 함께 봐야 하는 날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아주 희미한 신호로 가득한 암호를 해독하는 일과 같았다.
아버지의 침묵은 과거를 잊으려는 노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것은 기억을 보존하고, 애도하고, 남겨진 삶 속으로 질서정연하게 통합시키기 위한 그만의 방식, 즉 ‘기억의 수행’이었다. 그는 기억을 매일의 의식을 통해 수행하는 수행자였다.
어머니가 떠난 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거실 한쪽에 놓여 있던 어머니의 털슬리퍼였다. 여름에도 발이 시리다며 늘 신고 계시던, 낡고 닳아 형태가 조금 무너진 슬리퍼. 그 슬리퍼는 어머니의 작은 고통과 습관을 동시에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우기 시작했다고 오해했다. 그러나 그 슬리퍼가 사라진 자리에, 신발장 위 작은 화분이 대신 놓인 것을 보고 나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키우던, 이름 모를 초록 식물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짙은 잎사귀를 가진, 강인해 보이는 식물. 화분 옆에는 물이 든 1.5리터 페트병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일요일은 물’이라는, 어머니의 둥근 글씨가 적힌 메모지가 색 바랜 스카치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 메모지를 떼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명령인 것처럼.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 그 약속을 지켰다. 그것은 단순한 물주기를 넘어, 당신의 시간을 아내의 시간에 맞추는 행위였고, 떠난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물을 줄 때마다 화분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보곤 했다. 흙이 머금은 물의 무게를 소리로 가늠하는, 오랜 살림꾼의 지혜였다. 나는 그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익숙한 동작 속에,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수십 년의 시간과 서로에게 맞춰온 삶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머니의 물건 정리는 아주 더디게, 아버지의 속도에 맞춰 진행되었다. 안방 옷장 문을 열면, 어머니의 목도리들이 색깔별로 나란히 걸려 있다. 회색, 남색, 연한 갈색. 모두 무채색 계열의, 어머니의 소박한 취향을 닮은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문을 다시 닫는다. 한번은 내가 참다못해 물었다. “아버지, 이제 정리할까요?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두자.” 그 한마디 말은 ‘기다리자’는 뜻이었고, 동시에 ‘아직은 이곳에 엄마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는 비워야 할 공백이 아니라,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 스며들어야 할 여백이었다. 조급함은 그 여백을 망가뜨린다. 아버지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한번은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작은 보석함을 열어본 적이 있었다. 그 안에는 값비싼 것 대신, 우리가 어릴 적 선물했던 조악한 플라스틱 브로치, 빛바랜 머리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던 작은 옥가락지 같은 것들이 소중하게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그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다가, 여동생이 어머니가 아끼던 작은 진주 귀걸이를 만지자 나지막이 말했다. “그거… 네 엄마가 너 대학 들어갔을 때, 제일 좋아했던 거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침묵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지키는 가장 단단하고 안전한 금고였다.
아버지가 그리는 세계의 지도는 점점 작고 명료해졌다. 그의 산책로는 집과 시장, 그리고 동네 의원을 잇는 세 개의 점으로 단순화되었다. 그는 더 이상 새로운 길을 탐험하지 않았다. 익숙하고 안전한 길 위에서,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었다. 그것은 그의 몸과 마음이 이제 감당할 수 있는 세계의 크기였다. 아내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그의 너른 세계는, 이제 혼자서 길을 잃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반경으로 축소되었다.
집 안의 질서는 더욱 엄격해졌다. 모든 사물은 정해진 자리가 있었다. 냉장고 문 안쪽의 반찬통들은 마치 군대처럼 열을 맞춰 서 있었고, 세탁기 위의 집게통은 늘 손잡이가 같은 방향을 향했다. 어머니가 남겨둔 흔적들 위에, 자신만의 조심스러운 변형을 더했다. 어머니의 약이 있던 자리는 한 칸 비워두었고, 두 사람이 함께 쓰던 찻잔 중 하나는 찬장 가장 깊은 곳으로 옮겨졌다. 신문은 정확히 이틀 치만 모아두었다가 내놓았다.
한번은 내가 ‘도와드린다’며 냉장고를 정리했다가, 다음 날 모든 것이 원래의 질서대로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자신의 세계를 침범한 나의 서툰 배려를 바로잡았던 것이다. 나는 조금 서운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것은 결벽이나 강박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통제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의 집은 그의 내면과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마치 그의 내면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조심스러워졌다. 그의 물건을 함부로 옮기지 않고, 그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었다.
그의 축소된 세계는 식탁 위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다. ‘충분하다’는 말과 함께. 시장에서 딱 한 사람 먹을 만큼의 두부와 달걀을 사며 “이만큼이면 충분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단순히 양이 아닌, 남겨진 삶의 크기를 규정하는 단어였다. 당신의 세계는 이제 아내와 함께 채우던 너른 공간이 아닌, 혼자서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공간이어야 했다. 남겨진 자의 슬픔은 때로 이렇듯 실용적이고 수학적인 방식으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버지의 하루는 ‘충분해야만’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것이 아버지가 스스로를, 그리고 남은 삶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침묵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그는 유리를 닦기 전, 창틀을 먼저 닦는 사람이었다. 바깥 풍경을 보기 전에, 그것을 담는 틀부터 정돈하는 사람. 그 순서가 뒤바뀌면 더 많은 얼룩이 생긴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한번은 내가 무심코 유리부터 닦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행주를 받아들고는 창틀의 먼지부터 다시 닦아내셨다. 그제야 나는 보았다. 창틀의 검은 먼지가 젖은 유리에 길게 번져나가는 것을.
