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내나는 작업실

Daily Project #4

by 서정희

Daily Project #4

2023년 5월 16일 화요일 ~ 5월 20일 토요일


2023년 5월 16일 화요일

5월밖에 안 됐는데 기온은 31도!

절망스럽다. 땀도 많고 더위도 많이 타서 7~8월에는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고, 전시나 작품 관련된 활동도 계획하지 않는다. 근데 벌써부터 날씨가 이렇게 더워지니, 올해는 이번달 안에 모든 약속과 바깥일을 끝내버려야겠다.

그래도 작업은 거를 수 없기에 오늘도 흙을 만진다. 다른 작업도 그렇겠지만, 도예 작업을 하다 보면 손가락이든 팔이든 몸을 움직 일 수밖에 없다. 이마에, 등드리에, 겨드랑이에 땀이 질렁질렁 흐른다.

흙도 다 썼고 날도 덥고 딱 삼겹살에 소주가 땡기는 저녁이다.




2023년 5월 17일 수요일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

어제 만들어놓은 흙판이 휘어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익숙함에 속아 당연시 여기는 것처럼, 작업이 손에 익었는지 가마에 들어가기 전까지 신경 써야 하다는 걸 까먹었다.

흙이라는 재료가 생각보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구워져 나오기 전까지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뭔가 '흙'이라고 하면 푸근하고 포용적이고 소담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는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온도나 습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어떻게 말리느냐에 따라 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조용하고 낯가리지만 예민하고 고집스러운 내 성격과 비슷한 것 같다.

이래서 도예를 좋아하나 보다.




2023년 5월 1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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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덥고 습습해져서 그런지 물기 가득한 숲이 가고 싶어졌다.

영화 '아비정전'에 나오는 숲 같은 느낌? 상쾌하다 못해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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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무슨 뽕에 취했는지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다. 그때의 감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상하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렇게 술이 마시고 싶었다. 특히 아비정전은 지금 봐도 뭔가 싶지만, 한동안 나의 혼술을 함께해준 영화였다. 술맛 나게 해주는 기분이랄까?

장국영이 엄마를 보고 씁쓸하게 떠나는 그 숲을 맨정신으로 본 기억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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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먹먹함과 함께 취하는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2023년 5월 19일 금요일

어제의 여운 때문인지, 영화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인지 오늘도 숲이다.

가마에 굽고 나면 더 짙은 초록색이 되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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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0일 토요일

요 근래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작업을 마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 때문인 것 같다. 엄마한테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주문해 드리고, 아빠한테 햇반과 생수를 보내드린 것!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보통의 30대 중반처럼 돈을 벌지 못해 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진짜 별거 아닌 건데도 부모님께선 항상 고마워하시고 좋아해 주신다. 사소한 일이지만 나에겐 나름 뿌듯한 일이다. 이런 게 내가 생각하는 사람 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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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랑을 만져봤다. 처음 노란 작업을 시작했을 땐 결핍의 부산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의 삶에서 작업이 소중한 만큼 노란색은 나의 빵구난 어딘가를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번 작업을 하는 내내 가족 생각이 났다. 생각만으로 마음이 벅차오르고 따스함이 충만해졌다. 푹 우려 뜨끈하고 뽀얘진 곰탕을 한 그릇 가득 먹은 기분이다.

가족이 그리워지는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