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그리고 그 속의 실무자들 - 2. 이사
첫번째 글에 이어서 쓴다.
1. 사업개발 포지션에 대하여 https://brunch.co.kr/@jhshoe1001/13
두번째 주제는 '이사'다.
내가 다닌 세 개의 스타트업은 내가 이직하고서 얼마 뒤 '이사'를 했다.
첫 회사는 공유 오피스에서 모회사가 쓰던 건물로 이사를 했다.
1층은 사무 공간을, 2층은 촬영 스튜디오와 휴게실을 두어 꽤나 아늑해진데다
회사 전반에 우리의 키컬러를 배치해 나름 소속감이 차올랐던 것 같다.
입사 당시 첫 포부로, 언젠가 우리의 사무실이 생기면 기둥 하나쯤은 내가 세우겠다 했는데
다행히 그 약속은 지켰던 것 같다.
두번째 회사는 역삼의 작은 건물 한 개 층을 쓰다가
선릉의 쿠팡 빌딩으로 이사를 했다.
이렇게 높은 빌딩에, 이렇게 넓은 층을 다 쓰다니.
이제 개발팀을 만나려면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반대편으로 달려가야했다.
그리고 세번째 회사는 다시 선릉의 작은 건물 한 층을 썼다.
그리고 평수가 두배가 넘는 곳으로 이사했다.
당연히 사람이 늘었을 것이고, 당연히 더 많은 임대료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테다.
첫번째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매출을 내기 시작하고, 그 파이를 키우기 위해 사람을 뽑고,
파이가 충분히 커지니 피보팅(pivoting)을 시작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사실 두번째 주제는 HR이다.
실무자 입장에서 HR이란 무엇일까?
근로계약서를 전달해주고, 연차촉진서에 서명을 받고, 연말정산을 위한 안내를 하는 것?
혹은 팀 간 회식을 주선하고, 웰컴 키트를 주고, 연말 행사를 기획하는 것?
HR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것을 포괄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성과&인사평가'다.
첫번째 서비스가 안정적인 매출을 내고, 파이를 키우기까지는
초기 co-founder들이 커버할 수 있을 수준의 사람 수만이 존재한다.
이 때엔 임원들도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미팅록을 복기하고 직접 세일즈 미팅도 들어간다.
다면평가니 동료평가니를 차지하더라도, 임원 선에서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 눈에 모두 들어온다.
하지만 30~40명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제부턴가 합류한 주니어들이 우리가 일하던 방식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분명 사업방향성을 공유했는데, 1~2주도 안되선 그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경영진은 얼라인(align)을 부르짖고 관리가 안되는 현상에 분개하며 갑작스레 OKR과 KPI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이해도가 부족한 채로 멋진 말(OKR과 KPI)을 도입하니, 어느새 KPI는 매출로만 가득 차있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선행으로 해결해야 했던 진짜 목표들은 실무자의 마음 속 지표로만 남게 된다.
세 회사 모두 성과평가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거나
준비했더라도 해당 평가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
위임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불필요한 회의가 많아졌고
불필요한 회의록이 늘어났다.
보다 철저한 관리를 위해
daily to do, weekly session, monthly wrap-up등 일간, 주간, 월간 고정 업무가 생기면서
오히려 분기나 반기 단위의 중장기 전략의 중요도가 간과됐다.
R&R로 평가를 하기로 결정했으나, 스타트업의 사업 방향 변동성이 이를 방해했고
비즈니스맨과 기술자를 같은 평가지로 평가하려다보니
비즈니스맨에겐 작업 시간 당 결과물을 요하고, 기술자들에겐 그래서 이게 돈이 되냐는 반대되는 물음을 던진다.
세 회사의 퇴사율은 이사 전보다 이사 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앞선 논리가 이사 후의 퇴사율로 이어진다는 데엔 비약이 많고, 또 앞서 얘기했듯 모수가 지나치게 적지만
그렇기에 이는 나의 편견이자, 경험이다.
이사를 가기 전에 꼭 한번쯤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성과 및 인사 평가제도가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