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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Oct 21. 2023

친정엄마의 서울나들이


친정엄마가 다녀가셨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여간해서 자식집에 오시지 않는 엄마가 왠일인지 이번에는 먼저 오고 싶다고 하셨다. 실향민으로 열 두살에 혼자가 되신 엄마는 친정식구가 한명도 없어 이땅에 피붙이라고는 자식 4남매가 전부이다. 간혹 아버지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어디 붙잡고 하소연하실 곳이 없으셨으니 우리 딸 셋은 자라는동안 엄마에게 딸이자 형제이자 친구가 되어 드려야했다.



그럼에도 친정엄마는 딸들에게 그리 살가운 엄마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부터 혼자서 힘들게 살아온 탓인지, 아님 원래 타고난 성격이 냉정한 탓인지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차갑고 쌀쌀맞았다. 한번도 엄마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 역시도 엄마에 대해 충만한 사랑이 느껴지질 않는다. 뭐랄까, 사랑으로만 채워지지 않고 항상 의무감이 더해지고 딱 그만큼의 부담감이 함께 따라온다고나 할까.



친정엄마가 서울에 오시면 주로 언니네 집에서 머무신다. 나도 근처에 살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모두 결혼을 해서 방이 두개나 비어있는 언니네가 더 편하신 것 같다. 성격도 까탈스럽고 입맛도 까다로운 엄마는 항상 우리에게 제일 어려운 손님이다. 오신다는 연락을 받으면 며칠전부터 식사메뉴를 고민하고 어떻게 즐겁게 해드려야할지 언니와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짜느라 바쁘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으시니 먹는 것과 다니는 것, 주무시는 것까지 모든걸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분주하다.



도착시각에 맞춰 서울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기차의 어느 쪽에서 내리실지 몰라 언니와 갈라져서 살폈다. 처녀시절 미니스커트에 하이힐만 신고 다니셨다는 엄마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패션에 신경을 쓰시는데, 오랜만의 서울나들이이니 허름한 행색으로 오실리가 없다. 역시나 껄끔한 정장차림이었고 편하고 안전하게 신고 다니시라고 사드린 운동화 대신에 볼이 좁은 구두를 신고 오셨다.



엄마는 알뜰함을 넘어서 궁색하다고 느껴질만큼 짠순이로 사셨다. 젊어서는 외벌이 남편의 박봉으로 자식 넷을 키우려니 짠순이로 사셔야 했고,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서는 늙어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는 노인이 되겠다는 목표로 짠순이 생활을 이어가셨다. 그 덕분에 여든이 넘으신 지금까지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살고 계시고, 그것이 엄마의 가장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아끼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여행에 드는 돈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직장동료 몇몇 분들과 처음으로 부부동반 유럽여행을 다녀오신 후 엄마는 해외여행에 꽂히셔서 남미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한 나라들은 안가본 곳이 없다. 지금도 스탠트를 5개나 심어놓은 (언제 멎을지 모르는) 심장으로 사시면서도 여전히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신다.




여행 좋아하는 엄마에게 운전이 능숙하지 못한 두 딸이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코스로, 첫날의 일정은 뚜벅이 서울여행으로 잡았다. 서울역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청계천으로 향했다. 엄마가 기억하는 청계천은 공구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옛날의 모습이었고, 개천이 복구되어 사람들이 여유롭게 거니는 쉼터로서의 모습은 TV를 통해서만 보셨다고 했다. 유럽의 어느 성 쯤은 되어야 감탄하시는 엄마도 오랜만의 나들이이고 두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으셔서 그런지 청계천을 보고 무척 좋아하셨다. 길가에 상가들이 너저분하게 들어서 있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시며 공원으로 멋지게 변화된 모습에 연신 놀라워하셨다.



우리는 청계천을 천천히 걸어 광화문으로 갔다. 엄마는 며칠전 TV에서 광화문 월대가 100년만에 복원되었다는 뉴스를 보셔서 그렇잖아도 궁금했다고 하셨다. 넓은 광화문 광장을 걸어서 새로 복원된 월대를 지나 광화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고 있어 관광객들 틈에 끼어 구경했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았고 집에서 버스로 30분이면 올수 있는 광화문이었는데도 제대로 찬찬히 둘러보고, 거기에다가 수문장 교대식까지 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엄마는 '마음만은 청춘'인 노인의 대표주자이다. 여든 넷의 백발노인이면서도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불뚝한, 어깨가 안으로 말리고 등이 구부정한 노인 체형으로 변하는 걸 경계해 하루에 한시간씩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으신다. 아직도 할머니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빠하고 어디든 거뜬히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만일 뿐 이제 걸음걸이도 불안하고 오래 걸으시면 숨 차 하신다.



우리는 걷는 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엄마 수다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흉을 보는 것이었다. 나이를 생각 못하고 마음만 젊으신 엄마와는 정반대로 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마음이 먼저 늙는 분이다. 우리가 보기에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들도 아버지는 '이제 늙어서...'를 이유로 하지 않으시려고 한다. 거기에다 급격하게 청력이 떨어져 말을 제대로 못들으시니 더 빨리 늙어가시는 듯 하다.



아버지 세대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이 바깥일만 하느라 집안일은 모르시는 아버지는 늙어가면서 엄마에게 점점 더 의지를 하신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내 몸뚱이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어 만사가 귀찮은데 옆에서 아버지를 일일이 챙기려니 너무 짜증이 난다"고 하신다. 그런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아버지는 나름 열심히 도우려 하시지만 까탈스런 엄마의 성에 찰 리가 없어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서로를 힘들어 하신다. 그래서 엄마의 이번 서울나들이도 며칠만이라도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지내고 싶은 목적이 가장 크다고 하셨다.



엄마는 더 걸을 수 있다고 하셨지만 이미 많이 지치고 힘드신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손녀가 모시고 다니며 서울식물원과 하늘공원 억새축제를 구경시켜드렸고, 또 다음날은 큰사위가 서을근교에 경치가 좋은 곳을 모시고 다녔고, 계시는동안 거의 매끼니 다양한 종류의 식사를 사드렸다. (엄마가 계시는동안 나도 함께 다닐 계획이었지만 둘째날부터 내가 갑자기 아파서 이후의 일정은 함께 하지 못했다.)



엄마는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으셨다. 늙어서 사진이 안예쁘다고 하시면서도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쓸 예쁜 사진을 찍고 싶다며 꽃밭에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하셨다. 삶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하신 엄마가 영정사진이라는 단어를 편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나도 어느새 행복하게 웃고 계시는 엄마사진을 가운데 두고 예쁜 꽃들로 장식해 놓은 제단을 자연스레 그려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하는 동안 나는 어느 순간에는 부모의 눈으로, 또 어느 순간에는 자식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여전히 기운이 있으셔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다행이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지나친 노욕(老慾)으로 느껴져 불편하기도 했다.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 다음에 나를 바라볼 내 자식의 마음도 미리 헤아려 보게 되었다.



누구나 겪는 늙음과 죽음, 나도 머지않아 걸어가야 할 그 길을 나보다 먼저 가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또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엄마는 서울에서 닷새동안 지내시고 내려가셨다. 앞으로 몇번이나 더 오겠냐는 말을 흘리시며 다니는 곳마다 충분히 즐기셨고 많이 웃으셨다. 서울에 다녀가신 후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졌다. 닷새간의 나들이로 지루한 일상에서 작은 활력을 얻으신 것 같다. 엄마의 충전소가 되어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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