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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ul 24. 2023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다녀오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은 새로 조성된 신도시의 공원안에 깨끗하고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공들여 잘 관리되어진 듯 깔끔한 공원입구는 비 온 뒤의 푸르름이 더해져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임을 잠시 잊고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번잡한 종합병원의 구석진 외딴 건물에 자리잡은 칙칙한 장례식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작은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식당으로 갔다. 빈소가 차려진 첫날이라서 문상객의 대부분이 일가친척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웃고 떠들기도 했디. 조문을 갈 때마다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유족들보다 더 무거운 표정으로 머뭇거리던 내가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다. 할머니의 빈소에서 웃고 떠들던 어른들의 모습을 어느새 닮아가고 있다.


식당의 구석 자리에 아버지가 앉아계셨다. 벌써 세번째 동생을 먼저 보내신 아버지는 어깨가 축 쳐져 있어 더 늙고 초라해 보였다. "왜 자꾸만 동생들이 먼저 가신대"하며 안아드렸더니 아버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을 쏟으실 것 같아 급히 자리를 피했다. 형제의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은 어떨까? 그것도 동생을 먼저 보내는 심정은...


장례식장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은 집에서 뵐 때보다 훨씬 더 늙어보였다. 어깨가 구부정한 아버지와 백발인 엄마를 보면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다음 차례가 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의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내 머리속으로는 우리 부모님의 상(喪)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장례식장의 위치나 시설을 유심히 살펴보고, 문상객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의 메뉴와 맛도 꼼꼼히 따져보고, 빈소를 지키고 있는 사촌동생을 보면서 어느새 그 자리에 서 있는 내 모습도 그려보고 있었다. 부모님의 부재를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작은 엄마한테서 장례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례식에 이어 화장과 안치까지 모두 한 곳에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수목장을 하기로 했다는 것, 이후 관리까지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순탄하게 잘 준비되어있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엄마도 옆에서 간혹 궁금한 것들을 물으시면서 귀기울여 들고 계셨다.


예전에는 부모님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조심스러웠다. 생전에 부모님과 충분히 얘기를 나눠서 본인의 장례에 대해 원하시는 뜻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나 부터도 부모님의 부재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유난히 크게 느끼시는 부모님과 어떻게 얘기를 나눠야할 지 몰라 겉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가 여든이 넘어가면 죽음에 대해서 의연해질 거라 생각했고, 우리 부모님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병원으로 달려가시고, 연명치료 거부 신청도 여전히 망설이고 계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삶의 애착을 넘어 노욕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든 죽음앞에서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일 수 밖에 없는데도, 아니 달리기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더 초조해지듯이 어쩌면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기에 더 무섭고 두려울텐데도 내 눈에 보기좋은 모습이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정사진 속 작은 아버지는 생전의 건강하셨던 모습 그대로였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사라졌지만, 세상은 그대로이다. '살아있음'이 별 거 아닌 것처럼 '죽음'도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리라. 그저 그 모든 것이 부모님 마음속에, 그리고 또 내 마음속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랄 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wsrstudi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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