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는 소개팅할 때도 밥을 먹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과 단 둘이 마주 보고 밥을 먹는 게 나에게는 단 둘이 술을 마시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긴장이 많은 사람이라 어색한 상황에서 밥을 먹으면 체하거나, 음식을 흘리거나, 뭘 떨어뜨리는 등 서로 민망한 상황이 생긴다. 태현님과는 후루룩 먹어야 되는 우동과 입을 쫙 벌려서 한입에 넣어야 되는 김밥을 먹었다. 그만큼 내 마음이, 그리고 그 사람과 상황들이 편해졌던 것 같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일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나름 큰 변화였고 노력이었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다양한 주제와 방대한 대화들이 오고 갔고, 녹취록을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쉽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나 예전에 일기왕이었는데!’
나는 국민학교로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세대이다. 그땐 선생님들이 매일 일기 검사를 했고, 매달 ‘이달의 일기왕‘을 뽑아 상을 주었다. 금박 별모양이 붙어있던 그 빳빳한 종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상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히 썼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가을엔 낙엽도 붙이고, 가끔 선생님께 편지도 썼다. 그때부터 기록의 재미를 알게 되었나?
태현님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두 달이 지났음에도 유일하게 한 글자고 적지 못하고 있었다. 태현님과 함께했던 날들을 일기로 쓸 생각을 하니 다시 머리가 돌아가고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날의 녹취록을 들으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 볼까 한다.
온종일 함께한 하루 2021년 7월 7일 수요일
그의 하루를 함께하기로 했다.
태현님 집 앞에서 만나서 사무실까지 함께 걸었다.
날씨가 너무 더웠고, 둘 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색하게 걸었다.
현재 ‘메이커이즈’라는 펌웨어 엔지니어 업체를 운영하면서 (창동역에 위치한) 창동 스타트랩 창작 공방에 입주해 있다. 지하철 입구, 공용 화장실 옆, 통유리와 불필요하게 높은 천장
작업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 공간에서는 작업에 집중이 안될 것 같았다. 태현님은 엄격하고 섬세한 작업을 하지만, 약간은 무딘 성격인 듯했다. 내가 주절주절 얘기를 하면,
“아... 그래요?”
이 정도 리액션이 전부였다.
웬걸...
알고 보니 완전 수다쟁이였다.
태현님도 나처럼 둘이 있을 때 편하게 말을 편하게 하는가 보다.
올해 초, 지원서를 쓰기 위해 자주 만났는데 그때는 필요한 얘기만 하고 서로에게 시큰둥했다. 얘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았고,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비슷한 과정과 공감되는 지점들이 굉장히 많았다.
태현님과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성격에 똑같은 모습이었겠지만,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었다. 이전보다 약간의 애정, 친근함, 반가움 등과 같은 어떠한 감정의 교류가 생겼기 때문이다.
조금 어이없지만, 우리는 음식 얘기할 때 서로 제일 신나게 떠들었다.
‘의외로 나랑 뭔가 코드가 잘 맞는데?’
그의 수상이력과 화려한 경력들이 내가 그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사실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잘 알아듣지도 못했고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원래 능력 있는 사람인건 알고 있었기에 과거의 이력들과 현재의 입지는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고 신기했다.
회로설계 PCB, 3D 설계, 서버구축, 알고리즘, 휴머노이드 등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낯선 단어들과 내용들이었지만 내 결론은, 태현님은 멀티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일종의 ‘희귀템’ 이랄까?
내 입장을 빗대어 얘기하자면, 도예가 중에서 기술적인 부분도 뛰어나고 예술적인 감각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조금 더 보태 성실하고 인성까지 좋은 사람이 있다. (물론 나는 아니지만) 친절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내가 만난 태현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마술 동아리 출신이라는 것도 의외였고, 남들이 봤을 때 멋있어 보여서 이 일을 시작했다는 답변도 유쾌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학창 시절은 어땠는지, 대학교 시절의 추억과 연애 얘기,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뭐 하고 지내는지...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난 것처럼 살면서 있었던 큰 이슈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눴다. 우리는 4시간 정도 긴 수다를 떨었고, 태현님은 오늘 해야 할 일을 결국 끝내지 못했다.
'낮에 만난 사람들' 인터뷰는 2021년도에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