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연속해서 내가 공감을 못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뭐라고? 내가? 우는 사람만 봐도 같이 울컥하는 난데, 내가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런데, 나에게 그렇게 말한 사람이 다름아닌 가족(남편과 큰딸)이었으니 그건 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T 성향이다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위로와 공감보다는 해결책을 먼저 찾으려고 하는 건 사실이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 이런 저런 방법들을 먼저 생각하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감을 못하는 건 아니다. 단지 손잡고 앉아서 "어떡해"만 하고 있어봤자 해결되는게 없으니 빨리 해결책을 찾아주는게 상대방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남편이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단다. 사실 남편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애매한 상황인 듯 했다. 며칠동안 그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받는 남편이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남편이 처한 상황이 짜증나고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화가 났지만(감히 내 남편에게?) 안타까운 마음은 짧게, 해결 방법은 길게 얘기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있던 큰애가 나에게 공감을 못해준다고 뭐라고 했다. 나는 발끈했다. 마음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며칠동안 같은 얘기만 하고 있어서 듣기 짜증난다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았다. 요즘 내가 왜 이렇게 심술이 나있는지 들여다 보았다. 우선, 역설적이게도 공감능력이 지나쳐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 내 가족이 남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면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지면서 말이 곱게 안나간다. 넘어져서 다친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속상한 마음에 먼저 부주의함을 탓하게 되는 것처럼.
또 다른 이유는, 남편이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때면 약오르고 괘씸한 마음이 든다. 함께 사는 동안 내가 그렇게 공감을 바랄 땐 무심하더니, 철저히 '너는 너, 나는 나' 자신의 감정은 스스로 챙기는 것이라고, 왜 다른 사람이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지 모르겠다고, 찰저하게 모른척하던 사람이 이제와서 공감을 얘기해? 하는 마음이 깔려있는 것 같다. 긴 시간동안 남편의 위로와 공감을 바라다가 이제는 지쳐서 포기하고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데, 이제와서 공감을 얘기한다고?
독립을 준비하면서 나와 계속 부딪치는 큰애에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내 의견과 맞지 않을 수는 있지만, 꼭 무 자르듯이 내 입을 막아버리는 큰애가 야속했다.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할거면 나한테 말을 꺼내지나 말지. 이제 집에서 함께 지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꼭 그렇게 남처럼 굴어야겠는지. 큰애와 얘기를 나눌 때마다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이에게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는게 억울했다.
또, 아이의 평가와 지적을 받아들이는게 힘든 것 같다. 마음으로는 자식에게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지적을 받으면 노여운 마음이 든다. 부모의 권위를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들을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키운 부모라고 자부해왔는데, 내 마음속에는 '감히 부모에게..."하는 마음이 들어있었나보다. 내가 꼰대 중에 상꼰대였다는 사실을 들킨 것 같아 불편하다.
요즘 내 마음이 뾰족하다. 아니 마음이 스산하다. 텅빈 듯 공허한데 그렇다고 누군가를 품어줄 자리는 없는 것 같다. 늘 대화가 고팠던 사람인데, 요즘은 대화를 피하고 싶다. 갱년기 호르몬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