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내려가는 글

by 서정희

나는 불안장애가 있다.

올해 초까지 병원을 다니며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기도 했다.

20대 때도 내가 불안이 많은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그저 예민한 내 성향 탓이라 생각했다.

매일 밤마다 술을 마셨던 것도, 연중행사처럼 폭식과 단식을 반복했던 것, 커피만으로 하루를 생활했던 것들도 그저 내 성향 때문이라 생각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아주 어릴 땐, 빨리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행복한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나의 이런 성향을 마주할수록 결혼 생각이 없어졌다. 난 술도 좋아하고,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도 좋아했으니 이런 날 진정으로 좋아해 줄 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연애를 하면서 깊은 관계를 지속하길 원치도 않았다. 나의 본모습을 알게 된다면 날 좋아하지 않을 거라, 날 싫어할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처음으로 1년 꽉 채운 교제를 했다. 잠수와 헤어짐, 거짓말. 이런 시시한 내용 없이 온전한 사랑을 했다. 즐겁고, 편하고 아늑한 연애였다. 어릴 적 책상 밑에서 바퀴 달린 의자를 뒤집어 놓고 오빠와 운전놀이를 했던 것처럼 안전하면서도 재밌었다.


좀 건강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날 위해서, 그를 위해서 우리가 함께할 미래를 위해서 지지부진했던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다.

예전부터 신경정신과에 가보고 싶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 혼자 끙끙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장기연애를 했고, 이미 동거도 하고 있었다. 그맘때쯤 공방 이사를 하고, 결혼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두렵고 불안했는지 하루하루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거나 악몽을 꾸는 날이 지속됐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함께 가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혼자 근처에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을 다닌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병원에 같이 간 적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문제이고, 나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다. 병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내가 다니는 가정의학과와 비슷한 느낌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인상이 너무 좋으셨고, 늘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그동안 나의 불편함은 불안장애의 증상이라 말씀하셨다. 진단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1+1 행사 상품도 아니고, 공황장애가 있으니 우울증도 가져가라는 것처럼, 필요 없는 세트 상품을 받아가는 것 같았다. 유전적 요인이라 하셨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신경계 문제라며. 각성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상태? 생각해 보니 아빠랑 나랑 비슷한 성향인데, 아빠도 예전에 술을 자주 드셨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셨다. 맨날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왜 피곤하게 술을 드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 난 후 내가 그러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아빠가 측은해지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눈치 안 보고 짜증 내는 사람이 아빠인데, 아마 나랑 너무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릴 때나 지금이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빠인 것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아빠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난 좀 우울증이 심해졌다.

2025년 1년 동안 일하지 않기로 딱 마음먹었는데 막상 백수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존감이 박살 난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구구절절 자기 연민에 빠져 나를 이렇게 애처롭게 생각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난,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난 자기 객관화가 비교적 잘 되어 있고, 나에게 뭐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요즘 기분이 울적해질 때마다 밑반찬을 만들고, 식물을 돌보고, 노트 제본을 한다.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반찬통으로 꽉꽉 차있고, 식물 이파리엔 윤기가 돈다. 얼마 전 노트 제본을 배웠는데, 내 손으로 컨트롤할 수 있고, 대단하진 않아도 눈으로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벌써, 10권 가까이 만들었다. 나중엔 동네 마켓이나 행사에 참여해서 헐값에 판매를 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도 브런치에도 막 써 내려가는 글을 쓰지 않는다.

늘 경직돼 있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내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보는 사람만 볼 것이고, 읽을 사람만 읽을 것이다. 그리고, 다들 살기 바쁜 이 와중에 나의 구저분함까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계획 없이 글을 써 내려가보았다. 지금 나의 상태는 무기력이다. 밖에 나가서 햇빛을 쐬고 사람을 만나고 영화도 보고, 그걸 내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지금의 무풍지대를 천천히 헤쳐나가고 싶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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