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하지만 잘 사는 나 II

by 서정희

예본님 인터뷰 준비하면서 (연극 기획) 회의하시는 걸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시더라고요.

크게는 기획과 홍보 두 가지 일을 하는데, 체계적으로 하려다 보니 확인해야 되는 사항들이 많아져요. 제대로 된 공연 사업을 맡은 건 처음이라 잘하고 싶어요. 작은 부분이라도 놓치는 게 싫어서 최대한 확인하고 이중으로 또 확인하려 해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제 나이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데, 선생님의 시간은 어떠세요?"


000014_.JPG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젊음을 사고 싶다고 하잖아요. 아직 젊다고 생각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건 느낄 수 있죠. 요즘엔 재밌는 것도 없고 특별한 취미 생활도 안 하게 돼요.

취미는 꼭 필요하다 생각해요. 저는 요가도 하고, 헬스도 하고 친구랑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도 좋아해요. 요가를 하면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수업이 끝나고 합장하고 잠깐 생각을 하는데,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를 도닥거려 주는 행위 같아요. 생각이 많을 때는 꼭 요가를 하려고 해요.

그리고 머리가 복잡하면 멍을 때려요. 생각이 많은 편이라 일하다 잠깐 쉬는 시간에 멍을 많이 때려요.

저는 우울감에 빠지면 한 없이 빠지는 사람이라 체력 관리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체력이랑 정신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체력이 약하면 예민해지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일할 때 외에는 거의 누워만 있는데, 예본님 진짜 대단해요!

제 별명이 ‘본개미‘ 예요. ‘윤또일’ 도 있어요. ‘윤예본 또 일해?’

저는 일을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일을 찾아서 하려 해요. 예전에 한 달 정도 쉰 적이 있는데 그때도 빨리 일하고 싶었어요. 돈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돈이 많으면 쉬는 것도 재밌었겠죠?


저는 제대로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가끔은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예본님은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요?

최근에 어느 기업에 프로젝트 매니저로 입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전에는 은행원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돈 모으는 걸 좋아하는데, 은행을 가면 돈 관리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은행원은 공부를 잘해야 된다고 해서 패스했죠.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해요. 열정적으로 다 함께 결과물을 내면 보람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취업 준비를 할 자신이 없어요. 지금 생활도 괜찮고 만족스러운데 그렇게까지 치열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마지막 질문인데,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거를 돌아보면 그냥 되게 어렸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몰랐고, 그래서 다 할 수 있는 것 같았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고... 흰 도화지에 무언가를 썼다 지웠다 하면서 자국도 남고 찢어지기도 했지만, 크게 두려움은 없었어요.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

현재는, 지금의 저는 뭘까요? 지금 저는 살기 너무 바빠요. 하루하루 살다 보면 시간이 그냥 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큰 감정 낭비도 없고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 많이 안정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불안했고, 비틀거림도 심했어요. 근래 느낀 게 ‘내 두 다리로 우뚝 서 있을 수 있게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의지를 했었는데, 지금은 내 두 다리로 우뚝 서 있는 건 물론이고, 스스로 뛸 수 있게 되어 좋아요.

나로 살아가는 게 만족스럽고 스스로 대견해요. 미래의 나는 잘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욕먹고살지는 않겠지, 뭐든 잘하고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해요.

사실, 요즘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지금 현재를 바쁘게 살고 있나 봐요. 과거와 미래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싶어요.


‘짱돌’ 같아요. 모난 돌보다 짱돌이 더 세잖아요. 남들이 볼 땐 유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이 굉장히 단단해 보여요. 짱돌이 유리도 깨고 엄청 단단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부딪히는 게 많았어요. 사춘기도 찬란했죠! 그래서 예전에 저를 괴롭혔던 것들(나 스스로, 인간관계 등)과 그 시간들이 소중 한 것 같아요. 그 기억들로 지금 만난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좋은 사람을 가릴 수 있는 눈이 생겼어요.


“이 인터뷰 저한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기획 행정 일을 하다 보면 제가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주고 신경 써줘야 되는 일이 많아요.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주기보다 항상 내가 누군가를 바라봐야 되는 입장이었어요. 근데, 제 사진을 찍어주고 저를 계속 바라봐주는 거잖아요. 나의 일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고, 일하는 4년 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를 더 뿌듯하게 만들어주셨어요.


“나란 아이 너무 잘 살았어!”


000028.JPG



인터뷰를 진행했던 분들 중 가장 공적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나이 차이도 가장 많이 나고, 일 때문에 자주 마주쳤었다. 그렇게 2년을 알고 지냈는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 적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뭉클하고 여운이 많은 남는 시간이었다.

진짜 인터뷰를 진행한 느낌이었다. 그동안은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수다 떠는 기분이었다면, 예본님과의 대화는 정말 인터뷰 같았다. 본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금의 인터뷰를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임해주었다. 내뱉은 말들이 단단하고 매끈했다. 다 끝나고 소감에 대해 물어봤다.


“지난 4년을 스스로 복기해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나의 25살은 어땠을까?

내가 왜 인터뷰를 하려 했을까?

왜 굳이 회사밖에 있는 청년들을 인터뷰하려 했을까?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소속감이 필요했고,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한 당위성이 필요했다.

‘네가 하는 일들이 충분히 가치 있어. 너는 참 멋진 사람이야. 열심히 사는 너의 모습을 응원할게’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해주지 않았던 칭찬과 격려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어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존재감 없는 내가 세상에 점 하나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만난 예본님 덕분에 나의 그동안을 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예본님을 만나면 꼭 한 번은 얘기해주고 싶다.


‘넌 정말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야!’





'낮에 만난 사람들' 인터뷰는 2021년도에 진행되었습니다.