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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pr 06. 2023

부모님의 두마음

물건정리에 대한 부모님의 두가지 마음


엄마가 다치신 후 두달 정도를 거의 1~2주에 한번씩 친정에 내려가 사나흘씩 집안일을 해드리고 왔다. 갈 때마다 점점 더 어린 아이 같이 사고가 좁아지고 단순해지시는 부모님을 뵙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어린 시절 내 하늘이었고 우주였던 부모님이 이제는 자식만 바라보고 자식들의 손길을 기다리시는 힘 없는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괜찮다', '별일없다'라는 말을 기대하고 매일 안부전화를 드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어디어디가 아프다는 듣고 싶지 않은 말 뿐이다.



지나치게 냉정하고 이성적인 엄마와 지나치게 감정적인 아버지는 60여년을 함께 살아오셨지만 여전히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계신다. 그래서 사이가 좋다가도 가끔씩 욱 하시는 아버지와 꾹꾹 눌러 참으시는 엄마는 자주 아슬아슬하다. 대부분은 엄마를 두둔하는 편이지만 요즘들어 '욱' 뒤에 숨어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짠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알뜰함이 몸에 배여 작은 것 하나도 못버리시는 엄마를 채근하며 갈 때마다 집안 살림을 정리하려는 언니와 나는 그날도 이 방 저 방 다니며 정리를 시작했다.


"엄마, 이건 안쓰는거잖아. 버려!"


"그냥 놔둬. 아까운데..."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왜 안쓰고 저렇게 다 떨어진 걸 쓰고 있어?"


"이것도 아직 쓸만한데 왜?"



장롱 속에는 깨끗하고 멀쩡한 이불들이 잔뜩 쌓여있는데 정작 엄마는 다 해진 낡은 이불을 덮고 계셨고, 건강식품이 담겨있던 빈 상자들까지도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서랍장 위에 한가득 쌓아놓고 계셨다.



정리를 하시겠다고 살림들을 꺼내놓으셨다가는 결국 도로 제자리에 갖다놓곤 하시던 엄마가 아버지의 오래된 양복바지를 버려야 할 것 같다며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며칠 전 아버지께서 외출하실 때 입고 나가셨던 양복바지가 너무 옛날 스타일이라서 바지통도 넓고 엄마 눈에 보기 싫으셨던 모양이었다.


"왜 올 때마다 뭘 못버려서 안달이냐? 늙은이 빨리 죽으라고 그러냐? 정 버리고 싶으면 나 죽거든 버려! "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시며 화를 내셨다. 팔순이 넘으셨지만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고함소리는 우리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했다. 평소에 점잖고 인자하시다가도 화가 나시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셔서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우리 형제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게 아니고, 당신 바지가 너무 오래 돼서..."


"당신이 더 문제야. 우리가 죽으면 쟤들이 어련히 알아서 정리할까봐 왜 그렇게 못버려서 안달이야!"


"우리 죽은 다음에 쟤네들이 우리 물건 버리려면 얼마나 마음이 안좋겠수? 우리가 미리 정리하는게 낫지."


"버릴거면 당신 것이나 버려. 내 것은 손대지말고!"



노인이지만 노인들만 사는 집의 특유의 너저분함과 꿈꿈한 냄새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엄마를 위해 정리를 도와드리려고 했던 우리는 아버지의 뜻밖의 반응에 움찔했다. 언니는 오해를 하신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겨우 진정시켜드렸다.



처음에는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감정제어를 못하시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차츰 아버지의 말씀이 곱씹어지며 마음이 달라졌다. 자신의 물건이 정리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존재도 함께 정리되어지는 기분을 느끼셨던 것 같다. 늘 준비하고는 있지만 결코 의연해질 수 없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확인받은 것 같아 두려우셨던 것 같다. 슬프다... 죄송하다...



엄마의 말씀에도 가슴이 아렸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물건을 정리하며 또한번 가슴아파할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 살아계시는 동안에 자식밖에 몰랐던 엄마는 돌아가신 후까지도 자식들을 생각하실건가보다. 슬프다... 죄송하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한 추억만 만들고 싶은데 자꾸만 아픈 기억들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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