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Daily Project #3

by 서정희

Daily Project #3

2023년 5월 8일 월요일 ~ 5월 11일 목요일


2023년 5월 8일 월요일 어버이날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걸 참아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작업실을 차리고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그래도 넌 좋아하는 일 하잖아"


'그럼 너도 너 좋아하는 거 해!' 라든가, '그래도 너는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거 하잖아!'처럼 강력하게 대꾸할 수 없었다. 남들에게 싫은 말을 못 하기도 하고, 뭐 얼추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어릴 적 생각을 해보니 밥 먹고 하루 종일 뛰어놀기만 했어도 나름의 고민과 힘듦이 있었다. 먹기 싫은 채소를 먹고, 골치 아픈 구구단과 영어 단어를 외웠기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 작업도 썩 내키지 않는 작업 과정 중 하나이다. 빠그리(내 작업의 유닛을 '빠그리'라고 부른다)를 붙이기 위해서 토대가 되는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 회화에 비교하면 캔버스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흙 덩어리를 밀어 판을 만들고 흙 벽을 쌓아 준다. 우글우글하게 손 가는 대로 만드는 건 자신 있는데, 네모 반듯하게 만드는 건 아직도 자신이 없다. 예전엔 우굴쭈굴한 형태를 '손 맛'이라 우기며 뻐기는 것이 그나마 가능했다. 금속 작업할 때도 딱 떨어지는 직선보다 자연스러운 형태의 곡선을 선호했는데, 고집스러운 내 성격엔 곡선보다 퍽퍽한 직선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2023년 5월 9일 화요일


유독 내 작업이 예뻐보일 때가 있다. 오늘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파랑 빠그리들이 올망졸망 귀여워보였다. 내 손에 만져지는 촉촉함도 좋았고, 줄줄이 반듯하게 완성된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남들이 보기엔 다 똑같은 도자기로 보이겠지만, 비슷한 모습 속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늬앙스를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기분이 담겨져 있고, 그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가 생각해봤다. 아침에 다녀 온 치과 선생님이 친절해서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나보다. 치아 뒤쪽에 붙여놓은 와이어(교정 장치)가 떨어져서 붙이러 갔는데, 과잉 진료 없이 나에게 충분히 생각 할 시간을 주시고 불편한 곳이 있는지 계속 확인해주셨다. 보조해주시는 분도 없이 혼자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한 사람의 작은 친절이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니!

아직은 미흡하지만, 마음이 동하는 작업을 하고싶다.




2023년 5월 11일 목요일


어제 나랑 남편이 소속되어있는 회사 사무실에 다녀왔다. 이전보다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사실 나는 소속만 되어있는 상태이고 별 다른 활동은 없다. 아직은 작은 규모의 회사지만 1년 반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했고, 이제는 다른 업체나 브랜드에서 먼저 제안을 할 정도로 그 분야에서 입지를 단단히 다져가고 있다. 진짜, 대단해보였다. 그 분들을 만나고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자격지심? 상대적 박탈감? 열등감? 동경? 이런 부류의 느낌인데 명쾌하지는 않다. 그들의 에너지는 넘치다 못해 뜨거웠고, 피곤에 절어있지만 눈빛은 반짝거렸다. 진심으로 멋있었고 부러웠다. 나를 갈아넣을 정도로 무언가에 몰두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먹다 남은 상추처럼 시들시들해진 풀떼기 같은 내 모습이 왜이리 못나 보이던지.


집에 도착해서 소맥을 거하게 마시고, 발가락까지 긴장이 풀리는 느낌으로 쓰러져 잠들었다. 잠들기 전, 문득 파랑과 초록이 뒤엉켜진 이미지가 떠올랐다. 고요해 보이지만 혼란스럽고, 활기차 보이지만 가라앉아 있는. 나도 알 수 없는 뒤숭숭한 내 마음이 아니었다 싶다.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저마다 할당되어지는 에너지도 있을까?

그럼 내가 가진 에너지는 얼만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