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놀고봐야지

by 하이디


남편이 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몇마디 말만 들어도 누구에게서 온 전화인지, 무슨 내용인지를 대강 알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면 나에게 말을 걸어올거라고 예상했다. 역시나였다. 용건인 즉, 일년에 두어번쯤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남편 친구네가 이번 주 일요일에 만나서 같이 공연을 보고 저녁을 먹자는 내용이었다.



"oo네가 일요일에 만나자는데 당신은 시간 괜찮나?"

"응. 괜찮아."



대화 내용만 놓고 보면 아무 일 없어보이고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사실 우리는 지금 2주일째 냉전중이다. 30년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또 한번 부딪치고 나서 다시는 남편과 잘 지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고, 서로를 소 닭 보듯 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의 열흘동안은 눈도 안마주치다가 엊그제부터 그나마 들어오고 나갈 때 인사 정도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말이다. 부부끼리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싸웠다가도 금방 풀린다고 해서 별 일 아니라고 하지만, 일단 칼로 무언가를 베면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그게 물일지라도 겉으로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분명히 상처는 생긴다. 더구나 30년동안 한 곳만 베다보면 결국 물길도 갈라지게 되어있다. 결코 별 일이 아닌게 아니다.



남편이 통화를 하는 2~3분동안 갈등을 했다. 대꾸를 해? 말아? 마음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오케이'를 하자니 속이 부글거리고, 그렇다고 '노'를 하자니 남편과의 사이가 제2의 빙하기로 접어들 것 같았다. 이제까지는 남편보다 참을성이 부족한 내가 번번이 먼저 접어왔는데 더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 다물고 사는 건 너무나 내 스타일 아니었다. 어쩐다......



전화를 끊고나서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묻는 남편에게 나도 눈길을 주지 않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친구네가 예약했다는 공연 정보를 카톡으로 보내오며 근처 식당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투가 부드러웠다. 내가 'ㅇㅋ~'하고 짧게 보내자 심지어 '고마워'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평소 그런 말을 할 줄 모르는 남편인데 말보다는 문자가 더 편한가 보다. 참 이해가 안된다. 돈도 안드는 말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때부터 공연장 근처의 식당을 눈이 빠져라 검색했다. 같이 술 한잔을 마시기에 적당한 메뉴를 고르고 별점과 리뷰를 살피고 공연장에서부터의 거리까지 꼼꼼히 체크한 후 5개의 후보를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남편은 그중에서 한 곳을 골랐다. 내가 제1 후보로 생각하고 있었던 곳이었다. 참나, 별 게 다 찌찌뽕이네.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못 놀고 죽은 귀신이 붙은 것 같다. 누가 놀자고만 하면 열일 젖혀놓고 신이나서 나선다. 더군다나 전생에 소귀신이었을 것 같은 남편이 놀자는데 냉전이 다 뭐냐 일단은 놀고봐야지. 자꾸 희죽희죽 웃음이 나오는 거 보면 벨도 없다 싶지만, 어쩌겠나 이게 나인걸.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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