어머니가 떠난 뒤, 그의 삶은 어쩌면 매일 이 창틀을 닦는 일과 같았을 것이다. 거대한 슬픔이라는 풍경을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일상이라는 작은 틀부터 단단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일. 그 프레임이 안정되어야만, 비로소 바깥의 풍경을 제대로, 흔들림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어느 주말 아침, 깜빡이는 거실 전등을 갈아 끼웠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가 눈을 찌푸리며 신문을 읽으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사다리에 올라 전등을 가는 동안, 말없이 내 뒤를 지켜보며 사다리가 흔들리지 않게 발로 지지해주었다. 내가 사다리에서 내려와 스위치를 켜자, 거실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버지는 한쪽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밝다.” 고맙다는 말 대신 그 한마디였다.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뜻을 품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밝다는 건,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는 뜻.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방의 윤곽뿐 아니라, 흐릿했던 마음의 모서리까지도 조금은 선명하게 보인다는 뜻. 나는 그저 전등 하나를 갈았을 뿐이지만, 아버지의 세계에 작은 빛 하나를 더한 것 같아 마음이 뻐근해졌다.
그의 침묵은 청취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두 딸과 막내아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정신없이 쏟아낼 때, 아버지는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듯, 한 번에 하나씩, 낮은 톤으로 질문을 던졌다. “점심은 뭐였냐?”, “체육 시간에는 뭘 했냐?” 아이들이 신나서 대답하면, 그는 그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내가 너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였다. 그의 박수는 소리가 아니라 움직임에 가까웠다. 손바닥이 서로 닿기 직전에 멈추는, 그러다 마지막에 딱 한 번만 ‘탁’ 하고 소리를 내는 박수. 그 최대한의 절제 속에, 아이들을 향한 최대한의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란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켰지만, 손주들의 맑은 소리만큼은 기꺼이 자신의 세계로 들였다.
아버지의 언어를 배우면서, 나는 그에게 대답하는 법도 달라졌다. 더 이상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 조급하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몸은 괜찮으세요?’라는 직접적인 질문 대신, 그의 집 전기포트에 물을 가득 채워두었다.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물음 대신, 그가 좋아하는 김 한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외롭지는 않으세요?’라는 섣부른 위로 대신,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아 소리 없는 텔레비전을 함께 보았다.
나는 말 대신 동작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놀랍게도, 우리의 관계는 말이 넘쳐날 때보다 훨씬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우리는 서로의 행동을 통해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고, 마음을 읽었다.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우리 부자 사이에 흐르던, 서툴지만 오래된 소통 방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 사이의 통역가이자 완충지대였다. 그녀가 사라지자,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언어를 직접 마주하고 배워야만 했다.
그 소통의 정점은 어느 늦은 저녁, 허름한 식당에서였다. 우리는 뜨거운 순댓국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들깻가루 통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소금 대신 새우젓을 반 숟가락 넣어 국물에 풀었다. 어머니가 늘 그렇게 드셨다. 나는 후추를 조금 더 쳤다. 그건 내 방식이었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국밥 그릇 안에서, 어머니의 방식과 나의 방식, 아버지의 배려와 나의 응답,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이 조용히 섞였다.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대화보다 많은 것을 나눈 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가 처음으로 먼저 물었다. “다음엔… 언제 오냐.” 그 질문은 내게, 아버지가 마침내 나를 자신의 침묵의 세계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아버지는 여전히 울지 않는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의 울음은 눈물이 아니라, 그의 모든 침묵하는 시간 속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국을 덜어 밥 위에 얹는 조심스러운 동작, 마당에 쌓인 낙엽을 모으는 구부정한 등, 벽시계를 가만히 들어 귀에 대고 ‘딸깍’ 소리를 확인하는 진지한 표정 속으로. 그런 동작들 하나하나가 내가 훗날 기억할 아버지의 문장들이다. 나는 그 문장들을 빠짐없이 베껴 내 마음에, 내 몸에 새겨두고 싶다.
어머니가 내게 수많은 ‘사랑의 동작’을 유산으로 남기셨다면, 아버지는 내게 단 하나의 ‘침묵의 질서’를 남기고 있다. 말이 필요한 순간과 필요하지 않은 순간을 구분하는 지혜, 필요한 순간에는 짧지만 정확한 말을, 필요 없는 순간에는 오래도록 곁에 앉아 있는 시간을 선택하는 법. 나는 아버지의 침묵을 배우며, 한 사람의 어른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다시 태어난다. 말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소통은 때로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운다.
밤이 오면, 아버지는 여전히 텔레비전을 아주 작은 소리로 켠다. 화면이 방 안에 얇은 빛을 깔아주는 동안, 나는 종종 그 옆에 앉아 조용히 컵을 쥐고 있다. “아버지, 내일은 제가 일찍 올게요.” “응.” 그 한 글자면 충분하다. 우리는 서로의 침묵을 읽고, 침묵으로 대답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다시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확인할 것이다. ‘괜찮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모든 의미를 알고 있으니까. 그 침묵의 언어로, 우리는 오늘도 함께 버틴다.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이 고요하고도 단단한 버팀의 방식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